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땡겨울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곱게 핀 그 개나리꽃을 바라보며 또 하나 새로운 희망을 품습니다
▲ 겨울에 핀 개나리 땡겨울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곱게 핀 그 개나리꽃을 바라보며 또 하나 새로운 희망을 품습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남자들 공장 가고 공사장 간 사이
닭 쫓는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 와
가슴에 불 하나씩 켜 놓고 사는 사람들
촉수 낮은 불빛들 깨뜨려 놓고
닭집 부수고 개집 부수고
쫓기는 달구새끼들처럼
우르르 몰려가 버린 시청 철거반들

가슴이 캄캄해서
어젯밤 늦도록 깨진 불빛들 긁어모아
불 지펴 놓고
소주잔 기울이던 사람들
오늘은
아침까지 가로등 하나 불 켜 놓고
불빛 조금씩 나누어 갖는지
공사장 출근길 조용하고

민병국씨 집 울타리
조그만 개나리꽃
사람들 가슴에 되살아나는 불빛처럼
노오랗게 피어납니다

-김해화, '새치골 개나리' 모두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경제 도깨비가 송곳 박힌 방망이를 모질게 휘두르고 있는 땡겨울 속에 영하 1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강추위까지 매섭게 휘몰아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 속에 마구 허덕이는 서민들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연탄 한 장 값이라도 아껴보기 위해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발버둥칩니다.

저쪽 도시 한 귀퉁이에서는 정부와 한나라당이 세차게 몰아붙이고 있는 뉴타운 재개발정책 때문에 하루아침에 살던 집이 강제철거 당해 오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허연 입김을 마구 내뿜으며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주는 얼마 되지 않는 이전비로는 도시 그 어디에도 이사를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11월 26일(수), 겨울철에는 재개발 지역에서 세입자들에 대한 강제철거를 못 하게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는 우선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재개발 등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세입자 주택 철거를 원칙적으로 금지했습니다. 또한 부득이한 경우에도 겨울철 철거는 세입자들이 사업구역 내 다른 장소로 이주한 뒤에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헛말일 뿐입니다. 성동구 재개발 지역에 사는 한 세입자(2600가구)는 "지난 11월 27일(목), 그러니까 서울시가 겨울철 강제철거를 못하게 한다고 밝힌 그 다음 날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집이 강제 철거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보니 살림살이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입니다.

철거업체가 창문이며 싱크대, 방바닥마저 모두 부숴놓아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세입자는 이사 갈 집도 이미 정해놨고 조합에 이주비를 신청하려던 때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철거를 한 재개발조합 측에서는 "이미 명도 소송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철거를 허가받았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서울시 또한 법원 판결에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행정개입보다 소송으로 이루어진 것이 상위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서울시가 내놓은 겨울철 강제철거 금지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지침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서울시 지침에는 각 구청에 조합 임원과 공무원, 시민단체로 구성된 분쟁조정 점검반을 만들게 되어 있지만 이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14조.
▲ 밑둥치까지 잘린 삶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14조.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대한민국 헌법 제 35조
▲ 서민들 겨울나기는 더욱 춥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대한민국 헌법 제 35조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철거민도 국민이다!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대한민국 헌법 제16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대한민국 헌법 제 35조

당장 오갈 곳이 없어진 이들 철거민들은 뉴타운 재개발 자체에 반대하는 전국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기자회견과 뉴타운 성토대회, 집단 행정심판을 위한 서명전 등 '뉴타운 개발 전면재검토'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뉴타운을 향한 꿈에 부풀어 있는 정부와 한나라당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지도위원 이호승)에서는 ''철거민도 국민이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지난 10월 30일(목) 코엑스와 현대산업개발 앞에서 "철거민 인권 유린하는 오세훈 시장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이어 11월에도 수원 이목동, 서산 창리, 성수동, 김포 등지 철거민을 위한 사진전 및 주거생존권 쟁취대회를 잇따라 열었습니다.

