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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구속은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 '미네르바' 박대성씨 지난 20일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구속은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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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법원은 깜짝 놀랄 만한 판결을 내렸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로 유명한 박대성씨에 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물론 1심 내용이지만, 정권의 눈엣가시가 된 미네르바에게 실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미네르바는 작년에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수많은 예측 글을 썼는데, 이 글들이 마치 예언처럼 쏙쏙 들어맞으면서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 수많은 예측들이 쏟아졌고, 급기야 <신동아>가 가짜 미네르바 인터뷰를 실은, 이른바 '가짜 미네르바'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 미네르바가 올린 글 중에서 7월 30일과 12월 29일에 아고라에 올린 '환전 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 '정부, 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 발송'이라는 글이 문제가 돼 그는 구속되었고, 검찰은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하였다.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인하여 기존의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되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당장 항소하겠다고 반박하였지만, 이미 충격을 받고 또한 그 명예마저 실추되었다. 스스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한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왠지 1121년 전 신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게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작금의 현실은 신라 말기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다.

서라벌을 발칵 뒤집히게 한 글

영화 <천년호>에서 김혜리가 배역을 맡은 진성여왕의 모습.
▲ <천년호>의 진성여왕 영화 <천년호>에서 김혜리가 배역을 맡은 진성여왕의 모습.
ⓒ 천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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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판 미네르바 사건은 신라 말기 진성여왕(眞聖女王)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성여왕은 신라의 제51대 왕으로서, 신라 왕실에서 나온 3번째 여왕이다. 그의 오빠인 헌강왕(憲康王)과 정강왕(定康王)이 자식이 없는 채로 세상을 뜨자, 왕위에 오르게 됐다.

진성여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바로 그녀의 삼촌이었던 각간 위홍(魏弘)과 불륜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즉 삼촌과 조카가 간통을 하고 결국 부부까지 되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은 이미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성여왕 대에는 유모인 부호부인과 남편인 위홍 등 서너명의 신하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측근정치가 펼쳐졌다.

이러한 진성여왕의 정치가 문란하자 신라의 백성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진성여왕과 정치를 비방하는 글을 써서 관청 거리에 방을 붙였다(진성여왕 2년 888년). 이 글이 서라벌 전체에 소문이 나자 신라 왕실이 발칵 뒤집혔다. 왕실은 이 방을 붙인 사람을 수색하고 잡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자 누군가 왕에게 대야주의 왕거인(王巨仁)이라는 사람이 그랬을 거라고 간언하였다. 그리고 확실한 증거 없이 왕거인은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왕거인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시를 썼다. 그러자 그날 저녁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몰리고 번개가 치면서 우박이 내렸다고 한다. 진성여왕은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여 왕거인을 석방시켰다고 한다.

진성여왕은 자신에 대해 비방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였고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 처벌하려고 하였다. 비록 신라시대 때 왕거인은 그러한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감옥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비판하는 시를 남겼다. 지금의 상황과 당시의 상황이 과연 다르다고만 할 수 있을까?

신라판 봉고차 소녀, 효녀지은 설화

신라 52대왕인 효공왕은 효녀 지은을 도운 왕이다. 하지만 그의 대에 이르러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되며 신라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사적 제183호)
▲ 효공왕릉 신라 52대왕인 효공왕은 효녀 지은을 도운 왕이다. 하지만 그의 대에 이르러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되며 신라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사적 제183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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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판 미네르바 사건뿐이랴? 신라판 봉고차 소녀 이야기도 있다. 지난 1월 16일에 인천에 사는 한 소녀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게 2월 5일 청와대에 의해 공개되었다. 그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셋방에서 가난하게 지내면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어려운 가정 사정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말하였다.

그러자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에서 직접 그 봉고차 소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도움들이 모두 이뤄졌다. 기초수급대상자로 지정되기 힘들게 했던 봉고차는 팔렸고, 임대주택 문제도 대한주택공사에 의하여 해결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도 신라에 존재한다. 바로 진성여왕의 후계인 효공왕(孝恭王) 때의 이야기다. 효공왕 때 지은(知恩)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시집도 가지 않고 홀어머니를 32세가 될 때까지 모셨다고 한다. 봉양할 거리가 없으면 품팔이나 구걸 등을 하여 그녀의 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봉양도 한계가 있는 법. 결국 부잣집에 가서 자청하여 몸을 팔아 종이 되겠다고 하며 쌀 10여 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종일 그곳에서 일하고 날마다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전에는 밥이 나빠도 맛이 좋았는데 지금은 밥이 좋은데도 맛이 옛날만 못하고, 마치 살 속을 칼로 찌르는 듯하니 이것이 웬일이냐?"

지은이 결국 사실대로 말하니, 그녀의 어머니는 "나 때문에 너를 종이 되게 하였으니 차라리 빨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하면서 소리를 내어 크게 울고, 지은도 따라 울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본 효종랑은 자기집 곡식 1백 석과 옷가지를 실어다주고 그녀의 몸값을 보상해줘 양민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다른 낭도들도 너나할거 없이 도와주었으며, 효공왕도 이 말을 듣고 벼 5백 석과 집 한 채를 주었다고 한다.

과거와 비슷한 오늘

효녀 지은 설화는 언뜻 보면 굉장히 감동스럽고, 여기에서 그녀를 적극적으로 도운 효공왕은 성군처럼 비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효공왕은 첩에 미혹되어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의 신하인 은영이 그 첩을 죽여 버렸다. 효공왕 때는 바로 후삼국시대의 정립기로서, 궁예와 견훤이 그 세력을 떨치며 신라를 압박해 오던 대혼란기였다.

효녀 지은 설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효녀 지은 설화를 통하여 신라인들에게 왕의 본보기를 보여줘 당시의 상황을 안정시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이후 몇차례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가락동농수산시장에서 박부자 할머니를 만나 그가 20년 동안 쓰던 목도리를 주고 안아주었다. 그리고 지난 19일에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홀트일산요양원을 방문하여 장애인 합창단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불도저식으로 정책을 밀어나가고 있다. 대운하를 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운하 정책의 기초를 다지고 있으며, 촛불시위에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였음에도 막상 촛불이 시들어지니 당시 시위를 했던 사람들을 잡아 그 죄를 묻고 있다.

미네르바처럼 억울하게 옥에 들어간 왕거인, 봉고차 소녀처럼 본보기의 수혜자일 뿐인 효녀 지은 그리고 갈수록 악화되는 대북관계와 효공왕 때 맞은 후삼국시대 등 과거와 지금은 비슷한 면이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하여 경제사정은 지난 정부에 비하여 크게 어려워졌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청년들의 실업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들의 위기를 스스로 무시한 신라가 결국 멸망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역사의 준엄한 경고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미네르바 사건을 보면서 신라시대 왕거인 사건이 떠올라 써 본 글입니다. 이와 함께 효녀 지은 설화도 봉고차 소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같이 써보았습니다.



태그:#미네르바, #신라, #왕거인, #진성여왕, #효녀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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