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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정성껏 붙인 우표가 돋보이는 우편물입니다. 우표도 아주 이국적입니다. 아주 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군요. 여유가 있는 시간이어서 일부러 자로 재어보았습니다. 가로가 5.0 cm, 세로가 2.2 cm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우표 치고는 높이에 비해 폭이 아주 긴 축에 속하는 우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표 안 인물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입니다.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로 되어 있습니다. 아니 내국인도 아닌 외국인 상(像)을 우표 도안으로 만들었다면 그의 유명세가 세계적이라는 말이 될 터인데, 정작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인터넷을 일부러 검색해 봤습니다.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 1809-1852)는 점자를 창안한 사람이었습니다. 프랑스 사람으로 어릴 때 두 눈을 잃어 평생 어둠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도움으로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과 같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점자를 창안했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방면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은 두뇌 깊은 곳에 기억으로 잘 저장하고 있으면서도 어둠을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한 루이 브라유를 몰랐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지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린 너나 없이 세속적 명예와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 영웅 영국의 처칠은 쉽게 기억하면서 세계 대통령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조지 부시는 잘 알고 있으면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쉽게 떠올리면서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루이 브라유를 몰랐다니요.

이 세상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발전한다고 피력한 역사가가 있긴 한데, 이즈음 나는 이 '창조적 소수'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아닌(물론 토인비는 이들을 창조적 소수로 보았을 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둠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빛을 던져 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계는 공생공존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죽음이 아닌 살림의 법칙에 충실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평화수호라는 이름으로 일으키는 전쟁, 박애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강자의 통치, 소수를 몰아내는 다수의 문화 횡포, 이런 것에 신물을 느낍니다. 부끄럽게도 오늘 알게 되었지만 루이 브라유와 같은 사람이 진정 역사의 발전에 큰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창안한 점자로 삶을 풍요롭게 영위하며 자신뿐 아니라 불우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많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브라유와 같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 든든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선사한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을 미안한 마음으로 축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태그:#루이 브라유, #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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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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