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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랭지 밭으로 변한 안반데기. 인간의 힘이 무섭다.
ⓒ 강기희

안반데기. 마을 이름치고는 순수하다. 어찌 들으면 촌스럽기까지한 마을 안반데기. 행정구역상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그러나 안반데기를 직접 가보면 순수하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안반데기의 원래 지명은 '안반덕'이다. 마을이 떡메로 떡쌀을 칠 때 쓰이는 안반처럼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사람들은 그 안반덕을 오래 전부터 '안반데기'라고 풀어 불렀다.

안반데기에 가면 절로 입이 '떡' 벌어진다

정선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안반데기로 갔다. 지난 달(5월) 마지막 날이었다. 정선에서 안반데기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역시 강원도 길이라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 날도 모 방송팀과 동강의 오염원인 안반데기를 경유 도암댐으로 가는 중이었다.

정선에서 안반데기로 가려면 아우라지가 있는 여량대교 삼거리에서 구절리 방향인 415번 지방도로 길을 갈아타야 한다. 강릉이나 횡계에서도 안반데기로 갈 수는 있으나 아무래도 주변의 경치를 즐기려면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편이 좋다.

송천은 수해복구 공사중이라 어수선하다. 도암댐으로 인해 물빛은 탁하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구절리에서 대기리로 이어지는 길은 오프로드를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도로 포장과 수해복구 공사로 인해 옛길을 즐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기 삼거리에서 왕산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닭목령으로 가는 길이다. 닭목령은 백두대간의 한 고개. 고개를 넘으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오고 그 물은 오봉댐으로 흘러든다. 썩어들어가는 도암댐에 비해 오봉댐의 물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안반데기는 닭목령에 이르기 전 작은 삼거리에서 '감자원종장'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 해야 한다. 안반데기로 가는 안내판이 부실해 지나치기 쉬운 곳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안반데기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오르면 비로소 집이 보이고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이라 해 보았자 집 몇 채가 전부인 안반데기. 그러나 드넓게 펼쳐진 밭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산의 껍질만 깎아낸 팍팍한 밭은 끝없이 이어지고 밭은 능선을 따라 산 정상까지 정복했다. 사람들은 산을 깎아 만든 밭에 감자와 배추를 심는다.

길의 정상은 피덕령이다. 고개마루를 넘으면 동강의 주 오염원으로 알려진 도암댐이 있고 고개 좌우로 난 길을 따라 가면 고랭지 밭으로 갈 수 있다. 먼저 좌측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갔다. 처음 보이는 곳이 끝이려니 했더만 산등성이를 올라서니 처음 본 밭보다 규모가 더 큰 밭이 만들어져 있다.

순간 '이 넓은 산을 깎아 버리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입이 벌어지기보다는 한숨이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내렸음에도 입 안으로 흙모래가 달려들었다. 서걱거리는 느낌을 애써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에 쓸려내려가는 토사와 각종 오염물질, 동강 오염 부추켜

▲ 하늘과 맞닿아 있는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 이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다.
ⓒ 강기희
▲ 산등성이가 다 벗겨졌다.
ⓒ 강기희
산 정상 바로 아래 표지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표지판엔 '자동기상관측장치'라고 적혀 있었다.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이 안반데기의 기상을 관측하는 곳이다. 산을 깎아 만든 것은 화전민들. 하나 둘 개간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고랭지 밭이 되었다. 당시야 산이 국가 소유였지만 밭이 되고부터 개인에게 불하되었다.

산등성이 하나를 또 넘었다. 마찬가지로 산은 헐벗었고 흙모래가 날렸다. 먼 곳에선 이미 만들어진 밭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굴삭기로 산을 깎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다. 어느 밭엔 퇴비와 비료가 담긴 포대가 설치작품처럼 놓여져 있고, 감자를 심는 농부의 모습도 보였다.

2모작을 하는 지역에선 이미 푸른 싹들이 넘실거리는데 안반데기는 6월이 코 앞임에도 겨울의 어느 날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푸른 기운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안반데기에서 풍년을 바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낯설기만 했다.

밭으로 난 길을 따라 산 정상으로 갔다. 산 정상은 옥녀봉이다. 높이는 해발 1100m가 넘었다. 주변의 봉우리와 어깨를 견주는 안반데기는 겨울이면 사람 키를 넘길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린다. 늦가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안반데기를 떠나 아랫마을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올라온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안반데기는 도무지 산이라 할 수 없었다. 애초 산이었으되 밭이 되어버린 안반데기는 한때 고랭지 산업으로 각광 받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재배한 감자나 배추는 육질이 단단하여 그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안반데기의 밭은 산을 깎아 만든 탓에 비만 내리면 토사가 쓸려내려갔다. 산 정상부터 쓸려내려간 토사는 단순한 흙모래가 아니었다. 각종 비료성분과 농약 성분을 함유한 토사는 또 다른 오염원이 되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간 토사와 오염물질들은 대기천으로 흘러들고, 대기천은 송천을 만나면서 동강으로 흘러든다. 동강이 한강의 상류인 점을 생각하면 한강의 최상류인 대기천과 송천이 각종 오염원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60만평인 안반데기가 여의도보다 넓어보였다

▲ 퇴비로 쓸 계분이 바둑알처럼 점점이 놓여있다.
ⓒ 강기희
▲ 산 껍질을 깎아 만드는 고랭지 밭. 비가 오면 토사는 대책없이 쓸려내려간다.
ⓒ 강기희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마을 사람을 만났다. 부부인 그들은 집 앞 마당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있었다. 안반데기있는 고랭지 밭이 몇 평이나 되는지부터 물었다.

