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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가 3부작으로 특별 제작해 지난달 24·31일, 8월 7일에 걸쳐 방영한 음악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 MBC 방송 화면
요즘 문화예술계는 날마다 시비와 파문의 연속인데, 또 하나의 불미스런 다툼이 있어 늦더위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다름 아닌 첼리스트 장한나씨의 사례가 바로 그것. 최근 장한나씨는 지휘자로 데뷔하였고, 그 과정이 MBC를 통하여 3부작 특별 다큐멘터리로 방영(7월 24·31일, 8월 7일)되었다. 그런데 MBC의 담당 PD가 제작 과정의 불만을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표출하였고 내용 중 일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음악 다큐를 둘러싼 장한나-MBC PD 갈등

정경화, 주빈 메타, 장영주 등의 음악 다큐를 제작하였고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호미출판사)도 출간한 이채훈 PD는, 장씨 측이 '최고급 호텔과 차량 요구', '오케스트라 실력 없어서 지휘하지 않겠다', '편집제작을 총괄하겠다'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장한나씨 측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채훈 PD, 시종일관 불성실한 태도', '경험 없는 외주 제작사 때문에 직접 편집에 관여', '약속과 달리 MBC 측에서 손을 놓는 바람에 일어난 일' 등이라고 반박하였다.

양측의 공방은 이 정도로 줄이겠다. 어차피 이 같은 공방은 끝도 없는 진실 게임이 되기 쉽고 결국 당사자들 외에는 그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같은 비방에 대한 관심이 본질의 문제보다 자극적인 언쟁의 승부 쪽으로 기울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력파로 인정받아온 이채훈 PD나 앞으로도 오랫동안 음악의 길을 걸어갈 장한나씨가 결정적인 상처를 주고받지 않도록 노력해주기를 당부할 뿐이다.

그럼에도 몇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는데, 나는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첼리스트 장한나씨의 활동을 유의미하게 존중하면서 그가 젊은 시절에 이룩하게 될 '결정판 장한나'를 꽤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이번 일은 진실로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장한나씨는, 음악을 들려주기보다는 지휘하는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듯한 장면들은, '젊은 거장'이라는 찬사 속에서 살아온 25살 음악가의 안타까운 몸짓처럼 보였다.

▲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중심으로 실력파 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준 2005년 작 앨범 표지
ⓒ EMI 음반사
물론 장한나씨는 소속사 EMI를 통하여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였고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내 귀에는 팽팽한 장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2005년 작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이 간절한데, 그래서 그 앨범을 요즘도 차 안에서 듣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다만 그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밖의 '소품집'이나 때 이른 '베스트 앨범'은 굴지의 음반사 EMI의 틀에 박힌 마케팅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일 뿐이고, 아무튼 생상과 차이코프스키를 중심으로 빚어낸 11년 전의 첫 앨범이 준 바와 같은, '역시 장한나'라는 충격의 결정판은 아직은 미완이라고 생각해 온 터였다.

그런데 지휘자로 데뷔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마침내 데뷔하였으며 그 과정 및 그 이후의 몇몇 '음악 교육 행사' 과정이 이번에 MBC 음악 다큐를 통하여 알려진 것이다.

그 제작 과정에서 빚어진 양측의 설전과 상관없이, 나는 장한나씨의 이러한 선택을 매우 아쉽게 여긴다. 물론 오늘날의 정명훈씨도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로 시작하였고,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사람도 지휘와 피아노 양면에서 우람한 성채를 쌓고 있지만, 그 과정의 어떤 수미일관된 수련의 자세랄까, 혹은 수많은 악기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소리를 그야말로 엄밀한 해석과 확고한 미학적 신념으로 순식간에 정련시키는 지휘자로서의 무게는 상당한 기간의 공부가 반드시 그 바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장한나씨가 지휘자로 데뷔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 첼로를 버릴 것도 아니고, 그의 야심만만한 음악적 포부가 반드시 무거운 악기를 안고 의자에 앉아야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가벼운 지휘봉을 들고 서서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한나씨의 지휘자 데뷔는 '첼리스트' 장한나의 결정판을 기다려온 사람으로서는 의외의 선택으로 보였고 특히 그 과정을 방송사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은 심각한 패착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다. 왜 화면은 종종 정말 '거장'의 위용을 찍기라도 하듯이 장한나씨 밑에서 연거푸 올려다보는 것으로 이어질까? 정말 거장이 탄생한 것일까?

