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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래도 꽤나 청렴하리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2004년 3월 TV에 나와 자신의 형 노건평 씨를 일컬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노인"이라고 말하면서 "서울에서 좋은 학교 나온 사람(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을 지칭)"이 자기 형을 찾아다니며 인사 청탁을 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남상국 사장은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이실직고는 꽤 용감한 고해성사로 보였다. 대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을 권력형 비리로부터 격리시키려는 노력이라 여겨 청렴한 대통령으로 보려 했다.

 

그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26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연수회에서 "지금까지 청탁문화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패가망신을 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군다나 노건평 씨로 불거진 측근과 친인척비리와 관련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형님의 실수가 있어도 제가 잘 관리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런데 그가 지금 검찰의 소환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

 

노건평씨는 농협 세종증권 인수 청탁 대가로 30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결국 지난해 12월 구속되었다. 이때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건평 씨가 힘없는 시골 노인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시절 '부패 권력의 온상'임이 드러났다"고 했는데, 사실이 되고 말았다.

 

노건평씨가 구속될 때만 해도 그저 '대통령의 형님'의 비리쯤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부패 고리를 잇는 줄줄이 사탕의 맨 앞에 있는 하나의 사탕이었을 뿐이다. 검찰에 의하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007년 6월 100만 달러를 받았다.

 

이어 2008년 2월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거쳐 아들 건호씨 사업 자금으로 500만 달러,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았다고 밝힌 3억 원,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2개 등, 우리 돈으로 굳이 환산하자면 70억 원가량이 된다. 검찰의 조사 내용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은 결코 깨끗한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노 전 대통령 반대자들은 '무능하긴 해도 깨끗한 대통령' 쯤으로 눈감아주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동정조차도 얻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깨끗하지도 못한 무능한 전직 대통령'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지금도 편파수사니 표적수사니 하며 검찰의 수사내용을 믿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인 봉하마을 사람들도 노 전 대통령을 감싸고 도는 집회를 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부르기 전에 22일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서면질의서는 답변서가 도착하는 다음 주 중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할 계획의 한 수순으로 보인다. 검찰이 적용할 죄목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의 '포괄적 뇌물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통령들의 호언장담과 비리

 

전직 대통령들의 주변이 비리로 얼룩져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벌들에게서 돈을 받아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 무기징역 및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언도받았다. 형 기환 씨가 노량진수산시장 경영권 강제 교체에 개입, 동생 경환 씨가 새마을운동본부장 시절 73억 원을 횡령했는가 하면, 사촌형, 사촌동생, 처남에 이르기까지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재벌들에게 돈을 받아 비자금 수천억 원대를 조성해 2628억 원을 추징당하고, 17년 징역언도를 받았다. 동서인 금진호씨가 6공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관리했는가 하면, 사촌처남 박철언씨가 슬롯머신 업자로부터 6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후보시절 자신이 당선되면 "친인척이 이권에 개입하거나 정치에 나서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족들에게 "대만 장제스 총통은 며느리가 보석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며느리에게 보석 상자를 선물했다. 며느리는 좋아했지만 열어보니 권총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그 총으로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의 친인척 비리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엄했나를 보여준 말이다. 그러나 차남 현철 씨가 기업들로부터 이권청탁과 함께 66억 원을 수수하여 구속됐다. 처남인 손성훈 씨는 조선대 운영권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남 김홍일 씨가 이용호‧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되었고, 차남 김홍업 씨가 이권청탁과 함께 25억 원을 받아 구속됐다. 삼남 홍걸 씨 역시 공사수주를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 구속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후보시절, 주변 및 고위공직자 등의 부패방지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특검제의 한시적 상설화, 대통령 친인척 재산공개법 제정 방침 등을 공약했다. 현 이명박 대통령 역시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고 권력형 비리수사를 위한 '특별검사 상설화법' 입법 추진을 공약하였다.

 

더 이상 권력형 비리 놔두면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가 죄가 없다거나 그가 죄가 있다거나 하는 판단은 법원이 하는 것이다. 법원이 공정한 판결을 하리라 믿는다. 다만 검찰이 왜 하필 지금에야 노 전 대통령의 비리를 꺼내놓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를 캐내다 보니 노 전 대통령 관련 비리가 나왔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뭐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정권과 대립각을 보이는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검찰이 칼을 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실은 그런 이유로 해서 표적수사란 소릴 듣는 것이다.

 

왜 항상 우리는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장면을 TV화면을 통하여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역대 대통령이나 친인척들이 거의 다 그랬으니 이젠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어, 대통령 그만두고 나면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나라?"라고 하지 않을까?

 

지금 국민들은 허탈하다. '전직대통령 = 권력형 범죄자'라는 공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전직 대통령들이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채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이리 망신을 당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친인척비리를 항시 감시하는 상설기구를 빨리 둬야 한다. 그리고 성역 없이 친인척을 감시해야 한다. 지난 정권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현 정권을 감시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하느라 직접 조사를 미루면 안 된다. 같은 의미로 현 정권이기 때문에 손을 못 대도 안 된다.

 

박연차씨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현 정권의 실세가 누구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청와대 수석이든, 검찰청 사람이든, 법원 사람이든, 경찰간부든지 성역 없이 조사해야 한다. MB의 친구 천신일 씨에 대한 건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검찰은 지난 권력을 향해 칼을 들이대는 것보다 더 날카로운 칼날로 현 정권을 향하여 칼을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만 전직 대통령을 범죄자로 만들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8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넘어가야 할 다섯 가지 고개가 있다. 그 다섯 번째 고개는 게이트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게이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그는 지금 박연차 게이트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누가 아는가? 현직 대통령 주변에 무지막지한 게이트가 번지고 있는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 등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권력형 비리, #친인척 비리, #대통령, #박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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