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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공항 인근 가스 충전소에는 예사롭지 않은 서예 작품이 붙어 있다.
 여수공항 인근 가스 충전소에는 예사롭지 않은 서예 작품이 붙어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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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루 평균 1만5천보를 걷는다. 300여대가 넘는 차량에 가스 충전을 하노라면 잠시도 쉴 짬이 없다. 그의 나이 올해로 60세, 환갑이다. 적잖은 나이임에도 별로 피로한 기색이 없다. 일을 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서예가 김종주(60·여수)씨. 서예협회 초대작가이자 호남미술대전 추천작가이기도 한 그를 여수공항 근처의 한 가스 충전소에서 만났다. 이곳이 그의 일터다. 가스 충전소 간이사무실에는 그의 작품이 양편에 붙어 있다. 서예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기자가 봐도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다.

여수 전남대 도서관에 가면 그가 300호 표구작품으로 제작 기증한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조집 <조국강산> 전문이 걸려있다.

붓글씨와 더불어 산 세월... 강산이 세 번 바뀌어


"오동나무는 천 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있고, 매화는 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고,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그는 이 작품의 글처럼 세상을 꼿꼿하게 산다. 살림살이가 궁핍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 작품을 설명하는 김종주씨 그는 이 작품의 글처럼 세상을 꼿꼿하게 산다. 살림살이가 궁핍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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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작품의 글처럼 세상을 꼿꼿하게 산다. 살림살이가 궁핍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그가 좋아한다는 옛 글이다. 행서체의 한자와 고체(정음체)의 한글 글씨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서력 올해로 30년, 붓글씨와 더불어 산 세월만 해도 강산이 세 번 바뀌었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자동차 가스 충전원으로 근무한 지는 5년째, 서예와 인연을 맺은 지는 30여년이 됐다고 한다. 호남대 교수로 재직 중인 목인 전종주 교수로부터 정식으로 사사를 하였다. 기자와 대화하는 도중에도 차는 쉴 새 없이 오간다. 하지만 그는 싫은 내색이나 피곤한 표정이 전혀 없이 참 열심이다.

유복자인 그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조부모 품에서 자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선비였다. 그는 할아버지에게서 한문공부와 붓글씨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터득했다. 그런 환경 탓이어서인지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서예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실력을 열심히 갈고 닦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시절 서예를 배운 것이 보람된 일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사업에 몰두하느라 도중에 한동안(10여년) 쉬기도 했지만 3년 전부터 다시 붓을 잡았다. 주위의 권유로 이제 작품 활동도 한다. 올 2월에 호남미술대전에 출품도 했다.

외롭게 자란 그는 사람 사귀기를 좋아한다. 현 직장은 다양한 여러 사람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이렇게 맺은 인연을 자산으로 새로운 사업구상도 하고 있단다.

정신이 가장 맑은 새벽에 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그는 한문 5체(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와 한글을 포함한 6체를 섭렵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 글(서예) 쓴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세월이 걸렸다. 유복자로 세상을 헤쳐 나와서일까. 그는 누구보다도 작품에 대한 의지가 곧고 강하다.

그의 직장에 붙어있는 작품 '풍요로운 세상'의 한문은 예서체이다. 한글은 옛날 한글 서체인 판본체로, 세종대왕이 만든 초기 글씨체다.

아내 병원비 마련 위해 가스 충전원으로 나서


가스 충전원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김종주씨는 투병 중인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스 충전원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김종주씨는 투병 중인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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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인쇄업을 하기도 했던 그는 지금은 동생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하지만 그 노력과 명성에 비해 작품비가 척박한 한국 토양에서 생활은 역부족이었다. 생활비 충당도 어려워 가스 충전원으로 나선 것이다.

아내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서다. 그의 아내는 지병으로 15년째 투병생활 중이다. 삶의 터전에서 생활비를 벌면서 작품 활동을 한다며 밝은 미소를 잃지 않던 그도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근에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집안일까지 도맡아 한다. 가스 충전일이 이제는 그의 주 수입원이 됐다. 가계수입의 2/3를 차지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제 삶의 일선에서 아내와 손녀를 위해 뛴다.

어쩌다 작품이 팔려 수입이라도 생기면 봉투째 아내에게 갖다준다.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어렵게 살아서일까.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정말 살맛이 난다고 말한다.

하나뿐인 아들도 가정이 순탄치 못해 손녀딸까지 그가 보살핀다. 유복자로 태어나 부모의 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의 지극정성 때문이었는지 그가 키운 손녀(초등 3년)는 인라인 스케이트 전국대회에서 3관왕을 거머쥐었다.

"어서 오세요"... 모든 이가 단골

차가 들어오면 김종주씨는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안부를 묻는 그의 손님은 대부분이 단골이다.
 차가 들어오면 김종주씨는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안부를 묻는 그의 손님은 대부분이 단골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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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들어오자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식사는 했느냐", "잘 지내느냐"며 안부를 묻는 그는 손님 대부분이 단골이다. 그는 손님과 격이 없다.

가스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장애우와 국가유공자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친절하게 대한다고 그는 말한다. 교감이 통해서일까? 그는 그들을 만나면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고. 그래서 그는 날마다 고객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여수 화양면 바닷가 언덕배기에 조그마한 황토집 하나 지어 아내와 오붓하게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단다. 그에 대한 준비도 차근차근해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정이 있다고 한다. 그의 수첩에는 이곳을 오간 이들의 주소가 빼곡히 적혀있다. 고객들과 사탕 하나 주고받는 나눔과 베품에서 그는 감동을 느끼곤 한단다. 정이 있는 세상, 역시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고생은 되지만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는 5년 동안 지각 결석 한 번 안 했다. 일터에 나오는 걸 즐거움으로 여긴다. 매일 만나는 고객들이 그를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했다. 세상사는 마음가짐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세상은 이렇듯 사뭇 달라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예가, #가스 충전원, #붓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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