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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약물 투입

지난 달 메이저리그(이하 MLB)에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 양키스의 간판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이하 A-로드)의 스테로이드 양성반응결과의 발표. 그리고 뒤이은 A-로드의 약물투입사실의 인정과 사과는 MLB팬들을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이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지금까지도 국내 각종 MLB관련 사이트나 카페들은 A-로드의 이야기로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A-로드'라는 야구선수가 가지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베리 본즈라는 '전(前) 야구영웅'의 스테로이드 복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복용 여부를 위증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첨예한 문제들로 인하여 MLB는 진작부터 약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물론 발단은 은퇴한 야구선수인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에 기록된 '폭로'였지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선수들의 약물복용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MLB사무국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시점에서 A-로드의 약물 복용사건까지 터지면서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진 상황이 되었다. 물론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의 MLB의 약물논란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그것의 해악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시즌 당시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모습. 이 해에 그는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 포효하는 뉴욕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2005년 시즌 당시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모습. 이 해에 그는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 엠엘비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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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A-로드의 약물복용, 정확히는 약물투입 사건을 잘 살펴보면 어딘가 친숙한 느낌을 받게 된다. 도대체 그 '친숙함' 이란 무엇일까. 약물파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과정이 지금의 우리나라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자세, 특히 도덕적인 해이와 관련된 부분과 접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이 사건에서 그것을 보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후 논하기로 하고, 도대체 왜 A-로드가 '최후의 보루'였는지부터 시작해보자.

베리본즈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까지

일단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베리 본즈' 라는 야구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필수일 것이다.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 선수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베리 본즈'라는 이름은 아마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같은 지구에 소속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간판타자였고 만날 때마다 박찬호선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굳이 MLB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아마 그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명성'이 되었든 '악명' 이 되었든.

통산 762 홈런에 516도루 그리고 통산 2할9푼8리의 타율과 2935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그의 누적기록은 그야말로 '불가침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20년간 매 시즌 약 35개 이상의 홈런과 25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아마 야구 팬이라면 저 정도의 기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한 시즌 73개의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통산 최다 홈런기록 역시 그의 차지이다.

그런 그의 기록에 이제는 모두 '*' 표가 붙게 생겼다. 바로 그의 기록이 약물의 힘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이 모든 것이 약물로 이뤄낸 것인지의 여부는 의문이지만 일단은 논외로 하자. 즉, '*' 마크를 그의 홈런 기록에 붙여넣어서 공식적인 기록으로서의 신뢰성을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약물복용을 했더라도 그저 그런 선수로 생활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문제는 그는 '너무' 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심증이지만, 그는 '흑인'이었고 평소 기자들에게 거만하고 매스컴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본즈 외에도 몇몇 스타선수들의 약물 복용 사실로 인해 팬들의 실망과 비난은 커져만 갔다. MLB의 인기 자체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MLB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 즉 '슈퍼스타'는 A-로드였다. 약물로 부터 '깨끗한' 그가 본즈의 통산 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그날을 꿈꾸게 된 것이다. 진정한 '홈런왕'으로 '간택'되었다고나 할까. A-로드는 매시즌 40개의 달하는 홈런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고 현재 553개의 통산홈런을 기록하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데뷔 초기 때부터 남다른 천재성을 과시했던 A-로드는 시애틀 마리너스 시절 40-40클럽(한 시즌에 40홈런과 40도루)에 가입하기도 할 정도로 호타준족에 대명사였다. 재밌는 것은 40-40에 가입한 유일한 3명의 선수, 호세 칸세코, 베리 본즈, A-로드가 모두 약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단순히 호타준족을 넘어서서 가장 수비부담이 큰 포지션인 유격수의 위치에서도 그의 능력은 발군이었다. 말 그대로 공격, 수비, 주루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가 탄생한 것이다. 한국 야구의 올드팬이라면 최전성기의 이종범 선수를 떠올리면 되겠다. 이쯤 되니, 그에게 집중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2000년시즌 후 텍사스와의 FA계약 당시 성사된 '10년간 2억5천2백만불'이라는 전대미문의 계약은 그를 미국 프로스포츠선수 중 최고의 갑부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지나친 연봉때문에 잠시 비난에 시달렸지만 2003년과 2005년 리그 MVP를 수상하며 '돈 값은 충분히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난 여론을 잠재웠다. 실력과 연봉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가 난데없이 스테로이드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판이 깨진 셈이다.

