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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4일] 첫 진통이 시작됐다


엄마의 본능일까? 조만간 쨍아(우리 아기 태명)가 나올 것 같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진통이 시작됐다. 새벽 1시다. 첫 애는 조금 늦게 나온다는 말에 위안을 삼았지만 예정일(20일)을 하루 이틀 넘기면서 혹시나 자연분만이 어려우면 어쩌나 하고 불안했던 터였다. 그래서 아내의 첫 진통이 참 반가웠다.

 

진통은 아기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엄마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아기가 바깥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폐가 성숙되고 신경체계가 완성되면 태반을 통해 엄마의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 자궁수축이 시작된다. 아기의 이런 운동은 아기가 출산과정의 중요한 주체임을 증명한다.

 

첫 진통과 함께 이슬도 비쳤다. 그 동안 자궁 입구를 막고 있던 두터운 점액성 마개가 없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슬이 비치는 것은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이 역시 출산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된다.

 

첫 진통도 시작되고 이슬도 비쳤는데... 병원 가? 말어?

 

그전에는 늘 궁금했다. 과연 언제 출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지, 그리고 병원은 언제 찾아가야 하는지. 그런데 이제 와보니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출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은 그 전의 가진통과는 고통의 차원이 다르다. 진통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도 아내의 일그러진 얼굴을 통해 알 수 있을 정도다. 아내는 얼마나 아플까?

 

진통이 시작되면서 초보 엄마 아빠의 호들갑도 함께 시작됐다. 병원갈 때 가져갈 짐들을 다시 꺼내 점검하고 병원 갈까 말까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린다.

 

진통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보통 5분마다 진통이 느껴질 때 병원에 가면 된다. 우리도 시계를 꺼내 진통 주기를 체크했다. 불규칙하다. 어떨 때는 10분, 또 어떨 때는 15분씩 걸린다. 아직은 멀었다.

 

그렇게 1시간이 넘게 시계와 씨름하다 아내와 나는 일단 잠을 청하기로 했다. 이미 3시를 넘어선 시간이다. 그래도 잠이 오질 않는다. 옆에서 아내는 계속 뒤척이며 신음소리를 토해낸다. 그 때마다 아픈 부위를 마사지해준다. 출산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가득한 밤이다.

 

[2007년 10월 25일] 줄어드는 진통주기, 조여오는 긴장감 

 

언제 잠들었는지 깨어나니 오전 8시다. 물론 아내는 계속 통증을 느낀다. 다시 시계를 꺼내들고 주기를 확인했다. 10분 내외로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하루종일 초조하게 병원 갈 순간을 기다렸다. 그냥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하라는 충고에 오후에는 청파동(본가)에 가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나서도 진통 주기도 더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아기가 나올 것 같아 출근도 안 하고 예비군 훈련도 안 갔는데, 이 무슨 민망한 시추에이션인가.

 

물론 병원에 일찍 간다고 출산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모의 출산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도 그랬지만 병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진통을 느껴 찾아온 산모들을 그냥 침대에 눕혀 둔다. 뱃속 아기 심장 박동을 체크한다며 배에 이상한 기계를 대고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누워 있는 자세는 출산을 위해 좋은 자세가 아니다. 아기가 밑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통이 왔다고 무턱대고 병원을 찾는 것은 좋지 않다. 병원에서도 아이가 나올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기다릴 거라면 집에서 순산을 위한 여러 가지 자세와 동작으로 출산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첫 진통 후 24시간... 이제 때가 왔다

 

자정이 되자 진통 주기가 5~6분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통증도 점점 강해졌다. 이제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짐을 챙겨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30분, 첫 진통 후 24시간만에 병원에 온 셈이다.

 

병원 도착 후 아내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혼자 분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아내가 내진을 받게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분만과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일러줬다.

잠시후 연락을 받은 장모님도 병원에 도착했다. 그냥 아침 일찍 오시라 했는데 막무가내시다. 남편 마음도 이렇게 짠한데, 장모님 마음이 오죽하시겠는가.

 

내진 결과 자궁문이 2.5㎝ 열렸다고 한다. 본격적인 분만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보통 분만과정은 준비기-진행기-극복기-만출기, 이렇게 4단계로 진행된다. 준비기에는 자궁문이 3㎝까지 열리며 통증은 5분 간격으로 30~45초간 지속된다. 진행기는 자궁문이 8㎝까지 열리며 통증은 3분 간격으로 45~60초간 지속된다. 극복기는 자궁문이 10㎝까지 다 열리고 통증은 2분 간격으로 60~90초간 지속되는데, 이 시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만출기는 힘을 줘서 아이가 나오는 최종 단계이다.

