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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주변 모든 물건에 내가 붙어있지요.
ⓒ 황승민
여러분,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여기저기에 있답니다. 지금 이 모니터 주변에서도 저를 찾으실 수 있어요. 책상 위 음료수·맥주·아이스크림·과자, 심지어 책과 잡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어요. 컴퓨터 본체 뒤를 살펴봐도 있고요. 택배로 배달된 상품 겉포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요. 간혹 휴대폰 액정화면에 들어가 박히기도 한답니다.

나이는 좀 먹었어요. 1949년에 태어났답니다. 머지않아 환갑이랍니다. 처음에 내 모습은 '황소눈' 같았다 하더군요.

한국에 건너온 건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이었어요. 물론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 때부터 나에게 주목한 건 아니죠. 물류산업이 활성화되고 IT강국의 모습을 빠르게 갖추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제가 많이 등장하게 됐어요.

아직도 서울에서 처음 칭찬받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한 공장에서 물류를 담당하던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이야~ 이 놈 없었을 때 물류관리 어떻게 했나 몰라" 하고 말해주셨거든요. 너무 뿌듯했죠.

어떻게 생겼냐고요? 겉으로 보면 단순해요. 그냥 까맣고 하얗답니다. 그리고 대부분 네모난 모습이지요. 아래 보이는 사진은 우리 형제 중 가장 막둥이 모습이에요. 어때요? 귀엽죠?

▲ 우리 막둥이의 모습
ⓒ microsoft
검은 막대와 흰 공간, 단순하지만 무한대의 조합

자 이제 아셨죠? 그래요. 여러분, 나는 '바코드'에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와 마주치지만 다들 무심하시더군요. 그러나, 리더기가 내 몸을 '삑' 하고 읽어냄과 동시에 모니터에 뜨는 상품과 가격 등을 보시면서 궁금하지는 않았나요.

제 몸 구석구석을 알게 되면 무진장 신기하게 될 거에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보세요.

'바코드(Bar Code)'라는 이름처럼 나는 검은 막대(Bar)와 흰 막대(빈 공간)로 이루어져 있어요.

지금 여러분 근처에 있는 아무 상품이나 한번 들어보세요. 근처에 워낙 많을 테니까 2~3개 상품을 들어 한번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검은 막대의 굵기가 저마다 다르죠. 자 더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 편의점 점원이 바코드리더기로 상품코드를 읽고 있다.
ⓒ 김주현
웬만한 편의점이나 상점을 가면 점원이 저를 기계에 대죠. 그러면 기계에서 붉은 빛이 나오고 '삑' 하는 소리가 들리지요. 붉은 빔, 그러니까 레이저에서 나온 적외선 빔이 나를 읽어요.

이 때 검은 막대는 적외선을 흡수하는 반면, 하얀 막대는 빛을 반사시킨답니다. 반사된 광선은 리더기 안에 있는 홀로그램 원반과 반투명 거울을 통해 검지기라는 곳에 부딪히지요. 부딪힌 광선은 전기적인 '2진 코드'로 바뀌어요. '2진법' 아시죠? 이렇게 바뀐 정보는 컴퓨터로 보내져 물건 가격이 단번에 화면에 뜨는 겁니다.

이제 좀 더 자세히. 아래를 봐주세요.

▲ 확대한 바코드 사진.
ⓒ 이병기
기본적으로 내 몸을 이루는 단위는 '밀(mil)'이에요. 오른쪽에서 네번째 2와 오른쪽에서 세번째 3사이 검은 막대를 보세요. 그 검은 막대가 바로 1밀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굵기가 제일 얇은 막대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맨 앞 두 개의 검은 막대 사이 흰 부분의 굵기 역시 위에서 말한 검은 막대와 그 폭이 같아요. 그렇다면 이 흰 막대도 바코드의 최소 단위인 1밀이 되겠죠?

그럼 이제 뚱뚱한 막대들을 한번 보세요. 두께가 있는 막대 역시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처음 나오는 앞에서 네번째 6 위에 있는 두꺼운 막대는 1밀의 4배 정도. 처음 나오는 앞에서 세번째 0 위에 나오는 막대는 3배 정도. 이렇게 막대의 굵기들이 1:4 또는 1:3 등의 일정한 비율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제 짝꿍은 바코드 읽음이

그러면 "모든 바코드의 크기가 일정한가?"라는 질문이 생길수도 있을 거예요. 아시다시피 절대 그렇지 않아요.

1밀의 단위는 규격화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변할 수 있어요. 1밀이 0.1㎝가 될 수도 있고, 0.2㎝가 될 때도 있죠. 바코드의 최소 단위인 1㎝이 두꺼워 질수록 바코드의 전체의 길이가 늘어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1밀이 0.1㎝인 경우 내 몸 전체는 6㎝이고, 1밀이 0.2㎝인 경우 내 몸 전체는 항상 8㎝여야 하죠.

이렇게 저의 몸에는 중요한 법칙들이 숨어있답니다. 내 몸 옆에 여러분이 펜으로 살짝 선 하나를 그으면 어떻게 되냐구요? 상품 가격이 제대로 뜨지 않아요. 선을 하나 그어버리면 내 몸 전체 길이가 길어져 버리잖아요. 중요한 법칙을 어긴 것이라 바코드에 오류가 날 수밖에요.

