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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힘이 든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빠'의 역할일 것 같다. 여러 명의 구성원으로 일을 하게 되는 회사원의 경우나, 성인 남녀가 부부를 이뤄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보다 '아빠'의 역할은 더 힘이 든다.

 

가족들과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이유로 '아빠의 자격'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다. "아빠의 자격"은 여행에서보다는 일상에서 더 많이 부딪치는 문제이다. 가족들과의 일상을 메모했던 몇 개의 사례에서 아이들과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아빠의 자격'을 고민해 보았다. 

 

아이들과는 관계에서 아빠는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그 판단 과정에서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냉정했고, 어떤 때는 아이들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었다. 그때의 상황에 어떤 것이 더 옳은 일인지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아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다 들어 줄 수 없고, 모두 거부할 수도 없다. 

 

부모들은 그때의 상황에 맞춰 최선의 선택, 아니면 차선을 선택한다. 물론 판단의 전제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도 아빠는 자주 미운 사람이 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상황에 맞는 최선의 결정을 하는 것이 '아빠의 조건'이 아닐까?

 

#1, 2002년 2월 / 현석이의 심한 감기

 

설날의 후유증으로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 현석이가 더 심했다. 학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몸을 잘 추스리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한참 고민을 한 뒤, 현석이에게 학교에 가서 한 시간이라도 수업을 받고 조퇴를 하고 오도록 했다.

 

너무 아파 참을 수 없다면 학교에 가서 말씀을 드리고 바로 와도 좋다고 했다. 아픈 제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눈물까지 조금 글썽이던 현석이는 우선은 아빠 말대로 따라 주기로 했다. 현석이는 학교에 간 뒤 1교시가 끝나고 선생님께 말씀드린 뒤 집으로 왔다.

 

아빠는 무조건 아이의 요구를 받아줄 수 없다.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다는 현석이 등을 떠밀어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현석이가 좀 더 강한 아이, 책임감을 갖는 아이로 크기 원하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아이의 등을 떠밀어 학교에 보내는 아빠의 마음을 현석이가 언제쯤 알까? 아무래도 지금의 아빠만큼 커서 아이가 아플때 등을 떠밀어봐야만 아는 것 아닐까?

 

#2, 2003년 2월 / 다솜이와 현석이의 요구들

 

포근한 일요일을 집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어서 국립과학관에 갔다. 가끔 가는 곳이지만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과학관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다솜이가 엑스포 과학공원에 가자고 했다. 내 몸상태도 썩 좋은 것이 아니었고, 다솜이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과학공원에 가기 싫어했지만 다솜이의 요구가 워낙 간절했기에 다솜이 뜻에 따라주었다.

 

과학공원을 다녀온 후 식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다가 아이들 준비물 몇 가지를 사러 가게 되었다. 현석이는 게임 시디를 사고 싶다고 했다. 게임 시디는 오래 전부터 사고 싶어했던 것이지만 가격이 비싸 승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현석이는 게임 CD가 너무나 간절했다. 이번에도 현석이 뜻에 따라 주었다.

 

어떤 문제에서 아이들과 대립이 생길 때 그 대립의 해소는 쉽지 않다.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원리는 알지만, 실천은 참으로 어렵다. 부모의 위치이기 때문에 결정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며 타협할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할 것 같다.

 

#3, 2006년 6월 / 아이와 함께 놀기

 

밤 10시가 다 되어서 현석이가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터라 현석이와 함께 나갔다. 운동을 하러가는 곳은 아파트에서 2분쯤이면 걸어가는 중학교 운동장이다. 현석이와 레이업 슛 연습도 하고, 자유투 연습도 했다. 그렇게 부자지간에 농구 연습에 중학생 둘이 다가왔다.

 

"저희 둘이랑 시합하지 않을래요?" 막 학원에서 돌아오는 복장이다. 농구를 하고 싶은데, 공이 없으니 우리와 같이 하고 싶단다. 현석이에게 시합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니 괜찮단다. 그래서 먼저 10골 넣기 시합을 했다. 정말 땀이 나게 뛰었다. 10:8로 졌지만 아들 녀석과 한 팀을 이뤄 경기를 한 것으로도 즐거웠다.

 

아이들과 이렇게 놀 수 있는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기록까지 남아 있다. 아빠들은 늘 고민이다. 조금 더 놀아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크게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이 놀 시간을 만드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아빠의 조건에는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필수 아닐까.

 

#4. 2009년 5월 / 적당한 통제의 기준

 

일요일 오후, 고등학교 2학년 아들 녀석만 남겨두고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문이 열리자 아들 녀석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는다.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을 했다. 잔소리 한 마디가 막 튀어나올 상황. 아내가 말린다. 컴퓨터 이용을 가지고, 저녁 무렵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내가 컴퓨터 이용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너무 엄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를 거의 하지 못한다. 그뿐이 아니라 텔레비전도 집에서 없앴다. 물론 컴퓨터 사용과 텔레비전을 치운 것은 아이들과 협의를 거친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아빠의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협의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빠는 통제의 기준을 제시한다. 내 기준으로 가능한 약속한 부분들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강제한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융통성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른들의 기분에 따라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준을 정하고 그것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쉽지 않지만 그 기준을 지켜가도록 애쓰는 것. 그 역시 '아빠의 조건'이 된다.


태그:#아빠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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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홈페이지 초록별 가족의 여행(www.sinnanda.com) 운영자 입니다. 가족여행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좀 다 많은 분들이 편한 가족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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