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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글 : 달렌 스틸

- 옮긴이 : 김형근

- 펴낸곳 : 양문 (2008.10.17.)

- 책값 : 14500원

 

 (1) 딸아이를 생각하며 읽은 책

 

이제 석 달을 지난 딸아이가 뒷날 커서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될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을 펼쳐듭니다.

 

화석연구가, 조류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화학물리학자, 생화학자, 식물학자, 언어학자, 핵물리학자, 신경의학자, 우주비행사, 동물학자, 컴퓨터 과학자, 고고학자, 화학자, 생물학자, 의료물리학자 들을 아우르며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려간 삶을 아이가 나중에 하나하나 펼쳐넘기면서 살펴본다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 길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 펄서를 발견한 후 조슬린은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다. 그러나 1968년 결혼한 조슬린은 열정을 다해 매달렸던 전파천문학계를 떠나야 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근무처를 옮길 때마다 함께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슬린은 열 살 때 소아당뇨병 판정을 받은 아들을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파트타임으로 천문학과 교육 분야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데 ..  (조슬린 벨 버넬/37쪽)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쉰 사람은 모두 ‘여성이라서 안 돼!’ 하는 덫에 치입니다. 걸림돌에 막히고 울타리에 갇힙니다. 대학 교육은 ‘아주 자연스럽게’ 못하도록 막힐 뿐더러, 중고등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그저 더 배우고 싶다는, 더 알고 싶다는, 더 깨닫고 싶다는, 자기가 디딘 이 땅과 세상에 무언가 자기 앎과 슬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소담스런 꿈 하나를 믿고 눈물어린 땀을 흘리면서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를 돌아본다면, 이제 그 어디에도 ‘여자가 어디 대학을!’ 하는 덫이나 울타리는 없습니다. 여자니까 초등학교만 보내도 잘 가르친 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 법이나 무역이나 경제나 정치를 다루는 학문에서는 남자만 득시글거리지만, 여자라고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별을 못 달게 하고 야전장교는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여군도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곤 합니다. 책마을을 보면 여사장이 있는 곳이 많을 뿐더러, 여자 혼자 모든 일을 꾸리는 1인 출판사도 제법 됩니다.

 

.. 루스의 연구경력 가운데 대부분은 컬럼비아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루스가 죽자 인류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판했다. 근거가 약하고 무익한 연구였다고 무시한 것이다. 그들은 루스가 주장했던 문화의 인성화가 막연한 느낌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류학자들은 루스의 독특한 인류학적 접근의 장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스가 주장한 바처럼 개인적이고 고정적인 상황 모두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이론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  (루스 베네딕트/42∼43쪽)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여자한테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자가 어떤 일이건 마음이 닿고 뜻이 닿고 생각이 닿아서 온몸 내던져서 즐거이 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많이 넘친다고 하지만, ‘옛날과 견주어 많이 넘치는’ 셈이지, 참 자유와 참 평등으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막상 우리 딸아이를 낳고도 그럽니다. 본가든 친정이든 ‘애 엄마가 애를 돌보고 애 아빠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레 이웃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살붙이와 이웃만 그러하겠습니까. 동무들도, 또 저를 안다고 하는 분들도 이러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애 아빠가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애를 어르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애를 씻기고 이불을 빨고 털고 말리고 하는 둥, 온갖 집안살림을 도맡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찹니다.

 

백일도 안 된 갓난쟁이와 옆지기를 살갗으로 느낀다면, 둘 모두 백일이건 돌을 맞이할 때까지건 몸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음을 당신들도 뻔히 겪어 보았음에도 현실에서는 다릅니다. 너무 옛날 일이라서 잊고,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않느냐’면서 일찌감치 손을 놓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기를 배면 달마다 때맞춰 병원에 찾아가 내진을 받아야 하고, 초음파사진을 찍어야 하고, 아기한테 장애가 있는지 살펴야 하고, 성별을 알아내고, 비타민과 철분제를 먹어야 하고, …….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할 만한 일들이 우리 삶터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예방접종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하는 줄, 또 산부인과에서 회음부 자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 여기면서 이런 아기 낳기가 마치 ‘자연분만’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한편, 촉진주사와 무통주사를 놓아 아기를 낳게 하다가, 의사들끼리 힘들면 배를 쭉 째서 끄집어내고, 갓난아기 태지를 함부로 박박 벗기는데다가 형광등 불빛을 쐬도록 내버려두고, 갓난아기한테 엄마젖이 아닌 분유를 먹이지 않나, 아기 낳은 엄마들을 몇 분조차 쉬지 못하게 하며 일으켜서 걷게 하지를 않나, ……. 모두 가슴이 서늘할 만한 일들이 우리 세상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취업 제의도 여러 곳에서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편 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티에게 취업을 제의하는 기관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들어온 제의에 응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경우에도, 거티는 아내가 남편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미국인으로서는 ‘비정상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1931년 미주리에 있는 워싱턴대학이 코리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의했다. 칼은 약학과 학과장이 되었지만, 거티는 보조 연구원으로 만족해야 했다 ..  (거티 코리/67쪽)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고 하는데, ‘시대를 뛰어넘었다’기보다는 ‘남녀 불평등’을 딛고 일어선 여성과학자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미국에서 남녀 불평등이 널리 퍼져 있을 때, 어려움을 딛고서 저마다 다 다른 갈래에서 학문을 새롭게 일으켰다’고 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세상 수많은 남자들은 ‘새로운 학문으로 넓히기’보다는 돈벌이를 하려고 제 밥그릇을 지키는 학문에 매여 있을 때, 여성과학자들은 ‘먹고살자면 돈도 벌어야겠지만, 오로지 그 학문이 마음에 티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좋아서 파고드는’ 가운데 남자 과학자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캐내고 알아내고 밝혀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메리 휘트니는 수학을 아주 잘했다. 똑똑하고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그녀에게 선생님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휘트니가 갈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었다. 1865년 뉴욕 포킵시의 바서대학이 여성들에게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 가운데 여성을 받아들이는 학교는 하나도 없었다 ..  (메리 휘트니/295쪽)