자, 여기서 저의 절친한 친구를 소개해야겠어요. 그는 '바코드 읽음이'죠. '바코드 리더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냥 편하게 '읽음이'라 불러요. 나를 읽어주는 녀석이니까요.

그럼 읽음이가 나를 어떤 경로를 거쳐 읽는 건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일단 내 안의 검은 막대와 흰 막대의 간격이 가장 중요해요.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만으로 정보를 표현한다는 것, 다들 알고 계시죠? 우리 읽음이도 내 몸의 검은 막대 부분은 1, 흰 막대 부분은 0이라고 받아들여요. 그렇게 읽음이가 내 몸의 정보를 읽으면 그게 컴퓨터로 전송되는 것이지요.

읽음이 몸에서 붉은 레이저가 한 줄 나오는 것, 다들 본 적 있죠? 붉은 레이저를 내 몸 위에 발사하면 가격이 찍히잖아요. 왜 하필 붉은색일까요? 그건 바로, 붉은 색이 내 몸을 읽기에 가장 알맞은 색이기 때문이에요. 읽음이와 내 몸 사이를 방해하는 전기신호인 '노이즈'란 훼방꾼이 있어요. 붉은 레이저는 그 '노이즈' 녀석을 잡는데 일가견이 있지요.

▲ 붉은 적외선 빔은 바코드 리더기가 바코드에서 원하는 값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 황승민
'메이드 인 코리아'는 몇번일까요?

내가 하도 이 물건 저 물건 다 붙어있어서 친구들은 나보고 붙임성이 좋대요.

제가 어제 양재동의 한 대형마트에 있었거든요? 저는 거기서 한 부부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어요. 봉천동에서 온 29세 동갑내기 부부 최지영씨와 곽홍근씨. 늘 즐겨먹는 나초를 고르고 있었어요.

"여보, 여기 봐요. 방금 우리가 산 과자랑 나초의 바코드 앞 번호가 다른 거 보이죠?"
"어? 진짜네요? 우리나라 과자는 앞부분 숫자가 880, 이 나초는 54네요"
"옆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이 나초가 벨기에산이라서 바코드의 앞자리가 54로 시작하는 거래요"
"아~ 바코드 앞부분 숫자가 국가를 나타내는 건가?"
"그렇죠. 신기하지 않아요? 장보러 올 때마다 사던 나초인데 이걸 인제 발견하다니."


여러분도 신기하죠? 물건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진다니까요! 여러분도 장보러 가실 때 저의 변신모드를 여러 군데에서 찾아보세요! 재미날 거예요!

▲ 다양한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들의 바코드
ⓒ 이병기
여러분이 많이 본 제 모습중에 'ISBN' 'ISSN'이 있을 겁니다. 그렇죠. 잡지나 책에서 볼 수 있는 알파벳이죠.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ISSN(International Standard Serial Number)'은 '국제표준도서번호제도'라고도 불려요. 이 모드들은 일명 '책들의 주민등록번호'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ISBN' 'ISSN'에서 대한민국 국가번호는 89에요. 모두 열 자리 숫자로 이루어져 있고, 숫자 앞에 항상 'ISBN'이나 'ISSN' 을 붙여 쓰죠. 첫 번째 두 자리는 국가를, 그 다음 네 자리는 발행자를, 다음 세 자리는 책 이름을 구분하는 기호, 마지막 한 자리는 역시 우리의 일급비밀 '체크디지트'에요.

'ISBN''ISSN'의 차이가 뭐냐구요? 예리한 지적이시네요! 띄엄띄엄 발행하는 간행물에는 'ISBN'을, 신문 잡지 연감처럼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간행물이나 학술논문 간행물에는 'ISSN'을 붙여요.

▲ 국제표준도서번호제도인 'ISBN'과 'ISSN'
ⓒ 김주현


바코드는 어떻게 매겨지나요?

▲ EAN-13의 체계
ⓒ한국유통물류진흥원

바코드 종류에는 EAN-13 코드·EAN-14 코드·EAN-128 코드·UPC 코드·SPCC 코드·쿠폰코드·서적코드가 있다.

EAN-13 코드는 13자리의 숫자로 구성된 코드로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국제표준이다.

서적코드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제도를 말하는 것으로, 출판물 및 문헌정보 유통의 효율화를 위해 각종 도서 하나 하나에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방법으로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책의 일정한 위치에 표시하는 제도이다.

EAN-13 코드는 국가식별코드·제조업체코드·상품품목코드·체크디지트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식별코드는 국가를 식별하기 위한 숫자로 2~3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이전에 EAN International에 가입한 국가는 2자리이며, 1982년 이후에 가입한 국가는 3자리가 부여된다. 대한민국의 국가식별코드는 880이다.

그 다음 5자리 숫자는 제조업체코드로, 상품의 제조업체를 나타내는 코드이다. 5자리 다품종 업체에 63000에서 69999까지의 코드가 부여된다.

