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31일, 한국 대표팀은 요르단과의 월드컵 1차 예선 상암 경기에서 2-0으로 앞서다 후반에 내리 2골을 허용, 통한의 2-2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 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허정무 감독은 "협회에 (이운재의 사면) 건의를 해 보겠다"며 사실상 이운재의 사면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고 이는 곧이어 이운재 사면논쟁으로 이어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물론 이 날 경기에서 김용대의 플레이는 실책에 가까웠고 홈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만큼 큰 아쉬움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직후 감독 인터뷰에서 나온 허정무 감독의 발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매우 부적절했다고 본다.

 

1. 선수에 대한 비난으로 비춰질 우려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이나 다름없는 월드컵 예선에서 골키퍼의 실책에 가까운 플레이로 실점을 기록하며 홈경기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누가 봐도 뼈아픈 일이다. 하지만 경기 직후 감독 인터뷰에서 징계 때문에 월드컵 예선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이 날 경기에 출전했던 김용대 키퍼에게는 “너 때문에 비겼다”라고 비난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었고, 나아가서 나머지 두 명의 키퍼에게는 “난 너희를 못 믿겠다”라는 메시지로 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들게 했다.

 

선수도 사람인 이상 경기에서 실수나 실패를 할 수 있고, 그러기에 스포츠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한 팀의 수장으로서 팀원의 실패마저 포용하며 목표를 위해 전진하는 직업이 아니던가? 그런 감독이 경기 직후 다른 선수의 이름을 외친다면 그 팀의 선수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충격적인 무승부로 인해 사기가 땅에 떨어진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허정무 감독에게 실수한 선수까지 감싸는 발언을 기대한 것은 지나친 것일까?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에서 “축구는 실패투성이 게임이며,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선수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표팀 경기에서 한 번 실패하면 바로 그 선수를 매장시키는 한국의 풍토에서 얼마나 충격적인 발언인가. 자꾸 비교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첼시의 그랜트 감독은 결정적인 패널티 킥 실축을 기록한 존 테리를 한참이나 감싸 안은 채 위로했다. 허정무 감독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지나치단 말인가?

 

2. 축협의 권위 훼손, 대표팀의 기강해이로 이어질 지도

 

이운재는 아시안 컵 기간 중 대표팀 숙소를 무단 이탈한 채 음주를 한 것으로 드러나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국가대표 자격 1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만약 한국 대표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기에 그가 사면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나머지 징계를 받았던 선수들과 다른 선수들은 과연 뭐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 축구만 잘하면 무슨 짓을 하든 상관 없겠구나’란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다고 과연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운재 등이 징계를 받은 것은 대회 기간 중 팀워크를 흐리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표팀의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풀어준다면, 이후 감독이나 협회의 권위가 서지 않을 것이다. 이운재의 복귀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소탐대실의 상황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수가 다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허정무 감독과 축구협회는 유벤투스의 예를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명문 유벤투스는 2부리그로 강등을 감수해야만 했다. 당장의 흥행을 생각했다면 이는 바보같은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 협회는 강력한 징계를 택했다. 이야말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탈리아 축구를 위한 일이었음은 말할 나위조차도 없다.

 

월드컵 진출이 걸려있는 이 예선전에서 허정무 감독의 부담감은 필자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충분히 남아있지 않은가. 필자는 한국 대표팀의 전력이 징계중인 선수까지 다시 불러올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고 확신한다. 또한 허정무 감독 역시 이 난관을 극복할 만한 역량을 지닌 감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는 지난 발언이 단지 허정무 감독의 실언이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이 월드컵 예선의 부담마저 잘 포용하고, 선수단을 잘 추슬러 축구팬들에게 승전보를 전해 줄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월드컵 예선은 이제 반환점을 겨우 돈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플라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03 10:4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플라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축구 이운재 허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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