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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신인 준하(정준하)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제사음식을 지나치지 못한다. 준하가 먹어버린 것을 알았으나 새로 준비할 새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제삿상에 올리자 화가 난 조상의 모습.
▲ 얼마전 방영했던 MBC TV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식신인 준하(정준하)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제사음식을 지나치지 못한다. 준하가 먹어버린 것을 알았으나 새로 준비할 새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제삿상에 올리자 화가 난 조상의 모습.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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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날 정말 조상님이 오시긴 하는 걸까?

수십 년간 제사를 지내오면서, 제사 음식을 준비하면서 종종 의문이 들었다.

'제삿날 영가들이 정말 오시는 걸까?'

시아버님 살아계실 땐 음식 만들 때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집어 먹기라도 하면 호통이 떨어졌다.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나니 호통치는 분도 안 계시고 아이들도 다 커서 음식에 손대는 경우도 없다.

TV 인기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선 식신인 자손(정준하)이 제사음식을 거의 먹어 치워, 그득그득 수북이 산봉우리처럼 쌓여 있어야 할 접시에 음식이 별로 없자, 먹을 음식이 없다며 화가 난 조상이 제삿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자손(정준하)을 발로 차는 장면이 있었다. 코피를 터트리기까지 하고도 "이 자식은 어려서부터 제삿밥을 먹었어. 평생 재수 옴붙게 하겠어" 하고 사라진다.

보면서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제사지내는 시간은 꼭 자시(밤 11시-새벽 1시)여야만 한다?

우리집엔 설을 앞두고 10일 사이에 3번의 제사가 있다. 먼저 친정아버지 제사, 1주일 후에 시아버지 제사, 3일 후에 시할아버지 제사가 있다. 그리고 15일 후에 설(구정)이다. 친정이야 서울이니까 별 무리가 없지만 시댁은 청주다. 설까지 포함해 3번을 왔다갔다 해야 한다.

게다가 제사는 꼭 11시가 넘어 12시 거의 되어 지낸다. 며느리 셋 중 전업주부는 하나도 없다. 형님은 아이들 셋 키우고 어머님 모시면서 가게를 열고 장사하시느라 잠 한번 원없이 주무시지 못하고 늘 만성피로에 시달리신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제수 준비하여 12시 다 되어 제사 지내고 나면 두 집 식구는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고 뒷설거지 다 하시고 주무신다.

뒷설거지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민망하고 미안하기 그지 없다. 6시면 일어나 출근준비 해야 된다는 얄팍한 자위를 하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뻐근한 어깨를 두드려가며 열심히 달려 집에 들어서면 새벽 3시다.

얼마 전까진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날에도 나까지 꼬박꼬박 내려가야 했다. 시댁 어른들이야 아들만 내려오고, 나머지 식구들은 설 때나 내려오라시지만 보수적인 남편 덕분(?)에 꼭 내가 가야 했다. 시간 좀 당기자고 해도 돌아가신 날, 다시 말하면 마지막 살아계신 날 지내야 한단다. 따라서 예전엔 자시(밤 11시-새벽 1시)에 지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수험생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1년 동안은 면제(?)받았다.

혹자는 그 시간이 영가들이 활동하는 시간이라서 그렇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시댁엔 오늘까지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오늘은 생각난 김에 남편 보내면서 다시 한 번 얘기를 시작했다.

"제사 시간 좀 당기면 안돼?"
"한두 시간 당기는 게 뭔 의미가 있어?"
"남자들은 별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음식 준비해야 하는 여자들은, 살림하는 여자들은 의미가 있다고!"
"제사 지내고 뒷설거지 하고 1시 2시 되어 잠자리 들고 새벽같이 일어나 식구들 챙기고 직장 나가야 하고."

"더욱이 남녀는 생리적 구조가 달라서 남자들은 잠이 조금 부족해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잠이 부족하면 호르몬계에 교란이 생겨 다음날 생활이 안된대. 게다가 일찍 일어나 식구들 아침 챙겨야 하고 직장 나가야 하고." 
"집안 살림도 중요하지만 직장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잖아. 프로라고!"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 풍습도 변해야 하는 것 아냐? 예전에야 농경사회고 집안식구들이 다 가까이서 살고 주업이 농사일 때는 가능했지."
"이젠 다 멀리 떨어져 살고 하는 일도 제각각이고 제사 끝나면 각자 돌아갈 길도 멀고 참석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서로 의논해서 조정할 수 있는 거 아냐?"

"제사시간 당겨지면 조상님들이 밥 드시러 못 오신대? 요즘에 멀리 이사가도 다 찾아 가신다는데 시간 좀 당겨진다고 별 일 있을까?"
"제사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집들도 변해가고 있는데, 우리집이 앞장서서 바꾸자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만 꼭 그 시간을 고수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제사라는 것도 사람이 살아오면서 생긴 시대적 산물이지. 시대에 따라, 지역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거지. 지역마다 생산물에 따라 제수용품도 다르잖아?"
"우리 어렸을 때 제삿상에 꼭 올리던 알록달록한 사탕도 요즘엔 안 올리잖아." 그 사탕 먹고 나면 입술 언저리가 빨간 것이, 말이 아니었다.

"전통을 그렇게 따진다면 당신은 농사짓고 살아. 컴퓨터도 인터넷도 쓰지 말고, TV도 보지 말고, 옛날식으로 살아. 삶의 방식은 바꾸면서 왜 그것만은 그렇게 집착하는 건데."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남편은 알았노라고 했다. 자기 맘이 아니고 형님, 동생과 의논해 보겠다고 한다. 전에도 몇번 얘기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니 오늘은 한 발 물러선 느낌이다.

과거의 것을 재해석없이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건 전통이 아니라 관습에 불과하다

남자가 가장으로서 집안일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물 건너간 지 언젠데, 아직도 시대를 읽을 줄 모르는 이 남자는 외계에서 왔나?

전통이란 옛것을 그대로 대물림하는게 아니고 현재와 만나 재창조될 때, 진정한 전통이 아닐까? 과거의 것을 아무 반성없이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박제된 전통이라 생각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전통이 아니라 관습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의 문화와 어울려 재해석해서 창조될 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바른 전통이라 본다. 제사란 돌아가신 분의 기일을 맞아,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 살아계실 때의 모습을, 추억하고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같이 모여 관계또 다지고, 정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다음 제사 때에는 제사 지내는 시간이 좀 앞당겨지고 늙어가는 형님 도와 뒷설거지 좀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태그:#제사 , #거침없이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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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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