그 다음 숫자는 상품품목코드로서 각각의 단품을 나타내는 코드이다. 0000부터 9999까지 총 10000가지 품목에 코드를 부여할 수 있다.

마지막 코드는 체크 디지트로, 이는 스캐너에 의한 판독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드이다. 체크디지트는 'modulo 10'이라는 방식에 의해 계산된다.

국가식별코드는 각 나라마다 다른데, 000~139는 미국 또는 캐나다, 300~379는 프랑스, 400~440은 독일, 450~459 또는 490~499는 일본,500~509는 영국, 690~695는 중국의 국가식별코드이다. / 김주현


바코드 전격실험! "얘 좀 읽어주세요"

지금 나는 한 편의점의 음료수 위에 붙어있어요.

"병기 오빠,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이 음료수를 사서 다른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면, 될까 안 될까?"
"글쎄. 가격이 같으니까 계산되지 않을까? 주현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안 될 듯도 하고. 될 듯도 하고"
"한 번 해 보자!"


아~ 이 사람들이 나를 시험하려나 봐요. 병기와 주현이라는 두 사람이 A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를 B 편의점 바코드 리더기에 읽어보네요.

결과는, 여러분도 궁금하죠?

'삑~' 네. 정상적으로 가격이 읽혔죠. A 편의점이든 B 편의점이든 '읽음이'에 그 음료수의 가격이 동일하게 입력되어 있어서 그런 거죠. 어딜 가든 이 음료수는 1200원이라고요.

어!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음료수를 다른 곳으로 들고 가네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어머 이번엔 등산복 가게로 들어가는군요. 이 사람들 정말 호기심이 많군요. 그러더니 나를 등산복 가게 바코드 리더기에 가져가네요.

"주인아저씨 이 음료수를 그 바코드 리더기로 좀 읽어주시겠어요?"
"네? 네. 바코드 에러가 나네요"


으악~ 등산복 가게 아저씨가 내 한계를 들통내버렸어요. 음료수에 붙어 있는 '나'는 등산복 가게나 서점에서 읽히지 않거든요. 등산복 가게에 있는 '읽음이'는 등산복 바코드만, 서점에 있는 '읽음이'는 책 바코드만 읽을 수 있거든요.

▲ 등산복 가게에 있는 바코드 리더기로 음료수 바코드를 읽었더니 오류가 났다.
ⓒ 이병기
"저는 계속 진화하고 있답니다"

앞으로 제 모습이 궁금하다구요? 그럼 제 미래 모습도 보여드릴게요. 검은 막대와 흰 막대로 이뤄진 내 모습이 이제 약간 지겹지도 하죠? 짜잔~ 저는 이렇게 다양하게도 생겼어요. '2차원 바코드'라고 불리죠. 왼쪽 모습이 '매트릭스형 바코드', 오른쪽 내모습이 '다층형 바코드'에요.

▲ 2차원 바코드 중 '매트릭스형 바코드'와 '다층형 바코드'
ⓒ ㈜창성정보기술
아직 낯설다구요? 항공기 탑승권 같이 특수한 용도에 많이 쓰고 있답니다. 2차원 바코드는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거든요. 또 보안이 중요한 임무를 처리할 때에도 많이 쓰여요. 막대기만으로 이루어져있던 내가 좀 더 진화한 거죠.

그렇다면, 우리 '읽음이'는 2차원인 내 모습을 어떻게 읽을까요? 나를 하나의 '그림(이미지)'으로 받아들여요. 전문가들은 이 과정을 '이미지 스캔'이라고 부르죠. '이미지 스캔'을 할 줄 아는 읽음이는 따로 있어요. 2차원 내 모습이 개발되면서 읽음이('이미지용 바코드 스캐너'라 불러요)들도 새로 개발되었죠.

속도위반이나 불법주차를 잡아내는 차량 번호판 인식기 아시죠? 그것과 2차원 바코드 읽음이의 원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일 처음 제 소개를 할 때 보여드렸던 우리 막둥이 모습 기억나시죠?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컬러 바코드'에요. 예전의 나보다 크기가 작은데도 녀석이 담고 있는 정보량은 더 많아요.

우리 막둥이는 요즘 영화·비디오 게임·음반 같은 미디어에 쓰일 거라면서 큰소리를 뻥뻥 쳐요. 올 연말에는 DVD에서 볼 수 있답니다.

자 이제 저에 대한 모든 소개를 마쳤어요. 어때요, 여러분? 이제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서 계산할 때 저에게 눈이 많이 가시겠죠? 저는 정보화시대의 첨병이라고요.

그런데 저에게도 고민이 있어요. 세상이 발전하면서 제 기능을 사람에게도 적용하면 어떨까 하고요. 이미 그런 시도가 있는 것 같은데. 위험하답니다.

나야 생명이 없는 물건들에 붙어서 그 상품을 편리하게 관리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적용되면 그것만한 인권침해가 없겠죠. 사람은 관리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지론이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병기 김주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기사 작성에 도움을 주신 ㈜창성정보기술의 조원형 부장과 박종호 과장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바코드, #상품, #계산, #편의점,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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