 

어쩌면 터무니없는 울타리가 높고 어처구니없는 덫이 곳곳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더 힘을 쓰고 마음을 바치고 땀을 흘리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봅니다. 걱정없이 학문을 하지 못했고, 어려움없이 학문에 온몸 바칠 수 없었기에, 스스로 더욱 훌륭해지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밭길은 한 사람을 몹시 괴롭히지만, 괴롭힘으로만 끝내지 않고 더 단단하게 여미어 줍니다. 더 힘있게 끌어올립니다. 더 야무지게 다스려 줍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스스럼없이 맞이한다면, 얼마든지 껴안으면서 걸어간다면.

 

좋은 조건 하나 없는 가운데 더 빛나는 꽃을 피우고, 넉넉한 터전 하나 없는 가운데 더 싱그러운 잎을 틔우며, 따뜻한 품 하나 없는 가운데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2) ‘여성’ ‘과학자’란 어떤 ‘사람’일까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오래오래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기는 했지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어슷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여성과학자를 빼고는 퍽 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앨리스는 아버지와 함께 몇 년 동안 부동산에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앨리스는 교직을 그만두고 식물 채집을 위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앨리스 이스트우드/87쪽)

 

.. 부유한 틸리의 가족은 그야말로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중요했다 ..  (틸리 에딩거/90쪽)

 

.. 당시 윌리어미나는 임신 중이었으나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여성으로서 구할 수 있는 직업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녀나 가정부 자리를 찾아나섰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은 계기는 하버드천문대 소장이던 에드워드 피커링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이 된 것이었다 ..  (윌리어미나 플레밍/100쪽)

 

생각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었기에 과학이라는 데에도 좀 더 눈을 뜨면서 학문을 즐기거나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있는 집안이었을 뿐 아니라, 돈도 있고 힘도 있고 이름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대를 뛰어넘은’ 과학자가 된 분이 참으로 많다고 느껴집니다.

 

 학교라는 데를 발도 디디지 못했을 수많은 여성들, 학교에서 배울 권리를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숱한 여성들, 학교가 아닌 집에서라도 세상을 배우거나 부대낄 자리를 한 번이나마 얻어 보지 못한 셀 수 없는 여성들, 집에만 갇혀 집살림에만 마음을 쏟도록 내몰린 어마어마한 여성들은 무엇일까 곱씹습니다.

 

 오롯한 한 사람이 되자면, 이이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 사느라 일굴 논밭이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밥하기와 치우기쯤은 스스로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옷을 깁든 빨든 다리든, 집을 꾸미든 고치든 손보든, 남한테 삯을 주어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이름은 우리한테 무엇일는지, 우리 딸아이한테 어떤 사람으로 다가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앞으로 자라는 동안, 머리는 굵지만 다리는 가느다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한,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가 비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알맞춤하게 튼튼하면서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자면, 아버지 된 저부터, 어머니 된 옆지기부터 삶을 바꾸어야 할 테지요. 아니, 삶을 바꾼다기보다 옳게 추슬러야 할 테지요. 생각과 말뿐 아니라 몸가짐과 살림살이까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할 테지요.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을 쓰신 분께서는 구태여 이런 대목을 짚을 까닭을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니 과학밭에 굵직하게 발자국을 남기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발자국 굵직한 분들만 골라서 이야기를 펼치면 된다고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가 미국인 만큼, 꼭 미국 울타리에서 ‘여성과학자’를 살피면 넉넉하다고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든 문학가든 정치꾼이든 예술가든 어느 누구이든, 학문으로 남긴 발자국만으로 ‘시대를 뛰어넘은’이라는 꾸밈말을 앞에 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꾸밈말을 손쉽게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란 무엇이고 ‘뛰어넘기’란 무엇인지, 여기에 ‘여성’이라는 이름과 ‘과학자’라는 이름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뇌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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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50명의 여성과학자 이야기

달렌 스틸 지음, 김형근 옮김, 양문(2008)


태그:#과학, #여성, #남녀차별, #책읽기, #여성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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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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