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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81년 여름방학때다. 대학친구 셋이서 함께 목포항에서 3등여객선을 타고 10여시간 만에 제주도에 도착해 9박10일 동안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다.

 

여행경비는 총 3만원이었고, 반찬이라곤 고추장 말고 기억나는 게 없다. 마지막 날 배삯을 빼고 남은 3천원으로 부두 앞 식당에서 게장백반을 사 먹었는데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별미로 기억에 남는다.

 

배낭여행지 제주를 다시 보게 된 것은 1987년경 이산하의 시집 <한라산>을 읽은 뒤부터다. '노란 유채꽃이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는 아 ~ 피의 섬 제주도 그 4·3이여'라고 통곡하는 <한라산>은 나를 정치적으로 전향하게 만든 결정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뒤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 마주한 제주는 다시금 영락없는 관광지 느낌이었다. 노란 유채꽃은 더 이상 항쟁의 '노란 아우성'이 아니라 관광지 사진 촬영 장식물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 주 큰 맘 먹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제주를 찾았을 때 뜻밖의 장소에서 4·3을 조우할 수 있었다. 제주시 거친오름 기슭에서 우연히 마주친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4·3의 살아있는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파 진영이 4·3평화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4·3은 민중항쟁이 아니라 무장폭동"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고 하는데, 조중동 역사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런 반발 심리가 생길만큼 기념관에는 생생한 시청각 전시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은 소감문을 적어서 벽에 붙이는 메모지에 "일본군이 총을 쏘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경찰이 총을 쐈다고 해서 슬펐다"라고 적었다. 근현대사 체험학습은 제대로 한 셈이다. 한 초등학생은 "나는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슬펐습니다"라고 소원지 벽에 적기도 했다.

 

육지 사람들이 이곳 제주 4·3평화 기념관에 들러 '흔들리는 섬, 바람타는 섬, 불타는 섬'을 순례한다면 제주의 속살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태그:#제주, #4.3평화기념관, #강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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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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