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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시작법의 요체(要諦)를 담고 있는 책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가 도서출판 '예옥'에서 나왔다. 젊은 비평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교수), 박현수(경북대 국문과교수), 허혜정(한국사이버대 문예창작과교수)이 공동으로 펴냈다.

이 책은 '젊은 시와 함께하는 서정주 시작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그 체제는 미당의 시에 관한 글을 수록하고, 그것에 맞는 우리 시대 현역 시인들의 시 2편씩 전문을 인용하고, 마지막으로 펴낸이의 참고 비평이 곁들여지는 형태다.

공동 저자(방민호, 박현수, 허혜정)는 시를 쓰고 있는 현역 시인이자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수인데, 이들의 미당 서정주의 시론에 관한 해설과 인용된 시의 비평이 풍성하고 유익한 읽기를 제공하고 있다.

책의 목차는 제1부가 '시를 알아야 시를 쓴다'(시란 무엇인가/시에 어떻게 다가갈까/시가 갖추어야 할 것이 있으니)이고, 제2부는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시의 언어/형식과 리듬/시적 수사/이미지/시의 유형 )이며, 제3부는 '시는 어떻게 깊어지는가'(시의 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시의 체험과 현실이란 무엇인가/시와 사상은 어떤 관계인가)이다.

그리고 각 항목마다 3∼6개의 소항목이 추가되어 모두 49개의 소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보유(補遺)의 형식으로 '나의 시작 과정-국화 옆에서', '시는 이렇게 고쳐라-실제 창작지도의 예', '앞선 시인을 이해하고 배우는 법-김소월론'이 추가되어 있다.

이 책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의 맨 첫 장 '시란 무엇인가'의 첫 항목인 '시란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큰 것'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시는 미술처럼 시각적 형태로써 어감(語感)으로써 입체미와 색채미를 표현할 수 있으면서 한편 청각에 의하여 시간적으로 연속하는 움직이는 예술이기 때문에 정지한 것까지도 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시는 음악과 같이 청각적 율동으로써 리듬과 멜로디를 어감으로 살리면서 시각에 의하여 공간적으로 병존하는 정지태(靜止態)의 예술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까지도 정지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조각과 고착된 음악이 있습니까. 그러나 시는 음악과 미술이 못 하는 두 기능을 가짐으로써 찰나의 움직임을 영원화하고 무한의 고요함을 찰나의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시란 장황하게 서술하는 전체가 아니라 특수한 구성으로 단순하게 결정시켜 나타내는 전체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의 언어는 단수미의 설계 속에서 비약하면서 연락되고 평범하면서 비범해지는 것입니다.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더 큰 것! 이것이 시의 본도(本道)요 시의 자랑이란 말입니다.(서정주)

봄에/가만 보니/꽃대가 흔들린다//흙밑으로부터/밀고 올라오던 치열한/중심의 힘//꽃피어/퍼지려/사방으로 흩어지려//괴롭다/흔들린다//나도 흔들린다/내일/시골 가/가/비우리라 피우리라.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전문.

무금선원에 앉아/내가 나를 바라보니//기는 벌레 한 마리가/몸을 폈다 오그렸다가//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배설하고/알을 슬기도 한다
-조오현, '내가 나를 바라보니' 전문.

미당은 시의 형식적 본질이 단순함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형식적 본질인 단순함이 내용상의 특성까지 규정한다고 하면서 이것을 '단면의 전체성'이라는 말로 압축해놓았다. 이에 따르면 시란 형식은 단순한 것이고 그 내용은 단면을 그리되 전체가 보이도록 한 것을 말한다. 미당은 다시 이것을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더 큰 것!'이라고 요약해 주고 있다. 이 표어와 같은 말을 통해서 우리는, 시의 형식적 단순함이란 언어를 가능한 적게 씀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단면의 전체성이란 하나의 단편적 사실을 토대로 하되 여기에 큰 사상이 담기도록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방민호)


짧은 지면에 시론과 감상, 그리고 창작에 관한 시 공부에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전달할 능력은 내게 없다. 이 책의 가장 작은 항목의 제목이면서 미당 시론의 육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그것을 옮겨본다.

먼저 '시란 무엇인가'에서는 "①시란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큰 것 ②언어를 벗어난 사상은 없다 ③시의 공리는 예술성에 있는 것 ④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 ⑤작품을 통해 배워라"를 지적하고 있고, '시에 어떻게 다가갈까'에서는 "①자기가 먼저 감동하는 시를 써야 ②새로운 세기일수록 강렬한 감동의 시를 ③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쓰기를 ④시심(詩心)이면 족하다 ⑤향토정서를 존중하라"이다.

또 '시가 갖추어야 할 것이 있으니'에서는 "①시에는 모름지기 '눈'이 있어야 ②감동이 주는 침묵을 기호화하라 ③덜 익은 시상이 시를 망친다 ④인생의 모든 것이 시의 재료다 ⑤언외의 암시력을 살려라"이고, '시의 언어'에서는 "①생명 그대로의 최초 발성을 ②모국어의 묘미를 알아야 ③이디엄을 얕보지 말라 ④뼈를 울리는 언어의 음색에 주목하라 ⑤시어는 표어가 아니다"를 강조하고 있다.