철학과 선택의 신선함, 지휘자 데뷔의 안타까움

이런 얘기를 강조하는 것은, 그녀가 2002년에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하였을 때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하버드대 철학과에 입학하였는데, '신동'과 '천재'의 과정을 거쳐 '거장'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그녀라면 국내외의 명문 음대 어디라도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철학과로 결정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특히 그녀가 음악을 좀 더 근원적이며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철학과 문학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무렵의 어느 지면에서 기꺼이 박수를 보낸 바도 있다.

해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이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보고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주어진 과제곡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연주해내는 실력에 놀라고, 그 곡 말고는 평이한 수준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서 또 놀란다는 것이다.

▲ 장한나씨가 MBC 특집 다큐에서 베토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MBC 방송 화면
음악은 사회학이나 역사학에 속한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와 같은 지식의 연마를 수반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한국의 예능 교육 과정이 '실기 과제' 일변도여서 그 방면의 기량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그 음악의 풍부한 이해 및 해당 작곡가와 그의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은 '고통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사른 비극적인 천재' 정도의 상투적인 이미지만 남아 있다. 물론 실제로 바흐는 라이프치히를 수십 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고 베토벤은 일찍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슈베르트는 병적인 자기 연민에 빠졌고 말러는 프로이트를 찾아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다들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고, 예술혼도 불살랐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만을 남루하게 반복하고 그 깔때기 속으로 해당 예술가의 복합적인 세계를 밀어 넣는 것은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무지의 상태로 이르게 될 뿐이다.

기형도의 시집을 80년대라는 상황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듯이, 바흐의 작품은 라이프치히라는 '조화로운 공간'의 소산이었고 베토벤은 그 자신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혁명의 시대를 살았다. 슈베르트의 우울은 바로 그 혁명의 열기가 식어 버리고 보수적인 메테르니히 통치에 의해 '강요된 평화'의 반증이며 말러의 신경쇠약은 벨 에포크 시대의 집단 초상화의 일부로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 MBC 특집 다큐에서 베토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한나씨
ⓒ MBC 방송 화면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하는 까닭은, 장한나씨가 하버드대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한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음악을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 문학, 예술에 대해 폭넓게 알아야 하고, 특히 그 무렵에 러시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를 위하여 톨스토이 같은 세계를 더 깊이 알아야 한다고 직접 말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기교적으로 뛰어난 연주가들이 많은 편이지만, 바로 이와 같은 깊이 있는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나는 장한나씨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지휘자로서의 데뷔, 그것도 방송사와 함께 이벤트적인 요소를 넣어가면서, 더욱이 '편집 제작에 직접 관여'하면서까지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안타깝게 보일 뿐이었던 것이다.

장한나씨는 지난 5월, 제1회 성남 국제청소년 관현악페스티벌의 폐막 공연을 통하여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그 무렵의 인터뷰에서 장한나씨는 "작곡가들의 대표작이 주로 관현악곡이고 첼로만으로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해왔다고 했다.

그 점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장한나씨는 현재 25세이다. '신동'이나 '천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요즘이고 더욱이 '뜨거운 얼음'만큼이나 형용 모순이 될 '젊은 거장'이라는 뜻 모를 말들이 횡행하는 때에 25세라면 '결정판 장한나'를 위하여 더욱 정진해야 할 때이다.

장한나씨의 스승은 그야말로 '거장'이란 표현이 부족할 첼리스트 블라디미로 로스트로포비치와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 두 사람은 장한나씨를 각별히 아껴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음반 작업도 함께 했다.

2001년 4월, 지휘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시노폴리는 의학박사이자 철학, 인류학, 문학, 언어 등에 조예가 깊었으며 무엇보다 '음악가와 그의 시대'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았던 지휘자였다. 장한나씨가 철학과에 진학한 것은 스승 시노폴리의 이 같은 면모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결정판' 향해 정진해야 할 '젊은 거장'

▲ 장한나씨의 스승 시노폴리가 남긴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걸작 말러 교향곡 앨범
ⓒ 도이치그라마폰 음반사
그런데 이번 MBC의 다큐멘터리 < MBC 프라임 장한나 3부작>에서, 장한나씨가 직접 들려준 베토벤의 음악과 사상에 대한 언급은 그야말로 주관적이며 낭만적인 수식의 연속일 뿐, 그 어디에서도 궁정 계급에 머리를 숙이고자 했던 괴테와 인연을 끊으면서까지 새로운 근대 시민 문화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 베토벤의 면모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고통을 이겨낸 천재 음악가'인 것이다.