"60만평입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이쪽이 30만평이고 저쪽이 30만평입니다."

이쪽이라는 곳이 기자가 둘러본 밭이고, 저쪽은 앞으로 둘러볼 밭이다. 안반데기에서 처음 농사를 지은 것이 언제냐고 물으니 30년도 넘었단다.

"어떤 농사를 짓나요?"
"감자와 배추를 하는데, 연작을 할 수 없으니 돌려가면서 해요. 올해 이쪽에서 감자를 심으면 저쪽에선 배추를 심고 그런 식으로 농사를 지어요."


30만평씩 땅을 구분해 감자와 배추를 심는다는 설명이다. 땅의 개념이 확실하게 다가오지 않은 기자의 눈엔 60만평이 이처럼 큰 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흔히 땅을 크기를 비교할 때 여의도 면적(90만평)의 몇 배로 계산하는데,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은 언뜻보기에 여의도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돈은 많이 버시겠어요?"
"그렇지도 않아요. 여름철 수해로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때도 많아요."


농부의 말이 실감나는 것은 지난 해만 해도 집중호우로 인해 작물 피해가 심각했다. 더구나 지난 해엔 수해와 함께 온 질병으로 인해 작황도 좋지 않았다. 가을엔 감자가 남아 돌아 감자 사주기 운동을 할 정도로 가격도 바닥을 쳤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몇몇 사람은 고랭지 농사에 미련을 버리고 떠났으며,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몇이나 된다. 지난 30여년간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어왔던 고랭지 농사였지만 큰 돈을 벌은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곧 불어닥칠 FTA 바람까지 가세하면 안반데기 고랭지 밭은 언제 잡초로 무성해질 지도 모른다. 허울좋은 고랭지 밭인 안반데기에 부는 흙바람은 앞으로의 일의 예견하기라도 하듯 모래를 일으키며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왔다.

농부와 헤어지고 맞은 편 길로 올라갔다. 띄엄띄엄 있는 집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배달부의 오토바이 소리만이 산 중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먼 길을 달려와 우편물을 남겨두고는 건너편 산등성이를 넘었다.

고랭지 밭,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감춰야 할 치부

▲ 산등성이를 넘으면 그만큼의 밭이 보이고.
ⓒ 강기희
▲ 하늘에서 본 도암댐. 저렇게 작은 댐이 동강을 죽인다.
ⓒ 고철균
산 길인지 밭 길인지 알 수 없는 시멘트 길을 오르자 산등성이의 정상이 나타났다. 울창한 숲이 있어야 할 등성이는 건너 편의 산과 마찬가지로 밭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헐벗은 산을 생각하면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고랭지 밭의 선(線)은 결코 아름답지도 멋스럽지도 않았다.

넓은 시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밭들이 산등성이를 넘으면 또 있고, 등성이 하나를 넘으면 또 밭이 펼쳐졌다. 몇 개의 산등성이로 이루어진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은 거대한 사막과 다르지 않았다.

산정상까지 올라간 밭에선 농부가 트랙터로 굵은 돌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돌이 많은 것으로 보아 밭으로 변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각도가 큰 비탈진 밭을 오르내리는 트랙터가 위태롭게 보였으나 농부는 전혀 위기를 느끼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넘자 밭으로 난 길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산은 헐벗은 채 흙먼지를 날리고 있고 백두대간을 이어주는 피덕령의 생태계는 파괴된 지 오래였다. 길을 따라 가는데 드넓은 밭을 괭이로 손질하는 농부가 보였다. 밭고랑을 여미는 농부의 마음 속에는 올 한 해 농사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 크겠지만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60만평이나 된다는 안반데기에서 만난 사람은 우편배달부를 포함해 고작 다섯. 그나마 먼발치에서 인기척만 느낀 이가 둘이니 사람구경 하기에 힘든 곳은 분명했다. 동강 오염원 중의 한 곳인 안반데기에선 흙모래를 일으키는 바람이 주인 노릇을 했고, 객은 불어오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피덕령 정상에서 정확하게 절반을 잘라 만든 고랭지 밭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임은 틀림없었다. 감자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되면 그 모습을 담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내면에 숨겨진 아픔은 어떤 위로로도 풀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강릉과 평창의 경계인 피덕령 고개를 넘어 급경사를 내려가면 도암댐이 나오고, 그곳에선 동강과 한강을 죽이는 또 하나의 범죄가 오랜기간 꾸며지고 있었다. 무분별한 댐 건설과 산을 훼손한 일들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는지 피덕령을 넘는 이들은 넓은 안반데기와 도암댐을 오지 드라이브 코스로 추천하고 그렇게 즐길 뿐이다.

도암댐과 안반데기를 떠나오면서 문득 든 생각은 '아름다운 산과 계곡을 그렇게 만들어도 어느 누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독재 시절을 거쳐 전두환 군부독재의 연장선에서 완결된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은 이제 소리쳐 자랑할 것이 아닌 숨겨야 할 우리의 치부와 다르지 않았다.

역대 정권들과 묵시적 합의로 만들어진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 거대한 자연이 사라진 지금 안반데기는 동강의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에선 뒤늦게 안반데기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대책은 전무하다. 비만 오면 흘러내리는 토사와 각종 오염물질은 오늘을 사는 이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 한강의 상류를 오염시키는 도암댐과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 모습.
ⓒ 고철균

태그:#안반데기, #고랭지밭, #토사, #도암댐, #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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