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아프가니스탄 내의 미군 수용소에 수감자가 넘쳐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미군 수용소란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기 시작한 지난 2001년 바그람 기지 내에 설치한 임시 수용소를 가리킨다.
 
보도에 따르면 악명높은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275명의 두 배를 넘어서는 630명이나 되는 인원이 바그람 기지 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이들은 30명가량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아프간인이며,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숫자가 대폭 증가했다.
 
이는 탈레반의 반격이 거세지고 아프간 민심이 미국 반대로 돌아선 기간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수용소에 감금당한 사람들은 테러용의자가 아니라 미군과 싸운 탈레반 전사이거나 미군 주둔을 반대하는 아프간인이 다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는 바그람 수용소의 분위기가 관타나모보다 더욱 ‘살벌’하며, 수감자에 대한 제약이 더 심하고 기소도 없이 5년간 수감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적십자 등 인권단체들에게도 전면 공개하지 않아 실상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곳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보도는 그동안 바그람 미군기지에 관해 제기된 소문이나 의혹을 공개적으로 확인해 준 셈이다. 미국은 몇 해 전 관타나모 수용소 포로학대 때문에 국제 망신을 당하고도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여전히 똑같은 행각을 되풀이하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던 약속도 아직 이행하지 않은 채 바그람을 관타나모보다 더한 곳으로 만들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이 파견할 아프간 지역재건팀(PRT)이 동의·다산부대에 이어 바로 이 바그람 기지에 머무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잠시 2007년으로 돌아가 보자. 아프간 피랍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정부는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즉각 철군을 택하지 않고 이미 예정되어 있던 연말 철군을 고집했다. 그리하여 지난 연말 드디어 동의·다산부대가 돌아왔지만 아프간 파병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병력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미국의 요구대로 “동의·다산부대의 바통을 이어받아”(연합뉴스 2007.11.23) 25~30명으로 이루어진 지역재건팀을 파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프간 지역재건팀의 공식 명칭은 ‘다국적·다기능 민사작전팀’으로 2007년 말 현재 25개가 운영 중이라고 알려졌다. 한국이 파견할 아프간 재건팀에는 민간의료진과 함께 군의료진과 참모장교가 포함된다. 게다가 미군의 보호를 받으며 바그람 미군기지에 체류하게 된다는 점에서 파병 부대와 다를 바가 없다.

 

다산부대가 바그람 기지 내외에서 미군시설 개보수와 도로공사를 했던 것처럼, 한국이 파견하는 재건팀 역시 결국에는 미군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지 않겠는가. 직간접적으로 전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 한국인 피랍사태라든가 한국군 병사가 미군 통역 업무를 하다가 폭탄 공격에 숨지는 일도 언제고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나 다국적군이 운영하는 재건팀의 목적은 ‘재건’이 아니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든 장본인이 무슨 복구를 하고 재건을 한단 말인가? 영국 BBC 방송에서도 아프간에서 한다는 ‘재건’이 군사작전의 일환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몇 년간 전쟁을 거치면서 아프간 민중들에게 외국군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탈레반의 반격 또한 점점 대규모로 전개됨에 따라 다국적군이 군사적으로도 밀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민심 프로그램’(hearts and minds program)이라는 것을 내놓기도 했다. 그 내용이란 군인들이 학교를 짓거나 우물을 파는 것이었고 별다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라크의 사막지대에서 자이툰부대가 호떡을 구워서 나눠주는 일처럼 허망하다고나 할까.

 

USAID(미국 국제개발처)는 2003년 이래로 4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아프간에 500개 이상의 학교와 비슷한 수의 병원을 세우고 도로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지어도 아프간 현실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아프간은 변함없이 침략 전쟁에 시달리고, 집에서 잠을 자던 민간인이나 땅을 파던 인부가 갑자기 폭격을 당해 사망하고,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을 아편생산에 의존한다. 지금은 유엔 구호요원들도 아프간의 대부분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식량 지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다. 미국 관리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카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자신들이 만든 그린존에 갇힌 미국 관리들과 같은 꼴이다.

 

지금 아프간에서는 재건이 아니라 본격적이고 냉혹한 전투가 벌어진다. 국제 싱크탱크인 ‘센리스 카운슬’(Senlis Council)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탈레반이 현재 아프간 국토의 54%에서 영구적 거점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수도 카불 인근까지 세력을 확장했다고 밝혔다. 카불 장악도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속수무책이 된 미국 국방부 내에서는 병력을 이라크로 보내느냐, 아프간으로 보내느냐를 놓고 갈등을 빚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런 현실조차 알릴 생각을 않고 쉬쉬하다가 ‘재건팀’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파병을 지속하려 한다. 그것도 미군 제1 병참기지이자 중요 보급루트이며, 6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라는 명목으로 감금해 놓은 미국발 전쟁범죄의 온상 바그람 기지에 보내겠다고 한다.

 

이런 곳에 주둔하는 지역재건팀이 아프간의 평화와 재건에 이바지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전 세계 인류의 지탄을 받고 싶지 않다면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바그람 기지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아프간, #파병, #파병반대, #파병철회, #바그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