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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한반도 끝자락 땅끝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천년 고찰 미황사에 가보았는가. 그 미황사에서 지금도 아스라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소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달마대사가 소 울음소리를 오선지로 삼아, 중생이 이름만 불러도 구원해 준다는 관세음보살과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지장보살을 악보로 내걸고 있는 것이 보이던가.  

 

미황사에 가서 미황사를 갓난아기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남도 금강산 달마산을 보았는가. 울퉁불퉁 공룡 등줄기처럼 쑥쑥 솟은 기기묘묘한 바위를 사리알처럼 품고 있는 달마산이 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던가. 이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찾아오라고 하던가. 아니면 어차피 세상은 그런 것이니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맞장을 뜨라 하던가.  

 

그대는 달마산이 사구·통호·송호 등 산맥을 거느리며 한반도 최남단 땅끝 사자봉에 잠시 멈추어 섰다가 산맥을 저 짙푸른 바다로 수평선처럼 이끌고 나가 마침내 제주도 한라산으로 우뚝 솟아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달마산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거기 한라산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던가.

 

그 달마산 산마루 동쪽, 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아래 있는 미타혈이라는 구멍은 보았는가. 마치 대패로 반듯하게 밀고 면도칼로 섬세하게 깎은 듯한 그 낭떠러지에 두세 사람은 들어가 앉을 만한 넓이로 뚫려 있는 숨구멍. 그 숨구멍이 한반도를 살리는 숨구멍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은 없었는가.

 

 

화장기 하나 없는 수줍은 시골처녀 닮은 미황사 대웅보전

 

수석전시장처럼 삐쭉뾰쪽 솟아있는 바위가 한 폭 풍경화로 다가오는 달마산(達摩山 489m, 전남 해남군 송지면, 북평면). 그 달마산 비좁은 품에 파고들어 보석처럼 영롱한 불심을 뿜어내고 있는 아름다운 절 미황사(美黃寺,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산247). 거기 달마산이 있어 미황사가 있고, 거기 미황사가 있어 달마산이 있다.

 

11월9일(일) 아침 10시.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달마산 미황사로 간다. 달마산과 미황사는 나그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첫 발을 내딛는 곳이다. 미황사 들머리에 들어서자 세운지 얼마 되지 않는 듯한 일주문 하나가 왼쪽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서 있고, 산길 오른 편에는 큼직한 바위 하나가 호랑이처럼 드러누워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낙엽을 조심조심 밟으며 5분쯤 더 걸어 올라가자 거기 수천 개 불상처럼 우뚝우뚝 솟은 바위를 품은 달마산 허리춤에 미황사가 아늑한 둥지를 틀고 있다. 소나무가 드리워진 돌계단을 따라 절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눈에 먼저 띠는 것이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달마산이다.

 

미황사 대웅보전은 단청을 하지 않고 나무결이 드러나는 그대로 섬세한 조각을 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그래서일까. 아름답다기보다는 예쁘고 곱다. 알록달록한 단청을 칠한 다른 절에 있는 부처님전이 화장을 아주 잘한 세련된 도시처녀를 닮았다면 미황사 대웅보전은 화장기 하나 없는 수줍은 시골처녀를 닮았다고나 해야 할까.

 

 

미황, 아름다운 소 울음소리와 금인을 상징하는 뜻

 

언뜻 대웅보전 처마 곳곳에 멋들어지게 새겨진 나무용이 금세라도 갈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웅보전을 순식간에 휘감아 달마산을 품고 있는 짙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잘 빚어낸 조각품처럼 예쁜 대웅보전을 한 바퀴 휘이 돌아 다시 절 마당에 내려선다. 미황사 특징은 곳곳에 돌담과 돌계단이 있다는 많다는 점이다.

 

안내자료에는 "미황사(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 말사)는 서기 749년, 신라 제35대 경덕왕 (?∼765) 8년에 의조가 처음 세웠다"고 적혀 있다. 미황사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 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절이 있자 의조는 인도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때 금인이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라 말했다. 의조는 금인 말을 믿고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갔다. 의조가 달마산에 이르러자 소가 갑자기 크게 울면서 그대로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의조는 그곳에 통교사를 짓고, 소가 마지막으로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美黃寺)란 이름은 이때 소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아름다울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하는 누를 '황'(黃)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미황사는 그 뒤 수백 년 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597년, 선조 30년에 정유재란으로 절이 불타자 1598년에 만선이 고쳐지었다. 이어 1660년, 현종 1년에 성간이, 1754년 영조 30년에 덕수가 고쳐지었다.

