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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들이 시행하는 대입 논술시험은 시대 요구에 따라 도입한 제도다. 단순 암기 위주인 객관식 시험에만 익숙한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논리적이고 올바른 문장으로 나타내는 능력을 키우게 하려는 조치였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생각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각종 업무와 학문 활동을 포함한 사회생활 전반에서 글쓰기 실력은 이제 필요충분조건이 된 것이다.

이렇듯 논술 중요성이 높아지자 각 대학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대입 논술 준비 방법과 출제 경향 등을 주제로 대규모 설명회와 특강을 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는 논술 출제와 채점을 맡은 교수들이 나와 강연하고 논술 대비 방법 등을 담은 지침서를 나눠주기도 한다. 지침서는 논술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전문 교수들이 쓴 일종의 논술 학습 안내서다.

지난 5월 oo대 논술설명회에서 배부한 논술 지침서엔 잘못 썼거나 어색한 문장이 너무 많다. 논술 담당 교수가 쓴 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보다. 사진은 기자가 첨삭한 논술 지침서.
▲ “교수님 글도 엉망이군요.” 지난 5월 oo대 논술설명회에서 배부한 논술 지침서엔 잘못 썼거나 어색한 문장이 너무 많다. 논술 담당 교수가 쓴 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보다. 사진은 기자가 첨삭한 논술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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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이 문건 중 일부가 오류투성이란 사실이다. 논술 학습법을 소개한 지침서 일부 문장들은 맞춤법이 틀리고, 필요 없는 중복 표현과 일본어, 영어식 어투가 넘쳐난다. 논술 출제와 채점을 맡은 교수들이 논술 길잡이를 위해 쓴 지침서야말로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1월 13일에 2009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있고, 곧 이어 00대학교가 수시모집 2-2 논술고사를 치른다. 지난 5월 00대가 2009학년도 입학 설명회와 논술 특강에서 배포한 논술 지침서를 예로 삼아 앞서 제기한 문제점을 살펴본다. 이 문건 작성자는 00대 학부에 속한 모 교수로 우리나라에서 논술 교육 전문가로 손꼽히는 학자다. 이 기사는 특정 대학, 특정 교수를 겨냥한 기사가 아니라 순수한 문제 제기 차원에서 작성했다. 아울러 반론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음을 밝혀둔다.

▲ 피동형인 '~되다'와 사역형인 '~시키다' 남발

00대 논술 특강 지침서의 '논술 학습 방법 (1) 교과서가 기본이다'에서 둘째 단락 둘째 문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로 고쳐야 옳다. 같은 항목 셋째 단락 둘째 문장 '~자주 출제되는 문항들은~'은 '~자주 출제하는 문항들은~'이 올바른 표현이다.

지난 5월 00대에서 주최한 논술 특강에서 배부한 교재에 잘못된 표현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논술 특강 교재에 실린 내용이 오류 투성이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교수들이 모범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5월 00대에서 주최한 논술 특강에서 배부한 교재에 잘못된 표현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논술 특강 교재에 실린 내용이 오류 투성이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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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문단 쓰기가 기초다 : 글쓰기는 3단계로 접근하라' 항목의 둘째 단락 넷째 문장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는 '~논리적으로 잘 연결했다 하더라도~'로 쓰는 것이 훨씬 직접적이고 간결하다. 대상을 능동태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시 '논술의 학습 방법 (1) 교과서가 기본이다'에서 첫째 단락 마지막 문장 '~더 심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더 심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로 써야 옳다. 마찬가지로 '(3) 배경 지식 학습은 정보보다는 관점을 중시해야 한다' 항목의 둘째 단락 첫째 문장에서 '~자신의 관점을 좀 더 구체화시키고~'는 '자신의 관심을 좀 더 구체화하고'로 고쳐야 한다. 스스로 하는 행동을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뜻의 사역형인 '시키다'로 쓰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법이다.

