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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책 겉그림
ⓒ 삶이 보이는 창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부국의 반열에 확실하게 들어섰을까? 겉으로는 그런 것 같지만 속내는 아직도 먼 것 같다. 가난과 굶주림에 처한 자들이 많은 까닭이다.

화려한 고층 건물 뒤로는 허름한 판자촌이 있고, 웅장한 대형마트 뒤로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장돌뱅이들도 있다. 새벽 칼바람을 맞을지라도 공사판에 팔려나가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이들이 아직 많다.

박영희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는 그와 같이 우리 사회 속에서 씁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야말로 터널 속에 갇혀 더듬거리는 사람들,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웃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고물을 주워 생계를 꾸리는 노인들, 시간이 흐를수록 탄식만 는다던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삼십 년 넘게 장터를 떠돌며 살아온 장돌뱅이들, 이들의 탄식과 눈물 젖은 목소리를 몇몇 지면을 통해 보고해왔었다. 돌아보건대, 이들의 탄식과 분노, 절망의 목소리는 불혹의 나를 바로 세워준 회초리이자 죽비이기도 했다."(여는 글)

스물 중반 때에 나도 아르바이트로 막노동을 한 일이 있다. 늦깎이 대학생활을 해야 했던 까닭에 이것저것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7층까지 등짐을 지고 올라갔던 일도 있고, 컴컴한 지하 물탱크를 하루종일 청소한 일도 있고, 피가 질질 흘리는 소가죽을 소금으로 염하여 차에 적재한 일도 있다.

그때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인력공사 사무실에 드나들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쉽사리 일터로 팔려나갈 수 없는 까닭이었다. 어쩌다 늦게 팔려갔어도 좋은 업자를 만난 덕에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더 받게 되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쉴 틈도 주지 않고 죽도록 일만 시키는 업자는 그렇게도 얄미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마흔다섯의 김양문씨와 쉰을 넘긴 김상룡씨의 모습을 보니 꼭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새벽녘에 교회 차를 몰고 교인들을 싣고 갈 때면 어김없이 쳐다보게 되는 곳이 일용직 근로자들의 대기실이다. 서울 한복판이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찾아들기는 마찬가지다.

"노가다 일이야 힘들어도 좋지만 교육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고등학생 둘이면 동료들한테 술 한잔 사는 일이 겁이 납니다. 그래서 술도 혼자 마실 때가 많습니다. 겨울이 다 되어 가는데도 우리 집이 보일러를 때지 않는 것도 그래섭니다. 지금부터 틀어 버리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공부시키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61쪽)

하루 일당이 6만5천원이라지만 그것을 차곡차곡 모으기는 쉽지 않다. 술 한 잔을 얻어먹으면 또 한 잔을 사는 게 인지상정이요, 마시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클 때가 많다. 더욱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철이나 추운 겨울철에는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러니 한두 푼 모아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현실이요, 두 딸을 둔 김상룡씨의 겨울나기는 그래서 쉬운 게 아니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고물을 주워 생계를 꾸려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오토바이 한 대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퀵서비스 라이더들, 전기장판 한 장과 캐시미론 이불 한 장으로 겨울을 나는 개포동 구룡마을 사람들, 막장 일을 하는 것보다도 1년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을 더 두려워한다는 태백의 광산촌 사람들, 새벽같이 일어나 밥 한 술 떠먹고 일 나가면 하루 평균 13시간을 현장에서 살아야 하는 덤프트럭 운전사 조환해씨의 모습 등 여러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그나마 나는 피해자로 입원해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된 동료들을 보면 집은 물론이고 식솔까지 결딴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토바이 한 대로 벌어먹는 사람들의 종말이 이렇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가입하고 싶어 안달인데도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보험회사들은 피해버립니다."(82쪽)

이는 승용차 범퍼에 받혀 왼쪽 다리를 다친 퀵서비스 라이더 임종찬씨가 한 말이다. 지난날 그가 뼈저리게 느낀 고충은 비가 내리는 날 늦을 게 뻔한데도 늦었다며 트집을 잡는 고객들을 만나는 데 있었고, 힘겹게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이 교통 위반 딱지로 손쉽게 빠져나가는 데 있었다. 하지만 더 극심한 고충은 생명을 내걸고 일을 하고, 국가에 세금까지 정당하게 내는데도 정작 보험에는 가입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무쪼록 우리 사회의 그늘진 사람들,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관심 있게 들여다봤으면 한다.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 내지 못하는 현실의 벽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을 좀 더 진지하게 살펴봤으면 한다. 그리하여 정부 차원에서 그토록 아파하는 현실의 벽 속에 갇힌 사람들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 깊이 있게 다가섰으면 한다. 그래야만 그들도 우리나라의 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 소외된 삶의 현장을 찾아서

박영희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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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박영희, #르포, #퀵서비스, #일용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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