칼 뵘이나 시노폴리 같은 후기 낭만파적 해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면서 원전 연주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영국의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는 지난 96년도의 내한 공연 때, '베토벤의 5번 '운명 교향곡'의 그 유명한 동기는 그가 혁명의 열기를 몸소 확인하기 위하여 프랑스 농촌 지역을 여행하면서 얻은 멜로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유명한 '빰빠빠 빠~'하는 '운명 교향곡'은 청각 장애에 시달리는 작곡가의 개인적인 고통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지휘자 가디너가 수많은 문헌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베토벤이 현실의 억압 속에서도 낙천적인 희망을 잃지 않는 프랑스 농민들의 서정적인 민요에서 얻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장한나씨는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도 작고한 스승 시노폴리의 바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역시 올해 4월에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도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모름지기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어떤 '결정판'을 빚어낼 때가 있고 25세의 장한나씨는 그와 같은 나이와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첼리스트들이 도전하는 바흐의 전체 6곡으로 구성된 <무반주 첼로 조곡>만 해도 로스트로포비치는 50년대에 2번과 5곡을 녹음했지만,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곡 연주를 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같은 어려운 곡을 무려 10개의 앨범으로까지 낸 적 있는 당대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누구보다 일찍 그 현장으로 달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했던 이 거장도 전곡 녹음을 환갑이 넘어서야 시도했고, 그나마도 본인이나 비평가들의 의견이 분분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그 곡에 관한 결정판 목록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가 끼어 있지 않은 것이다.

장한나씨는 '작곡가들의 대표작이 대부분 관현악곡'이라고 말했지만, 독주 기악과 관현악을 물리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며, 더욱이 첼로는 물리적인 측면에서나 의미의 측면에서나 대단히 '무거운' 세계이다. 25세의 천재가 좀 더 오랫동안 샅바 싸움을 해볼 만하나 무궁무진한 세계이다.

▲ MBC 특집 다큐에서 왜 청소년과 함께 하는 무대의 지휘를 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장한나씨
ⓒ MBC 방송 화면
장한나씨는 예의 음악 다큐에서 스승에게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로스트로포비치가 '너는 그 다음 세대에 전달을 하면 된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해설이 있는 음악회'니 '청소년과 함께 하는 음악 여행' 같은 이벤트에 가까운 무대가 반드시 그 전달의 통로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무대는 장한나씨가 좀 더 원숙한 나이에 이르고, 삶의 희열과 고통이 얼마나 극단적이며 동시에 우리 인생의 쌍생아인지, 그리하여 그러한 영혼의 담금질에 의하여 '결정판'에 도달하는 것, 바로 그 결정판으로 이미 '다음 세대에 전달한 것'이 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아들딸이 되는 세대와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를 열어도 얼마든지 늦지 않는 것이다.

한 걸음 더 양보해서 지휘자가 되는 과정이 그렇게 떠들썩한 흥행 요소를 수반해야 하는가 의문이다. 남자 골퍼들과 '장타 대결'을 벌이다가 침체에 빠진 여성 골퍼 위성미 선수처럼, 혹시나 장한나씨도 늘 자신을 '젊은 거장'이라고 불러주는 후원사나 그럴 듯한 명분을 제시하는 기획사, 혹은 진짜로 가까운 사람들과도 조금은 냉철한 대화를 할 필요도 있다.

1958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수많은 관객들이 기립 박수로 '젊은 거장'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때 심사위원 중에 한 사람이 클라이번에게 '저 박수 소리를 장송곡으로 여기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반 클라이번은, 음악 외적인 이유, 즉 58년 냉전 시대에 클래식 음악의 성전인 소련의 한복판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이 영웅은 카퍼레이드, 환영 만찬, 연설 등으로 소중한 젊은 시절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의 인생은 재기를 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장한나씨를 비롯한 우리 음악계의 '젊은 거장'들에게 차마 그런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태그:#장한나, #첼리스트, #지휘자, #베토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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