        

 

나는 죽어 쓸쓸한 부도 하나 남길 수 있을까

 

"달마산에는 옛날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봉수대는 완도에 있는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달마산은 또한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 이 지역 사람들이 달마산 산봉우리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하기도 했다."

 

안내자료를 들고 미황사 절마당에 서서 기암괴석이 숲처럼 빼곡하게 서 있는 달마산을 오래 바라본다. 만약 가족 품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저 달마산에 올라 천불 만불처럼 우뚝 우뚝 솟아나 있는 저 바위 앞에서 선종을 일으킨 달마처럼 9년쯤 면벽참선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모진 이 세상은 아직도 나를 꽁꽁 묶어놓고 놔주지 않는다. 

 

처음 바라보는 순간, 순식간에 나그네 마음 깊숙이 화두처럼 새겨져 버린 달마산. 해남읍으로부터 약 28㎞ 떨어져 있는 달마산은 해남군 현산·북평·송지 등 3개 면을 품에 안고 있으며, 두륜산과 대둔산 맥을 잇고 있다. 그러니까 현산이 달마산 머리라면 북평은 달마산 등이며, 송지는 달마산 가슴이라 할 수 있다.

 

절 마당 저만치 제 홀로 쓸쓸하게 서 있는 부도 위에는 자그마한 돌탑이 몇 개 올려져 있다. 누가 어떤 소원을 빌며 이 돌탑을 쌓았을까. 이 부도 주인은 또 누구일까.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데 나그네는 이 세상 어디쯤 머물고 있는 것일까. 나그네는 죽어서 이런 쓸쓸한 부도라도 하나 남길 수 있을까.

 

 

경기침체로 몸과 마음이 춥고 가난할 때 찾고 싶은 곳

 

돌계단을 따라 응진당(보물 제1183호)으로 오른다. 단청이 고운 응진당 앞에도 용 두 마리가 입을 크게 벌린 채 금방이라도 용트림을 하는 것만 같다. 응진당 곁 자그마한 뜰에는 60대 중반 남짓해 보이는 보살이 겨울 냉이를 캐고 있다. 겨울 냉이가 바께스 가득 들어 있다. 겨울 냉이가 많으면 이듬 해 큰 눈이 와서 풍년이 든다고 했던가. 

 

응진당에서 내려와 절을 한 바퀴 휘이 돈다. 미황사에는 대웅전과 응진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명부전과 달마전, 칠성각, 만하당, 세심당 등도 달마산 허리춤에 안겨 있다. 저만치 절 마당 한 귀퉁이 공양간 마루에는 차나무 열매가 햇살을 받으며 사리알 같은 진갈색 알맹이를 톡톡 터뜨리고 있다.

 

차 씨앗을 받고 있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보살에게 "그 차 씨를 받아 어디로 쓰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보살은 "내년 봄에 이 차 씨를 심어 차밭을 늘리려고 그런다"며 쌩긋 웃는다. 나그네가 다시 "이 차 씨앗을 화분에 심어도 싹을 틔울 수 있나요?"라고 묻자, 보살이 차 씨 예닐곱 개를 건네며 "집에 차나무 한 그루쯤 있으면 참 좋지요" 한다.

 

 

생전 처음 왔다가 첫눈에 반해버린 달마산과 미황사. 그대여, 경기침체로 몸과 마음이 춥고 가난할 때면 달마산 미황사에 한번 가보라. 만약 달마산 미황사에 갔다면 그냥 돌아오지 말자.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천년 고찰 두륜산 대흥사, 조선이 낳은 대문호인 고산 윤선도 숨결이 깃들어 있는 녹우단도 꼬옥 둘러보자.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인 삶을 통해 내 삶을 다시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전사시인 김남주 생가와 여성해방시인 고정희 생가도 둘러보자. 보길도를 이어주는 땅끝마을에 서서 가만가만 두 시인이 쓴 시를 읊조려보자. 끝으로 땅끝마을 특산품인 무공해 김과 달콤한 황토고구마를 맛보는 것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천안-논산천안고속도로-광주-나주-해남터미널-완도방면 월송-미황사 
※광주에서 해남 직통(1시간30분) 버스를 타고 해남터미널에 내려 완도 방면 버스를 타고 월송에서 내린 뒤 택시(5천원)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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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 #응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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