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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의 아침 풍경

▲ 계화도에 있는 '갯벌배움터 그레'
ⓒ 서광호

▲ 갯벌 배움터 '그레'앞의 계화도 저수지
ⓒ 서광호

계화도에 있는 갯벌배움터 ‘그레’에서 잠을 잤다. 갯벌배움터 ‘그레’는 여러 단체와 학생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마음과 성의를 모아서 쓰지 않던 김공장을 5개월 동안 공사해 만든 공간이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의 계화도 거점이다. 자신의 몸과 그레 하나만을 가지고 갯벌에 나가 생합(백합)을 캐서 하루하루를 살아온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 ‘그레’ 앞 저수지 앞에 섰다. 잘게 조각난 빛의 부스러기가 잔 바람이 이는 물결에 업혀 시간의 흐름 저편으로 떠내려고 있었다. 물위에선 풍경도 파편이 되어 넘실댔다. 고개를 들었다. 갈라진 구름 틈새를 관통하는 빛의 날 끝은 투명하고도 날카로웠다. 맑은 아침, 섬은 깨끗했다.

나는 숨죽이듯 가벼운 호흡으로 섬의 향기를 폐로 밀어 넣었다. 바람은 비릿하며 매웠다. 짭짤한 갯비린내가 젖은 바람의 끝자락을 붙들고 왔다. 고추밭을 훑고 오는 바람은 매큼했다. 바람의 결에 틈틈이 묻어있는 냄새가 시시각각 바람의 여정을 말해주었다.


갇힌 바다

▲ 육지화 되어 가는 계화도 앞 갯벌
ⓒ 서광호

▲ 풀로 빽빽한 갯벌에는 더이상 갯벌 생명체는 없었다.
ⓒ 서광호

오전에 갯벌배움터 ‘그레’를 나서서 갯벌로 갔다. 갯벌은 바다와의 마지막 포옹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시름시름 심하게 앓는 모습이었다. 손질 안 한 남자의 턱수염처럼 이름 모를 풀들이 어지럽게 뿌리내렸다. 바닥은 굳어서 질척이지 않았다. 흔히 이걸 육지화 되었다고 말한다. 생명의 증발로 갯벌은 무섭게 적막했다.

바다에는 수평선이 없었다. 마치 형용모순처럼 파도가 없는 바다였다. 차라리 그것은 바다가 아니었다. 뿌연 신기루처럼 보이는 새만금 방조제 뒤편으로 바다는 밀려나 있었다. 파도 소리는 멀었다. 그 먼 파도 소리는 전적으로 심상에서 소리였다.

갇힌 바다는 길들여진 짐승처럼 야생의 지조를 잃고 본데없이 엎드려만 있었다. 바다의 허연 어금니는 이미 뽑혀버렸다. 바다는 고여있는 침묵으로 시간의 검은 침전(沈澱)물을 남겼다. 어민들은 방조제 넘어 유배당한 바다를 이산의 덴가슴으로 애달프게 그리워했다. 그리고 어민들은 크고 겁 많은 어느 초식동물의 눈으로 갇힌 바다를 안쓰러워 했다.

그림자의 키가 점점 줄었다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그 즈음 우리는 계화도를 벗어나 1호 방조제가 있는 변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관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디서 오셨는지 물으니 경북 고령에서 왔다고 했다. 새만금 간척 사업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그 66세 남자 분이 말하길 “여기 사람에겐 갯벌이 논밭이다, 농사다!”라고 했다.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아져 옅게 웃었다.


새만금 방조제-위대하게 무모한 인간이 만든 기념비적인 흉물

▲ 게가 만든 게집 입구, 흉가처럼 텅 비어있었다.
ⓒ 서과호

▲ 계화도 앞 갯벌 입구에 세우져 있는 '짱뚱어 솟대'
ⓒ 서광호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새만금 전시관에선 영상물을 보여 주었다. “70년대 식량파동… 식량확보… 새만금 91년 11월 착공”이라고 내레이션이 나왔다. 헐겁게 헛도는 그들의 논리 앞에서 이내 가져갔던 수첩을 덮었다. 그건 논리도 아니었다. 한미 FTA 체결로 농업이 죽느냐 사느냐하고 있고, 쌀이 남아돌고, 보상금까지 책정하면서 휴경을 장려하는 현실에서 기존 경작지보다 현저히 고가일 농토를 만든다는 것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방조제 33.5km를 축조해 4만 100ha의 해수면을 2aks8300ha의 토지와 1만1300ha의 담수호로 만들려는 국책사업! 중동 특수 이후 놀고 있던 건설 중장비들을 굴려야 했던 내로라 하는 건설업자들이 달려들었던 사업! 1987년 전두환 정권 시절,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집권을 위해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낙후감에 빠져 있던 전라북도 민심을 위무(慰撫)하기 위해 완성된 사업!

