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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덕분에 모처럼 앨범을 뒤적였다.
▲ 중학교 앨범 샘 덕분에 모처럼 앨범을 뒤적였다.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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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도에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어언 32년째다! 와! 2000년도 겨울 쯤 되었겄다! 중학교 은사님 중 유독 맴도는 이름이 있다. 이기량! 지리 선생님이셨는데 아담하고 곱상한 외모에 실력도 깔끔하고 또 운동도 잘하여 인기가 대단했다. 근데 불같은 성정하고는? 화나면 의자 채로 던지는 와일드맨이었다. 하긴 그땐 샘의 폭력(?)은 아무 문제되지 않던 대단히 인간적인 시대였으니까.

생각나면 못 참는 용기인지라 바로 모교인 장안중학교 교무실로 전화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25회 졸업생 최용기라고 합니다.”
(하필 전화 받으시는 샘이 물리를 가르친 최진우 샘이다)
“아이고, 선생님! 저 혹시...”
“글쎄 오래되고 많아서,,..근데 샘을 다 찾아주고 정말 고마워요!”
“무슨요! 혹시 이기량 샘 어느 학교에 계신 줄 아십니까?”
“아! 이선생님? 알지요! 언양 상북중학교에 계십니다.”
“예! 그럼, 선생님 건강히 잘 계십시오!”

3-4반 28번 최용기.29번 이성건,30번 장학수
참, 보고싶다!
▲ 중학교 3년 용기! 3-4반 28번 최용기.29번 이성건,30번 장학수 참, 보고싶다!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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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샘을 물색해서 알아냈고 이젠 같이 갈 친구를 찾다가 3학년 때 샘반(3-C반)에 전교톱한 J가 생각났다. J는 마산고교를 졸업, 부산대학교 국문과 졸업하고 부산 Y고교 국어샘으로 재직 중이다. 연락하니 오케이한다.

집으로 미리 연락을 취했다.

“여보세요! 이기량샘 댁이죠?”
“예! 근데 누구신지?”
“샘 기억하시런지? 장안중학교 25회 최용기라고 합니다!”
“(한참 생각하시더니) 아이고! 용기가?”
“예! 정말 오랜만이죠? 건강하시지예?”
“음, 나는 잘 있다.”

열성적이고 패기넘쳤던 우리 샘
▲ 이기량샘 수업광경 열성적이고 패기넘쳤던 우리 샘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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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J하고 토요일가서 일박한다고 말씀드렸다. 샘은 시원하고 맛난 막걸리를 준비해 놓으마! 하면서 너무 좋아하셨다. 근데, 약속 날 갑작스런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아침에 J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 마이 갓! 그 후 계절 하나가 지난 늦가을 일게다. 갑자기 샘이 생각나서 자택으로 전화하니 아들이 받는다. 여처저차 이야기 하니 아버님이 부산 고신의료원에 입원 중이란다!

“고신의료원은, 암병동인데, 그럼?”

모습 한번 더 본다.
▲ 이기량샘! 모습 한번 더 본다.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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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머리가 복잡하게 팍팍 돌아간다. 그때 해운대에 살 때라 송도까진 엄청 먼 거리인데, 하필 그땐 컨디션이 최악이었고 운전 도중 자꾸 구토를 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고신의료원은 참 넓기도 하다. 물어 물어서 병동 앞이다. 가만보니, 환자 이름 중 이기량샘 이름이 보인다. 근데, 위암이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 후 근 20여 만에 처음으로 찾아뵙는 샘이 하필 위암투병 중이라니, 갑자기 눈물이 팍 쏫구친다. 애써 참고 문을 가만 열고 환자 이름을 살피니 해골 같은 외모의 환자가 이기량샘이다. 항상 사람은 추억만, 또 과거만 먹고 산다고, 젊었을 때의 그 아담하고 이쁘장한 모습은 어데가고??? 휴우! 잠시 망설이다가,

“이기량 샘 맞죠?”
“누구신지?”
“선생님! 최용기입니다!”
“아! 용기가?”

뼈 밖에 없는 샘의 손을 덜썩 잡으니 순간 아찔함을 느낀다.