전국철거민협의회 관계자는 "철거민들 현실은 정부의 수많은 부동산 대책에서 부정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관계자는 "철거민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탄압하는 시행사와 이들의 만행을 경원시하고 있는 행정관에게 철거민 인권탄압을 중단할 것과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철거민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금 개발지역 주민들은 생활의 터전에서 곧 내쫓길 처지에 놓여 있으며, 어렵게 마련한 내 집에서저차 쫓겨나 전, 월세로 전전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그것조차 어려운 서민들은 매서운 겨울철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이 강제철거를 당할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이미 강제철거를 당해 거리에 내던져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아프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도 가슴 시린 일입니다. 대체 가난한 서민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요. 정부는 언제까지 20세기 낡은 유물인 시멘트식 경제를 이끌고 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뉴타운을 짓기 위해 전세 값도 안 되는 이주비를 앞세워 강제철거에 나서고 있는 건설사 쪽 사람들은 아예 부모 형제나 자식조차도 없는 것일까요. 

그렇찮아도 먹고 살기가 빠듯한 도시빈민 두 번 울리는 뉴타운 재개발 정책, 과연 이대로 가도록 놔둬야 하는 겁니까. 부자들은 자꾸 부자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꾸 가난해지게 만드는 정책이 지금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밀어붙히고 있는 뉴타운 재개발 정책이 아닐까요.

도시빈민들이 겨우 식의주를 이어가는 닭장 같은 집들에 대한 강제철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 소원 도시빈민들이 겨우 식의주를 이어가는 닭장 같은 집들에 대한 강제철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그 무지막지한 철거반원들을 '독고다이'라 불렀습니다
▲ 철거민 시린 마음에 어서 봄이 오기를 그 무지막지한 철거반원들을 '독고다이'라 불렀습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땡겨울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곱게 피어나는 개나리꽃

도시빈민들이 겨우 식의주를 이어가는 닭장 같은 집들에 대한 강제철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창원에서도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강제철거가 잇따라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노동자들이 창원공단으로 몰려들면서 가건물이 많이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때 가건물을 망치나 해머, 도끼 등을 사용해 순식간에 부숴버리는 그 무지막지한 철거반원들을 '독고다이'라 불렀습니다. 창원공단을 찾아든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그 가건물을 살림살이가 있는 그대로 마구 부수고 짓밟는 그들이 마치 일본군 카미가제 특공대 '독고다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 시에서 김해화 시인이 말하는 '새치골'은 제 고향 마을(지금 창원시 상남동) 남동쪽에 있었던 들녘 이름입니다. 그 새치골에는 한때 제 부모님이 피땀 흘려 농사를 짓던 논 다섯 마지기 남짓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새치골은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기름 진 논이 모두 예비 주택지나 도로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때 그곳 새치골에는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이 임시로 살기 위해 가건물을 많이 지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개발공사에서 농민들에게 보상금을 주고 땅을 미리 사들였지만 도시정비가 수년 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그 땅이 마치 주인 없이 버려진 땅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인도 아마 그 새치골에 가건물을 짓고 살았던가 봅니다. 근데, 이 '독고다이'들이 "남자들 공장 가고 공사장 간 사이 / 닭 쫓는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와" 집과 살림살이 모두를 엉망진창으로 부숴버린 모양입니다. 그리고 "닭집 부수고 개집 부수고 / 쫓기는 달구새끼들처럼 / 우르르 몰려가" 버렸나 봅니다. 

그때 새치골에서 강제철거를 당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가슴이 캄캄해서 / 어젯밤 늦도록 깨진 불빛들 긁어모아 / 불 지펴 놓고 / 소주잔 기울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독고다이'에게 집과 살림도구를 몽땅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침까지 가로등 하나 불 켜 놓고 / 불빛 조금씩 나누어 갖는지 / 공사장 출근길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때 시인 눈에 이리저리 다 부서져 버린 "민병국씨 집 울타리"에 노랗게 피어나 있는 "조그만 개나리꽃"이 보입니다. 시인은 땡겨울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곱게 핀 그 개나리꽃을 바라보며 또 하나 새로운 희망을 품습니다. 그 개나리꽃이 "사람들 가슴에 되살아나는 불빛처럼 / 노오랗게" 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시인 김해화, #새치골, #강제철거, #독고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