새만금 전시관을 나와 방조제와 마주했다. 수평선을 지우는 회색 방조제는 무서울 정도로 맹렬했다. 방조제는 바다를 토막쳐내며 뻗어있다. 방조제는 직선의 맹렬함으로 서해의 풍광을 폭행했다. 시야의 소실점을 넘어선 방조제에 숨이 막혔다. 그것은 폭력이고 섬뜩함이자 무서움이었다. 방조제에서 울리는 잿빛의 잡음으로 어지러웠다. 순간, 시멘트 냄새가 풍기는 싸늘함이 코끝을 치고 갔다.

방조제는 곧다. 곧은 것은 빠르고, 빠른 것은 과정을 지운다. 곧음은 결국 과정을 생략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결코 곧은 것은 자연의 선이 아니다. 인간 머리에서 나온 관념의 선이다. 그것은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생략하려는 무시무시함이다. 생략하거나, 단축하거나, 질러가는 이 속도의 시대 대표하는 추악한 인류사적 기념비이다.


숨통을 쥐고 있는 농촌공사

▲ 정면으로 보이는 1호 방조제, 바다에 수평선이 없다.
ⓒ 서광호

뻗어있는 1호 방조제를 따라 멀리 가력 배수갑문이 보였다. '저 배수갑문이 갯벌과 어민의 멱통을 틀어쥐고 있구나!' 속으로 말했다.

생명 보따리 다 빼앗기고
소금사막에 내리는 빗물에
그레는 녹슬어 가는다
......
막힌 갯벌은 썩어만가는데
일터 뺏긴 계화 갯벌 여전사
누가 갯생명의 어머니를 데려갔는가

<들국화밭에서 - 여전사 샛별은 어디에 - 류기화 님을 보내며>

나는 당신의 고운 미소보다
당신의 짜디짠 눈물을 먼저 보았소

광화문에서 도청에서 대법원에서
탐욕스런 짐승들 앞에서
당신은 하염없이 울부짖었소

갯벌을 살리고자 몸부림친
당신의 눈망울 속에 잠긴,
새만금 바다는 이제 당신의 눈물이오

<최종수 신부-바다의 수호천사여>



작년 7월 12일, 갯고랑에 빠져 숨을 거둔 서른아홉 ‘갯벌여전사’를 위한 추모시다. 작년 7월 10일, 11일 한국농촌공사는 태풍(에위니아)을 대비해 방조제 안의 물을 뺐다. 8월 집중호우로 새만금 지역 농경지가 침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평소 물에 잠겨 있던 개펄이 드러났다.

그녀는 백합 채취 도구인 그레를 등에 메고 가슴까지 차는 물에도 갯고랑을 건너려 했다. 그러나 개펄의 지형은 바뀌어 있었다.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배수갑문 조작이 불규칙해져 갯벌의 수위를 예측하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조개도 줄면서 어민들은 허리까지 잠긴 물속에서 위험을 무릅쓴다. 농촌공사는 갑문 조작 사실을 어민들에게 통보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오랜 삶의 이력을 비축한 갯벌이 죽어간다. 바다는 방파제 뒤에서 시들어 가는 소리로 계속 칭얼댔다. 어민들의 검질긴 삶과 끈덕진 투쟁은 아직도 미약하나마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표정과 말에선 이념의 가파른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삶의 순정한 팔딱거림이 보였다. 그곳 어민들의 삶은 통째로 풍장(風葬)되어 가고 있었다. 바람 쪽으로 쓸려가면서 닳고 사위어 가고 있다.





태그:#새만금, #갯벌, #개펄, #계화도, #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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