“우리 샘 많습니까? 왠 할배가 이렇게….”
농담으로 이야기했다.
“하하 그렇제? 근데, 우째 이 먼 길을 다 오고.”
“그때 많이 기다리셨지예? 못가서 죄송했습니다!”

그땐 정말 샘하고 밤을 새면서 막걸리를 마시며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산소기를 꼽아도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선생님! 빨리 회복하셔서 학교에 복귀하셔야죠?”
“오냐, 고맙다!”
복도로 후다닥 튀어 나오니 처음 뵙는 사모님이 뒤따라 나섰다. 순간 목이 메이고, 참 인생이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모님! 말기입니까?”
“예! 아이고, 이렇게 먼길을  와주셨는데.”(흐느낀다)
“근데, 저 양반 내년 봄 되면 학교 나간다고 저래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나 멋진 분이셨는데요?”
“술이 원수죠! 저 양반 술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럼, 사모님! 수고하십시오! 다음에...또!”
(조그만 봉투를 하나 건네고 발길을 돌렸다)

차라리 가지 말 것을. 너무 슬펐다! 또 잊고 한 해를 넘기고 봄에 샘 생각이 나서 집으로 전화했다.

“사모님! 혹시 기억하실지?”
“아 예! 샘은요?”
“올 봄에. 흑흑!”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 더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래, 전화준 것만도 고맙죠!”
“......”

이렇게 샘은 중학교 졸업 후 한 번 뵙지도 못하고 다시 못 올 먼 길을 떠났다. 또 긴 세월이 흘렀다. 동규 녀석 4학년 때(07년도) 담임 김영이 선생님 이야기다. 아마 5월 13일이었을 게다!(15일은 수업이 없으니까)

“동규야! 모레가 스승의 날인데, 간단한 선물은 준비해야지?”
“음 아빠! 뭐 할까?”
(한참 생각하다가)“초콜릿이 어떨까?”
“에이! 아빠는?”

결국 초콜릿을 선물하기로 굳히고 단지 내 수퍼에서 천원짜리 일곱 개를 샀다.
“야 제법 근사한데?”
“음, 아빠!”

문방구에서 산 예쁜 포장지로 포장하여 14일 학교로 보냈다. 오후쯤인가 문자가 하나 왔다.
“동규 아버님! 정말 값진 초콜릿 선물 잘 받았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동규샘(올림)”

히야! 용기 감동 먹었다. 이런 샘이 계시다니. 동규는 작년 4학년 때 샘 덕분에 독서도 무지하게 많이 했고, 정말 신나고 즐겁게 학교 수업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후도 몇 번 문자를 보냈다. 그럴 때마다 꼭 정성어린 답을 보내주셨다.

올해 누나인 예은이 초등 졸업식 때 짬을 내어 동규샘을 찾았다. 성함이 김영이! 영이 두 개 즉 o2, 산소 같은 샘이라고 자칭하셨단다.

“샘 동규 아빱니다!”
“예 아버님! 동규녀석이 얼마나 똑똑한지, 전 아버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무슨요? 다 샘 덕이죠? 녀석이 이제 샘하고 헤어진다고 많이 상심해 있습니다!”
(머리를 어루만지면서)“동규야! 너 커서 동창회 만들어서 샘 찾는다고 했다면서? 꼭 찾으레이!”
“ 예!”

누나 졸업식 교실에서 살짝! 좀 부끄럽구먼!
▲ 산소같은 샘과 동규 누나 졸업식 교실에서 살짝! 좀 부끄럽구먼!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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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하곤 동규 녀석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또 석달이 지난 오늘이다.

“동규야! 전에 이번 스승의 날 때 샘 댁에 방문한다고 했제, 갈거제?”
“아빠! 당연하지, 내가 이야기하니 4학년때 같은 반애들이 좋다고들 했고 근데, 남자들이 더 많더라! 뭐 사가지고 갈까?”
“음, 장미는 어떨까? 그리고 그 속에 초콜렛도 같이 담으면 금상첨화 아닐까?”
“”음 그럴까?”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어도 선생님에 대한 그 감정은 우리가 옷만 달리 입었지, 세월이 많이 지나도 존경하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게다! 올핸 스승의 날의 의미를  꼼꼼히 새겨보고 싶다!


태그:#이기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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