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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할머니 정진영 강사와 수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할머니 수강생들
ⓒ 부광초
"젊었을 때 식당을 운영했었는데, 그때는 한글을 몰라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외상 장부를 꺼내 놓고 아들한테 '박씨네는 삼백원', '김씨네는 오백원'하고 불러서 적어달라고 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한글을 배워서 얼마 전 아들한테 편지를 보냈더니 아들이 글쎄 눈시울을 글썽거리며 편지를 대대로 가보로 전하겠다고 하지 뭐야."

인천시 부평구 부개3동 부광초등학교(교장 한재선)가 지난 4월부터 지역 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글 속에 행복이 샘솟는 실버 한글 교실'에서 글을 배우고 있는 정점순(65) 할머니의 말이다.

이곳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26명의 노인들은 눈이 침침하고 허리도 아픈 데다 손이 떨리기도 하지만 수업시간에 글 읽는 눈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는 놀랍게도 이들보다 나이가 많거나 같은 연배인 정년퇴임 교사 정진영(72·여·부개3동)씨다. 애초 인근 성당에서 정씨가 10년 가까이 봉사활동으로 진행해오던 노인대학의 한글교실을, 그동안 헌 교과서를 지원해왔던 부광초에서 평생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면서 빈 교실에서 한글교실을 4월부터 진행해오게 된 것이다.

4월에는 15명의 할머니로 시작했던 교실이 어느덧 소문이 퍼져 이제는 26명의 노인들이 함께 공부하게 됐다. 노인들은 평생 학교에 못 가본 것이 한이었는데 이렇게 학교에서 공부하게 돼 행복하다며 다른 노인들에게도 널리 알렸던 것이 수강생을 늘리게 된 것이다.

수업을 받고 있는 양영애(66) 할머니는 "그동안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가면 마음씨 좋은 사람한테 신청서 작성을 부탁하기 위해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었는데, 지금은 떳떳하게 직접 출금표를 적어 돈을 찾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기뻐했다.

다른 한 할머니(65)는 "한글을 배우고 나니 길거리에 간판을 읽을 수도 있고, 지하철 노선도 읽을 수 있어 길 찾는 게 쉬워졌다"며 "한글을 몰랐을 때는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주눅이 들었는데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고 학교 갈 시간만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실버 한글교실 강사 정진영씨는 1995년 정년퇴임을 하고 무엇을 하며 살까 몇 년간 고민하다 성당에서 아직 한글을 모르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며 이들을 위해 한글을 가르치기는 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어느덧 10년 가까이 됐고 정씨는 이제 동네 노인들의 한글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씨는 "정말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던 학생들이 교실에서 한글을 배우며 차츰 깨우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며 "몸이 건강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선생님'하고 부를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며 "평생 좋은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광초 평생교육 담당 이양원 교사는 "정 선생님은 강사비를 드리려고 해도 극구 거절하고 오히려 '학교에서 노인들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신다"며 "학교에서도 정 선생님의 뜻을 받아 한글 교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부광초 실버 한글교실은 월·수·금, 일주일에 3번 오후 2~5시까지 3시간 동안 한글뿐 아니라 노래와 수학도 함께 가르치고 있으며, 부광초는 교육청의 예산을 지원받아 노인들을 위한 분기별 생일잔치와 가을나들이도 계획 중이다. 또한, 1년의 과정을 마치고 수강생들과 함께 문집도 내고 내년 2월에는 수료식도 진행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upyeongnews.com) 6월 5일에도 일부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노인한글교실, #부광초등학교, #정진영, #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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