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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안내 데스크 하나만 덩그러니 국립중앙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주인 없는 안내 데스크 하나만 덩그러니 국립중앙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 홍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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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날씨가 훈훈했던 22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박물관의 위용은 반만년 역사의 '보물 수장고'라는 성격에 걸맞게 웅장하고 거대했다. 중앙박물관은 부지 면적 295.551㎡, 연면적 137.255㎡의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지난 2005년 10월에 용산으로 이전 개관했다(그 이전엔 경복궁에 있었다).

중간에 구멍이 휑하게 뚫린 특이한 구조는 우리 건축의 고유 공간인 마루를 상징한다고 박물관은 설명한다. 게다가 입장료는 무료였다(상설전시관·어린이박물관·무료기획전시단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유료 특별·기획전시는 제외). 무료 관람권을 받아들고서 발걸음도 가볍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박물관의 텅 빈 복도, 반만년 문화재는 어디에?

쓸쓸하게 텅빈 국립중앙박물관 1층 복도
 쓸쓸하게 텅빈 국립중앙박물관 1층 복도
ⓒ 홍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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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역시 외부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규모였다. 첫인상은 뭐라고 할까? 갓 입주한 새 아파트 같았다. 아니, 이건 깨끗해서가 아니라 텅 비어 있어서.

박물관 입구에서 저쪽 복도 끝까지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물은 단 2점, 고달사 쌍사자 석등과 경천사 십층석탑이었다. 물론 그 유물의 가치는 문화재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우수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이 달랑 두 점이란 말인가? 박물관 로비와 1층 복도는 박물관의 얼굴이다. 이는 박물관뿐 아니라 개인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현관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꽃을 꽂아 놓거나 가족사진을 걸어 놓지 않는가? '너희들 이것 봐라' 하며 자랑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어야 할 장소에 석등과 석탑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 1층 복도는 으레 로마시대 석고상이나 조각상으로 빼곡히 차있다. 또한, 역사가 짧은 미국 역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보면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면을 떼어내 자기 것마냥 전시해놓고 그 위용을 자랑한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가 고작 100m 될까 한 복도를 못 채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텅 빈 곳은 1층 뿐만이 아니다.

조선 시대 회화는 달랑 7점?

대학생 권재호씨는 "박물관의 검색대는 검색의 어려움으로 무용지물이었다"고 했다.
 대학생 권재호씨는 "박물관의 검색대는 검색의 어려움으로 무용지물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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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을 올라갈수록 넓은 박물관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로 문화재의 양은 줄어들었다. 3층의 절반은 '아시아관'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중국·베트남 등의 유물들로 겨우 채워낸 느낌이었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달달 외웠던 작품들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어디에 있을까?

평소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좋아하는 대학생 권재호(25)씨는 오늘 단원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무동(舞童)'을 찾았다. 하지만 회화 전시실에서 그 그림은 찾을 수 없었고 설명해줄 만한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전시실을 지키는 관리인 두 명에게 그림의 위치를 물었으나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들은 "수장고에 있거나 어디 대여해줬겠죠", "저기 검색기를 이용하세요"라고 말했다.)

다행히 위치 검색대는 넉넉히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허울 좋은 검색대일 뿐 검색 기능은 능력 밖이었다. 문자의 배치에 따라 검색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 회화 전체를 검색해보니 7점만 보유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것도 유물의 위치는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안내 데스크는 하나, 상점은 층층이

기념품 전문점, 식당 등의 상업시설은 과할 정도로 많이 있다. 사진은 박물관 내 문화상품점의 모습.
 기념품 전문점, 식당 등의 상업시설은 과할 정도로 많이 있다. 사진은 박물관 내 문화상품점의 모습.
ⓒ 홍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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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호씨는 이 넓은 곳에 딱히 물어볼 사람조차 없는 것이 이상하다며 안내 데스크를 찾기 위해 박물관 안내도를 뒤졌다. 안내 데스크는 1층 로비에 달랑 하나. 다시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권씨는 전통찻집·카페테리아·기념품 전문점 2곳을 거쳐야 했다. 그는 "안내데스크는 달랑 하난데 층층이 상업시설을 둔 것을 보니 약이 오른다"고 했다.

박물관 건물 내에는 총 4개의 문화상품점(어린이문화상품점 한 곳 포함)과 서점, 2개의 식당과 카페, 1개의 전통 찻집이 있다. 또한, 건물 밖에는 매점과 레스토랑 등의 상업시설이 있었다. 문화상품점에서는 엽서·사진첩 등의 중복되는 제품들을 팔고 있어 굳이 한 박물관 내에 4개가 필요한 지 의문이 들었다.

박물관 내 문화상품점에서 파는 '윷놀이 세트'가 1만2000원이다.
 박물관 내 문화상품점에서 파는 '윷놀이 세트'가 1만2000원이다.
ⓒ 홍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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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또한 높아 당황케 했다. 일례로 '윷놀이 세트'가 1만2000원. 고환율 특수로 늘어난 외국인 관람객들도 여기서는 환율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익사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전시관의 내실은 뒤로했나 싶을 정도였다.

안내 데스크에 가기 위해서는 전시관 밖으로 나가야 했고 넓은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단 한 명의 직원 역시 검색대를 이용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시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표를 제출하라는 관리인의 말을 들은 권씨는 결국 발길을 돌려 식당에서 55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먹고 박물관을 나왔다.

이렇게 불편한 시스템을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알고 있을까? 반론을 듣기 위해 박물관에 전화했다.

안내 데스크가 하나뿐이어서 불편하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국제교류홍보팀의 이현주씨는 "'키오스크'(검색대)를 이용하면 된다"면서 "하루에 네 차례 전시 해설이 운영 중이고 매주 수요일에 큐레이터 설명회가 두 차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작품에 대한 설명은 학위실에 개별적으로 전화문의를 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해야 한다"면서 "큐레이터도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주할 수 있는 실정이 안 된다"고 답했다.

키오스크를 통한 검색에 조선회화가 7점밖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이 15만점이 넘어 이를 다 데이터베이스화하기는 어렵다"면서 "검색된 7점은 국민들에게 유명한 작품만 선정하여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내 데스크 근무자는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교대근무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교대 인원 수는 잘 모르겠고 숫자파악은 어렵다"면서 "대부분은 5명 정도가 상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내 데스크가 표 검사하는 곳 바깥에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원래는 검표하는 곳이 안내 데스크 밖에 있었으나 로비를 모든 방문객에게 개방하기 위해서 안쪽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반만년 역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보여줄 게 없으니까 미안해서 돈 안 받는 것 같네요. 무료라고 괜히 좋아했어요. 이럴 거면 차라리 돈을 받든지..."

거대한 박물관을 뒤로한 권재호씨는 뭔가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

외화보유고만이, GDP만이 그 나라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아니다. 툭하면, 반만년의 긴 역사를 내세우면서 정작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행정이 말뿐이어서는 곤란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돌아보라. 어떤 것이 과연 우리 반만년 역사를 증명해 줄 수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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