약물사건에 휘말린 경우 많은 경우에는 일단은 부인을 하고 본다. 그리고 종국에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그 이후의 과정은 두 가지이다.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되거나(베리 본즈처럼) 혹은 그것이 진심이든 어떻든 일단 대중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시즌을 보내고 완전히 용서받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시 팬들이 받아들이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2000년 리그 MVP이며 현재 양키스 소속의 강타자 제이슨 지암비나 역시 양키스 소속의 좌완투수 앤디 페팃같은 선수가 그런 경우의 대표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A-로드 역시 그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사건이 폭로가 되자 일단 발빠르게 사과를 하고 시범경기에서 묵묵히 경기를 치르는 중이다. 아마 원정경기에 갈 때마다 온갖 야유와 조롱에 시달리겠지만 일단 끝끝내 부인을 하다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던 몇몇 선수보다는 나은 처지일 것이다. 게다가 결국 실력으로 확실하게 보여준다면 비난 여론도 조금은 잠잠해질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아무리 위대한 기록을 세워나간다고 해도 그의 뒤에는 약물이라는 수식어가 지겹게 따라다닐 것이다.

책임과 진정한 사과의 완전한 부재상태의 발생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래도 도덕적인 책임을 시인하고 대중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야구 이야기는 그만하고 드디어 요즘의 정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래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 용산에서의 참사나 청와대 이메일 파문 그리고 일제고사에서의 어이없는 조작사건 등. 도저히 법치를 외치고 대한민국의 문제는 법치가 확립이 되지 않아서-라고 주장하는 정부가 했다고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그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 듯하다. 제대로된 사과를 하기보다는 간단한 유감표명이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남의 탓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청와대 이메일 사건을 보더라도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잡아떼다가 도저히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공개되면 그제야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얼렁뚱당 넘어가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가 아닌 도덕적 무감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절대 약물복용은 없다-라며 오리발을 내밀다가 종국에 가서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MLB의 사태와 흡사하지 않은가. 지난 정부의 실책을 등에 업고 마치 무너져가는 경제와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양 'MB 정부'가 등장했던 과정은 마치 베리 본즈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MLB사무국이 마지막 희망으로 A-로드를 믿었던 것과 꽤나 비슷하다. 하지만 벼랑끝에 몰린 MLB는 이제 벼랑으로 떨어졌다. 믿었던 A-로드 역시 소위 '약쟁이'가 된 것이다. 마치 주가 3천과 '모두가 성공하는 시대'를 말하며 희망차게 시작한 현 정부의 지금 처지와 어떻게 이렇게 같을 수가 있을까. 경제난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파렴치한 거짓말이 아무렇지 않게 고위 공직자들이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사과가 없다. 잘못은 저지르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면, 이나라 정부의 책임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그 권위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엄연히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 아닌가. 궁극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가장 확실한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맡은 분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남의 탓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전제조건이다. 금지약물을 복용했던 선수들도 비난을 받지만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서 결과적으로는 재기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서 계속 남의 탓만 한다면 스스로 재기의 발판을 걷어차는 행위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행태는 정부가 국민을 그저 조용히 있으면 모든 것을 망각하는 우민(愚民)으로 여긴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수많은 만행에 대해서 여전히 사과를 하지 않는다며 그들을 비난할 때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일본과 우리의 관계에는 진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정서의 저변에 그들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사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유감'이니 '통석의 념' 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공식적 차원의 사과는 여전히 전무하다. 우리네의 '냄비근성' 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만 나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냄비근성이 있는 국민이라도 결코 잊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런 잘못을 지금 정부가 똑같이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혹시 위정자가 국민에게 머리숙여 '사과' 한다는 것은 마치 정부가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국민에게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하고 더군다나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결국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인 만큼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닌 것이다. 국민은 '부당한 세력'이 아니고 일부의 사람들이 말하는 '반정부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은 사실 정부의 주인이며 대통령의 주인이다. 주종관계가 뒤집혀서는 안된다. 그것이 뒤집힌 정치체계를 우리는 '독재'라고 부른다.

우리는 과거의 왕들이 자신을 가리켜 '과인(寡人)'이라 스스로 낮추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신분사회에서 스스로를 낮춰서 뭐하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혹은 당시의 사대정신때문에 국가의 왕이 스스로 굴종적인 표현을 쓴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위정자가 스스로 그것을 '과인' 즉, 자신의 덕이 부족함으로 인함이라 표현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좋은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현에 설사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도가가 스스로 책임을 지며 나설 때, 비로소 국민과의 신뢰가 공고해질 수 있고 국민이 지도자를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지금의 정부에게서, 그리고 그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에게서 그런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사실 지금의 경제난이나 여러 어려움을 생각해 볼 때 국민이 사분오열되어 갈등이 조성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더 큰 어려움의 전주곡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도자가 오히려 그러한 갈등의 조성의 한 몫을 거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불경한 생각인가?

나는 그들이 자주 말하는 대로 '정부의 전복을 꾀하는 세력'도 아니며 '좌빨'도 아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다. 왜 '정도'를 버리고 자꾸만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패도'를 선택하는지 심히 답답하다. 나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상당 부분의 책임과 능력은 위정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를 위해서 국민의 권력을 그들을에게 '위임'한 것이고 나는 그것이 대의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부디 이런 '고언(苦言)'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머리를 숙이는 그때가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태그:#MB정부 1년, #이명박 대통령, #A-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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