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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이분과의 악연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나 뿐만 아니라 지난 촛불집회를 경험했던 중고등학생, 학생, 시민들 중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2004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촛불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 당해서, 온 나라가 들썩이던 때였다. 많은 대학생들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한나라당이 몰아냈다며 분노하였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이 저항운동 덕분에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그 이후 장애인 활동보조인투쟁이나, 이라크파병문제, 평택기지이전 문제 등, 노무현 정권에 저항했던 일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경찰서에 붙잡혀가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은 꽤나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평택미군기지이전과 같이 노무현 정권은 다소 장기간의 시간을 두고, 여론선전과 탄압을 병행했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길어진 시간동안 정부는 각종 광고를 동원하여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정책에 저항하기도 상당히 힘들었다. 사람들은 대개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정치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지난, 2월 7일 용산범국민대회에 참여하였다가, 인도에서 경찰에 연행되고 나서, 나는 달라진 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집시법 2범'이라고 적힌 나의 신원조회 문서가 떠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정권 1년과 함께 한 나의 기록이었다.

 

물론, 그것은 촛불집회의 기록이었다. 이명박의 1년은, 뒤끝의 1년이었다. 촛불이 한창 타오를 때는 성의는 없지만 형식상 사과를 했다. 그런데 촛불집회이후 배후를 잡으라고 명령하더니, 최근에는 촛불집회 담당 수석부장판사가 형량을 늘리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내가 최소한의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보았던 대통령 중에, 이렇게 자신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려고 달려드는 대통령은 처음 본다.

 

최근, 용산참사에서도 철거민단체가 철거민을 도와준 것을 가지고, 철거민들의 배후라고 이야기하였다. 이건 마치 학생들의 연대단체가, 등록금 투쟁을 하는 학생들을 도와준 것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답게 제3자 개입 금지를 들고 나오더니, 전철연이라는 조직을 잡으려고 안달이었다.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빈곤과 철거민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나는 또 다시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이 있다며 집회에 참가했다가 인도에서 연행 당했다. 그리고 서울의 경찰서에서 지문을 찍어야 했다. 집시법 1범을 추가하여, 3범이 된 것이다. 단무지와 김치만 있는 유치장의 밥도 맛보았다. 이명박정권의 뒤끝 있는 1년은, 나의 신원에, 전과 3범을 기록한 1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4년이나 남으셨다니, 내 뒤에 얼마나 더 많은 별이 달리지, 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범법자가 될지 걱정이다 .

덧붙이는 글 |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이명박1년,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MB정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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