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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젓가락만하던 아그배 두 그루는 30여년만에 어느새 저리도 크고, 마당에는 벗꽃이 구름처럼 흩날리는 중.
▲ 이준희씨의 봄마당은 그야말로 꽃대궐. 나무젓가락만하던 아그배 두 그루는 30여년만에 어느새 저리도 크고, 마당에는 벗꽃이 구름처럼 흩날리는 중.
ⓒ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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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에는 마당가꾸기의 초고수가 산다. 손바닥만한 마당에 화초 몇 포기, 관목 몇 그루 심어본 사람은 안다. 그 세계가 얼마나 드넓은 우주와도 같은지. 마당을 가꾸는 이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1년차', '3년차' 혹은 '5년차'라고 부르며 차별하기도 한다. 마당가꾸는 햇수를 쌓아갈수록 얻는 경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마당일 3년차는 5,6년차 앞에서 조용히 입을 다문다.

변산바닷가 작은 마을 안에 자리잡은 이준희씨 댁은 그럼 몇 년?

이준희씨. 미소가 그대로 향기이며 꽃이신 분.
 이준희씨. 미소가 그대로 향기이며 꽃이신 분.
ⓒ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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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시라. 무려 35년이다. 그래서 마당가꾸기에 관심있는 이들 가운데 이씨와 인연 있는 이들은 모두 그녀를 사부님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35년 전 결혼식 올린 후 불과 닷새만에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자는 남편과 변산에 정착했다. 부부는 농업을 전공했다. 이준희씨는 결혼 전 잠시 화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일가붙이가 단 한 사람도 살지 않는 낯선 곳에서 젊은 부부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흙벽돌을 만들어서 직접 집을 지었다.

어둠이 가시자마자,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맞은 편 산에 가서 리어카 가득 돌을 싣고와서 농사 지을 땅의 배수로에 까는 그런 세월을 한참이나 보내면서도 부부는 서로에게 너무나 애틋하게, 아름답게 살았다.

장독대 가을 풍경
▲ 백일홍들 장독대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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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나무 아래 정경
▲ 꽃잎 이불 벗나무 아래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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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명저 <어린 상록수>의 실제 모델이다. 그녀의 시아버지, 오영수 선생은 젊은 부부의 힘차고 각별한 삶을 책에 그렸다. 부군의 존함은 고 오건 선생. 간경화를 얻어 44세의 나이로 아깝게 타개할 때까지 일대 젊은 농부들을 이끄셨다. 이준희씨가 남편을 어이없게 떠나보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43세였다.

"남편이 떠나고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지요. 그 무렵 심은 꽃은 거개가 흰색뿐이었어요. 분홍이나마 들인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예요."

마당일은, 그의 아픔을 달래주고 서서히 치유해주는 공간이 되었다. 아직도 남편과 직접 지은, 돌멩이 하나조차 남편과 함께 자리잡은 바로 그곳에 살고 있는 그는 남편이 심은, 남편과 함께 고른 나무와 관목들 옆에 그녀의 색을 입혀나갔다.

"저는 쓸데 없는 아이들(꽃들을 아이들이라고 칭한다)을 좋아하지 않아요. 집에 어울리도록 키는 작고 열매는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며 내 힘으로 전정할 수 있는 정도, 딱 그정도만 욕심 부리죠."

그래서 이 마당의 첫인상은 매우 소박하면서도 평화롭다. 약 500여평의 마당이 낯선이를 압도하지도 않으며 아주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작은 부분들이 의외로 화려하고 숨은 향기가 끊임없이 이어져 마당을 거닐다보면 자꾸 발길이 멈춘다. 일 하다가 앉을수도, 누울 수도 있는 그런 마당이면서 말이다.

"마당놀이, 참 재밌지요. 처음에는 점으로 시작 했다가 선을 이루고, 다음에는 면을 채우고 마침내는 공간을 채우는게 마당놀이 같아요."

그가 제일 질색하는 민들레 홀씨. 하지만 저렇게 예쁜데.
▲ 민들레 그가 제일 질색하는 민들레 홀씨. 하지만 저렇게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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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과 수선화, 무스카리들이 에워싸고 있다
▲ 봄 장독대 튤립과 수선화, 무스카리들이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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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마당에서는 잡초 취급 받지만 그에게는 무척 예쁨 받는 봄꽃이다.
▲ 봄마중 남들 마당에서는 잡초 취급 받지만 그에게는 무척 예쁨 받는 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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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포기(점)가 늘어나면 주욱 이어져 선이 되고 그게 조금 더 늘어나면 다채로운 색으로 이루어진 여러 면이 되고 마침내는 큰 키의 식물 아래 작은 식물을 배치하며 그 아래는 잔디와 이끼로 채우는 경지. 거기에 더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는 또 각각 다른 색과 향기가 넘치는 마당을 구상한다면 그것이 바로 시간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그의 마당은 바로 그, 시간을 가지고 노는 공간인 것이다. 지난해 가을, 그녀의 마당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마당에 자리잡고 앉은 꽃을 세다가 그만 포기했다. 너무 많아서 말이다.

올해 봄 다시 갔을 때도 마찬가지. 수선화와 튤립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정신차리고 다시 자세히 보면 마가렛과 명자, 팥꽃, 물망초, 매화, 천리향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요소 요소에서 등불처럼 환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다.

그녀는 이 마당을 온전히 혼자 힘으로 이만큼 일구었다. 큰꽃 달맞이가 피는 계절이면 해질 무렵 꽃 옆에 앉아 꽃 피는 소리까지 즐기는 이 마당놀이의 초고수님께 어떻하면 그의 마당과 같은 꽃대궐을 이룰 수 있냐고 여쭈었다. 그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덜 예쁜 곳을 어떻하면 더 예쁘게 할까 고민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되요, 그게 다예요."

수선화 지고 나면 집 앞 저수지와 울안 작은 연못에는 시리게 푸른빛의 창포들이 우르르 피어날 거다. 다시 달려가 보고 싶다.

집 진입로 단장을 이렇게나 예쁘게 해 놓으셨다.
▲ 저수지 근처 집 진입로 단장을 이렇게나 예쁘게 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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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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