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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촛불집회, '100만 집회 신호탄 울린다" - <마이데일리>
"국민 10만명 헌법소원…재협상 때까지 촛불집회" - <노컷뉴스>

오늘(5일)자 언론 헤드라인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이 얼마간 계속해서 타올라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촛불집회를 보며 쓴 <중앙일보>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의 칼럼(분수대)을 보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과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보수 언론의 생각이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 차장은 자신의 6월5일자 칼럼 '촛불'에서 정태춘의 노래 '촛불'과 신석정의 시집 <촛불>에 대해 언급하며, "불을 켠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진실함을 갈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요, 종교적인 심성에서 볼 때 불을 켠다는 행위는 거룩한 것인 만큼, 등을 밝힌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보자'는 것으로,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사물을 아무런 편견 없이 제대로 살핀다는 '중관(中觀)'의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시어라는 것이 상징성과 이중성이 있어 해석에 있어서 제 나름의 입장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민중가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정태춘의 '촛불'이나 신석정의 시집 <촛불>에 수록된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에서 말하는 촛불의 의미가 유 차장이 해석한 바와 같다고 동의하지 않지만, 크게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다만 칼럼 결론 부분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쇠고기 파문으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줄어들 줄 모른다. 중관이라는 지혜의 룰을 따르자면 이제 촛불 켜는 국민들은 식탁 불안의 반대편도 살펴야 한다. 국내 축산농가의 아픔을 알면서도 쇠고기 수입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전략적 선택 말이다. 아울러 청와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함께, 이 정부가 아직은 출범 3개월 남짓하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촛불 행렬이 청와대로 향하거나 섣부르게 정권퇴진을 외치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잘못 다룬다면, 불은 곧 재앙일 수 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식탁 불안의 반대편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가당키나 한가?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란 것이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해도 되는 것일까?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전략적 선택을 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봐 달라는 말을 하는 유 차장은 중관의 상태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불은 잘못 다루면 재앙일 수 있다는 말은 진리이긴 하나, 잘 다루면 큰 유익이라는 점 또한 진리이다. 그런 면에서 역설적이긴 하나, 작금의 쇠고기 협상 과정의 정부 대응 태도를 보면, 신석정의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는 시어는 일반 대중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야 함이 옳다.

고작 석 달 열흘을 보내고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데, 앞으로 남은 4년 넘는 기간에 닥쳐 올 암울한 일들을 상상하자면,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재앙을 예방하고자 이제 겨우 불씨를 지핀 것이다.

앞으로 닥칠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몸부림인 것이다. 온 세상이 캄캄한 밤이 되어 누군가 저항이라는 불씨에 점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우리에게 와 버린 것이다.

고작 석 달 열흘 넘긴 정부를 두고 누군들 성급하게 촛불을 켜고 싶었겠는가? 신석정 시인의 말처럼 누군들 점화를 보류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보다 깊은 절망에 직면하기 전에 지금이야말로 촛불을 켜야 할 때이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저 재를 넘어 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마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이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태그:#촛불집회, #정태춘, #신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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