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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내년을 기약하고 있는 매발톱꽃 이파리에 작은 물방울이 꽃처럼 피어나 빛난다.
ⓒ 김민수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 같아 시들시들하던 초록생명들에게는 축제의 날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이렇게 과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낮부터 내린 비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종일 비가 내린 탓인지 흐린 날씨가 이어질 것만 같았는데 눈부신 아침햇살이 창문으로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육신을 다그치며 깨운다.

"비온 뒤 아침이잖아!"

그랬다. 시골에서 살 때 비온 후 아침이면 부지런히 물방울 사진을 담기 위해 바짓가랑이가 젖는지도 모르고 아이들처럼 풀섶을 헤치고 다녔다. 비가 온 뒤가 아니라도 여름날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들을 만나기 위해 꽤 부지런을 떨었던 기억이 났다.

▲ 뙤약볕에 말라가던 한련초의 꽃잎이 힘을 얻고, 꽃잎에 맺힌 비이슬은 아침햇살에 빛난다.
ⓒ 김민수

▲ 비이슬 하나, 그들이 모이고 모이면 큰 바다가 된다.
ⓒ 김민수
그런데 도시에서 살다보니 비온 뒤 아침이라는 것도 잊고,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고 이불을 부여잡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도 별 볼일 없는(?) 도시, 그저 책을 읽거나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뒤로는 조간신문도 끊고 피곤한 몸이나 푹 쉬어주자며 늦잠꾸러기가 되었다.

창으로 침입한 아침햇살은 나를 이불에 가둬두기엔 너무 밝았다. 졸린 눈을 뒤로 하고 어머님의 옥상텃밭으로 올라갔다. 햇살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도 불어서 기대했던 것만큼 비이슬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장맛비가 선물한 아름다운 물방울 보석들이 여기저기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 카라의 이파리를 붙잡고 피어난 비이슬이 유난히 빛난다.
ⓒ 김민수

▲ 장맛비 덕분에 돌나물도 푸릇푸릇 맘껏 기지개를 켠다.
ⓒ 김민수
도심의 옥상에서 장맛비가 선물한 아름다운 물방울 보석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그동안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느라 힘들기도 했는데 그런 불평과 불만이 비 이슬에 싹 씻겨나간다.

'그래, 이렇게 푸른 것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지.'

사람은 적응 능력이 참으로 뛰어난 것 같다. 시골생활을 할 때에는 하루라도 푸른 빛을 보지 못하면, 바다를 보지 못하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도시로 이사한 후에는 푸른 바다와 하늘이 너무 그리워서 미칠 것도 같았는데 어느 새 그 모든 것들을 잊고 살아가다니.

▲ 나도샤프란의 긴 이파리에 비이슬 맺히고, 그 안에 작은 꽃 피어났다.
ⓒ 김민수

▲ 자리공이파리에 맺힌 비이슬, 아침햇살에 투영된 이파리가 아름답다.
ⓒ 김민수
아침 햇살은 유난히 맑았다. 어떻게 자리공이 옥상 화분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넓직한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이 투영되어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 언젠가 봤던 것 같다. 누군가 햇살에 투영된 이파리와 물방울을 담았던 사진, 그래서 흉내를 내본다.

이파리를 통해서 보는 햇살은 편안하다.
아련한 그늘이라고나 할까?

▲ 그들에게는 비만이 없다. 이렇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
ⓒ 김민수

▲ 아부틸론의 줄기에 가지런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비이슬, 아침햇살에 이내 말라버릴 것이다.
ⓒ 김민수

▲ 장맛비에도 넉넉하게 버텨준 거미집, 자연의 속내를 보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 김민수
옥상 텃밭에는 자연과 같은 조건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야채들과 화분에 담긴 식물들이 제법 많다보니 많지는 않지만 곤충들도 공존하고 있다. 그 중 하나 빼어놓을 수 없는 친구가 거미다. 밤새 내린 장맛비에도 넉넉하게 먹이를 달고 있는 거미집을 본다. 자연의 속살 혹은 속내를 보는 시간은 참 행복하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느끼는 신비로움과 경외감,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삶의 활력소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어디 그뿐이랴. 아직 덜 깬 몸으로 일터로 부지런히 향하는 걸음걸이들조차도 다 아름다운 것이지. 지하철 환승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자기 바쁜 만큼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도 장마 뒤 풀잎에 맺힌 비이슬처럼 아름답다.

태그:#장맛비, #포토, #햇살, #물방울,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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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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