 

2시 30분쯤 아내는 가족분만실로 들어갔다. 가족분만실에서 남편은 아내와 함께 분만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가족 중 1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장모님과 번갈아가며 들어가기로 했다. 먼저 장모님이 들어갔고, 나는 3시 30분이 넘어서 분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는 훨씬 더 고통스런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아기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기계가 아내 배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바로 아내의 통증 주기를 확인하고 아픈 곳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통증주기는 아직까지 5~6분으로 변함없다.

 

최고조에 이른 아내의 통증... 장모님은 구세주!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장모님과 교대를 했다. 당장 아내가 아픈 것도 그렇지만 생전 처음 겪는 이 고통이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그리고 얼마나 더 오래 계속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더 힘이 빠진다.

 

그래도 우리 쨍아가 겪을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 출산과정에서 아기가 겪는 아픔은 엄마보다 10배 더 크다고 한다.

 

아기는 출산과정 중 엄마 골반을 빠져나오며 4번 회전하며 산도를 통과한다. 골반은 엄마 쪽에서 보면 입구는 가로가, 출구는 세로가 긴 원통형인 데 이에 비해 아기의 머리는 앞뒤가 긴 모양이다. 아기는 이런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산도의 모양에 따라 자신의 머리를 맞추고 산도의 굴곡에 따라 회전하며 엄마 골반을 빠져나오는 것이다.

 

5시 30분쯤 분만실로 다시 들어갔다. 아내 얼굴은 더 일그러져 있었고, 신음소리도 커져 있었다. 간호사가 지금 자궁문이 5㎝ 정도 열렸다며 아침에는 아이를 볼 수 있을 거라 일러줬다.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아내의 통증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쉼 없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이 중요한 시간에 내 힘이 모두 소진해버린 것이다. 아무리 힘을 써봐도 나의 팔들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 내가 자기보다 먼저 지쳐버릴 거라고 놀리곤 했던 아내의 말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바로 그 때, 장모님이 구세주처럼 분만실에 들어섰다. 하도 소식이 없어 그냥 들어왔다는 우리 장모님! 눈물이 핑돌았다. 분만실에 들어선 장모님은 바로 아내의 몸을 주무르며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나도 힘을 내서 다시 아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손에 경련을 일으키며 소리지르는 아내에게 힘을 빼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외치며 하나 둘, 하나 둘 함께 호흡했다.

 

아아아, 쨍아가 드디어 세상 문을 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내는 눈에 힘이 풀리고 실신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밖에서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내진을 해야 하니 보호자는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아~ 이제 끝나는가. 잠시 밖에서 기다리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던지.

 

간호사는 이제 아기 머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아기 받을 준비를 했다. 마지막 힘주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아내는 통증에 맞춰 양 허벅지를 손으로 끌어당기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아내 목을 받쳐 세워주며 아내가 힘주는 데 도움이 되는 자세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몇 차례 힘주기를 마치자 간호사는 아기 머리가 3㎝ 정도 나왔다며 아내를 진짜 분만실로 옮겼다. 지금까지 있었던 곳은 분만 대기실이었나 보다. 아무튼 아내는 분만실로 들어갔고 나 역시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가운을 차려입고 분만실로 따라 들어갔다.

 

분만실에서는 이미 의사 선생님이 와서 아기를 받고 있었다. 나는 아내 얼굴을 감싸 안고 마지막으로 아내를 응원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고….

 

그리고 잠시 후 "응애~"하고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우리 쨍아가 태어난 것이다. 나는 아내 얼굴에 입맞추고 쨍아가 나왔다며 기뻐했다. 그런데 아내는 얼마나 기진맥진했던지 멍한 표정으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쨍아 탯줄을 자르자, 간호사는 처음부터 엄마 가슴에 안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쨍아를 아내 품에 안겨줬다. 그제야 아내는 신기한 듯 쨍아를 받아 안고 "어떻게… 어떻게…"하며  울먹였다.

 

우리 쨍아가 태어난 시간은 아침 8시 13분. 첫 진통을 느낀 지 31시간, 그리고 병원에 들어온지 7시간만에 우리는 아내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줄리아 하트의 노랫말처럼 온 세상이 우리 쨍아를, 전 우주가 우리 쨍아를 기다려왔다는 걸, 이제 이 아빠는 분명히 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후보 선거운동본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출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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