▲ '~하고 있다'의 잘못된 사용

'논술 학습 방법 (3) 배경 지식 학습은 정보보다는 관점을 중시해야 한다' 항목 둘째 단락 다섯째 문장 '~상식 수준 이상으로 하고 있는~'은 '~상식 수준 이상으로 하는~'으로 써야 한다. 우리말다운 논리에서 '움직임'이나 '상태'는 그 자체로 지속이나 진행의 뜻을 품고 있으므로 따로 '계속 진행함'을 뜻하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이는 일본어 '~して いる:시테 이루'나 영어 'be+ing'형을 흉내낸 데서 비롯한 오류이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

▲ 일본어, 한자식 표현의 잦은 사용

'(3) 배경 지식 학습은 정보보다는 관점을 중시해야 한다' 항목에서 마지막 단락 둘째와 셋째, 넷째 문장을 보면 일본식 한자인 '입장(立場:たちば:다치바)'이란 단어를 거듭 쓴다. 이 세 문장에서 '입장'이란 단어를 무려 다섯 차례나 반복한다. '입장' 대신에 '관점'이란 표현이 우리말에 더 어울릴 것이다. '실전 논술 대비 방법 (4)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마지막 문장 '~연습 문제로서도 최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습 문제로 가장 좋다'로 고쳐야 한다. '역할(役割:やくわり:야쿠와리)'도 일본식 한자이기 때문에 사용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00대 논술 설명회 자료집 일부.
 00대 논술 설명회 자료집 일부.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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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같은 항목 첫째 단락 첫째 문장에서 '~수능 준비 과정에서 이미 획득한~'은 '~수능 준비 과정에서 이미 얻은~'으로 고쳐 쓰는 게 좋다. 우리말 '얻다'를 놔두고 딱딱한 한자 표현 '획득하다'를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논술 학습 방법 (1) 교과서가 기본이다' 마지막 단락 둘째 문장의 한자 표현 '흡사한'은 우리말 '비슷한'으로 바꾸는 게 낫다.

▲ 필요 없는 중복 표현

'논술의 학습방법 (1) 교과서가 기본이다'에서 둘째 단락 셋째 문장 '~각 교과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해서~'는 그냥 '교과내용을 활용해서'로 간결하게 쓰면 된다. '교과'를 두 번이나 중복할 필요는 없다. 같은 항목 셋째 단락 넷째 문장 '~주관식 문제들은 내용상 대체로 심화 응용문제들이기 때문에~'에서 '내용상'은 빼도 좋은 군살이다.

▲ 맞춤법, 띄어쓰기 등 기초 어법 오류

'논술 학습 방법 (3) 배경 지식 학습은 정보보다는 관점을 중시해야 한다' 항목의 둘째 단락 마지막 문장에서 '만능 열쇄'는 '만능열쇠'로 바로 잡아야 한다. 같은 문장에서 '~어떤 문이든 열수 있는~'은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는~'으로 띄어 써야 한다. 의존명사 '수' 앞에 한 칸을 비우는 것은 상식인데 이것마저 틀리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4) 무엇을 쓸 것인가'의 첫째 단락 둘째 문장 '~최근 3년 간~'도 '~최근 3년간~'으로 붙여 써야 한다.

'논술 학습 방법 (3) 배경 지식 학습은 정보보다는 관점을 중시해야 한다'에서 둘째 단락 여섯째 문장 '~정보 문제이든, 생태 문제이든 대중문화 문제이든~'은 '~정보 문제든 생태 문제든 대중문화 문제든~'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서술격 조사의 기본형은 '~이다'지만 모음으로 끝난 체언에 붙여 쓸 때는 어간 '이'를 빼고 어미 '~다'만 써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것들은 문제 일부분일 뿐이다. 논술시험 출제와 채점을 맡은 교수가 쓴 논술 대비 지침서조차 이렇게 틀린 곳이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논술 준비에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대입 논술의 이런 현실을 알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편으로는 논술이란 게 흔히 말하는 전문가조차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누구나 글을 쓸 때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시간에 쫓기면 틀린 문장을 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실수를 놓고 트집 잡으려는 게 아닙니다. 오류가 지나치게 많으면 곤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대입 논술 수험생들에게 제공한 논술지침서에 실린 글이 엉망이라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까요? 제 기사를 보고 반론을 펴도 좋습니다. 제가 다시 반론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태그:#논술, #글쓰기, #작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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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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