'형식과 리듬'에서는 "①시 정신이 형식을 결정한다 ②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수립하라 ③행갈이와 연나눔의 기술을 알아야 ④리듬에 주목하라-시의 운율 ⑤정형률의 가치에 새로운 시선을 ⑥산문시도 산문의 서술은 아니다"를, '시적 수사'에서는 "①기교란 체험의 창조적 표현이다 ②직유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③은유는 낯선 세계를 보여준다 ④상징은 시상의 깊이와 넓이에 기여한다"를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에서는 "①구상적 이미지가 감동을 준다 ②시각적 이미지는 시의 밑그림 ③새로운 전형을 창조하라 ④음성 이미지에 귀를 기울일 것"을, '시의 유형'에서는 "①정조의 시 ②예지의 시 ③의지의 시 ④지·정·의 제합의 시"를 살펴보고 있고, '시의 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에서는 "①시야가 좁으면 매너리즘에 빠지나니 ②언어의 기성복을 벗어라 ③제목을 다시 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의 체험과 현실이란 무엇인가'에서는 "①지식보다 체험을 우선하라 ②내면의 괴로움이 깊을수록 절제하라 ③시적 현실은 실제와는 다른 것"을 일러주고 있고, '시와 사상은 어떤 관계인가'에서는 "①자기 숨을 쉬기에 가장 적합한 세계를 ②인식의 벽에 도전하라 ③동양적 세계를 탐구하라 ④세계의 근원으로서의 무(無)"를 지적하고 있다.

시에 관한 미당 서정주의 진술을 더 따라 가본다.

"시는 먼저 시가 되어야 하고 끝까지 시로써 인생에 보람을 둘 것입니다."
"불완전한 언어가 우주를 대변하는 것, 언어의 제약이 정신의 비약을 주는 점이 시의 묘처(妙處)입니다."
"시란 것은 진실한 생각, 진실한 느낌, 진실한 표현을 통하여 나오는 그 자신의 전인격적(全人格的) 체험에서만 스스로 체득할 수 있고 이와 같이 시를 체득한 시인의 생명의 결정인 작품을 통하여서만 그의 최상의 시작법을 듣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시의 제일의 표준점도 마찬가지로 먼저 그것을 쓴 작자의 감동력에 있다. 먼저 시인 자신이 간절히 감동한 것, 그것을 가지고 쓸 밖에 없는 것이다."
"시가 이론과 다른 점은 감동이라는 것을 획득해 전달해야 하는 데 있는 것이고, 감동은 필연적으로 모종의 미적 밀도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라면, 미는 역시 어느 경우에나 시에선 필요한 것이다."

"시의 그것은, 머리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가슴의 감동을 거쳐 독자에게 감동 줄 수 있는 것으로 전달하는 데에 있다."
"시 작품엔 어느 것이나 반드시 그 시의 눈이 있어야 한다. 초점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시의 언어는 그 체험된 감동의 침묵을 기초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생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시는 사람과 자연과 유계의 길-이 세 개의 영역에 동시 병존하는 데에서 그 정신을 경영할밖에 없다."
"이미지의 정선(精選)과 아울러 또 하나 해야 할 일은 어쩔 수 없이 언외의 묘미를 제공하는 시의 암시력의 부여다. 시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고 있는 말을 기초로 해서 구성해 내는 암시의 신기루에 아무래도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시에 쓰이는 언어는 다른 언어와 같이 서술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짧고도 함축 있는 생명 그대로의 최초 발성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므로 '시는 노래하는 정신의 그림이요 그림 그리는 마음의 음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의 언어는 언어 중에도 선이 있고 색체가 있는 언어이어야 하고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는 언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시의 언어 구사법이 딴 산문문학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무슨 특별한 시적인 단어들을 골라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배치의 묘를 얻는 데 있다. 딴 산문문학은 각 품사의 전량(全量)을 가지고 어느 때나 자유로이 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시는 어느 형식의 것이나 그 전량이 아니라 그 대표량만 가지고 쓰고, 그 언외의 암시력으로 복재(伏在)시켜 이 언외의 암시력으로써 주로 효과를 거두는 문학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언어 배치의 효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미(善美)한 배치가 문제이고, 이 잘 배치된 언어들 사이에 함축되어 여운하는 암시력이 문제일 뿐 일체의 산문문학적 잔 사설은 생략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당 시론의 핵심적 언술과 그것과 연관된 현역 시인의 100여 편의 작품과 젊은 시비평가의 정치한 해설로 이뤄진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는 구체적인 시 창작법의 좋은 교과서다.

한국 시인부락의 족장(族長) 미당 서정주!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로 7년째 접어든다. 나는 미당의 시 전집(全集)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그 가운데 내 곁에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 100여 편을 따로 뽑아 내 갖고 있다. 그런데 미당의 산문, 특히 시론은 손쉽게 읽지 못했는데, 이 책으로 인해 미당의 산문, 특히 시와 관련된 산문의 정수(精髓)를 접할 수 있어 여간 반갑고 고마운 게 아니었다.

나는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의 책장을 넘기면서 시 창작의 핵심적인 내용을 미당의 음성과 빛깔로 접하는 내내 행복하였다. '향토정서를 존중하라'라는 항목에 인용된 내 이웃에 사는 젊은 시인의 시 한 편을 다시 읽으면서 글을 끝맺는다.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니, 오늘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리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안상학, '아배 생각' 전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 - 젊은 시와 함께하는 서정주 시작법

방민호.박현수.허혜정 엮음, 예옥(2007)


태그:#서정주, #방민호, #박현수, #허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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