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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여수시 웅천동 장도. 물이 빠져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 임현철
그간 섬을 다니면서 왠지 활기가 부족해 축 쳐진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기 좋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이것을 꽉 차게 해줄 무엇인가가 아쉽다는 생각.

물론 섬에서는 문화, 교육, 교통, 의료 등의 조건이 열악하고, 어느새인가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치고 사람들이 떠나가서 그러기도 하다. 하지만 양식과 고기잡이 수입이 예전 같지 않아 궁핍한 생활고로 인한 것이지만.

지난 일요일(4월 29일), 물때를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나선 길. 장도로 들어가는 시멘트 다리가 물에 잠겨 있으면 뒤돌아설 작정을 하고.

다행히 다리가 드러나 있다. 여수시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 내외의 지척 거리에 있는 전남 여수시 웅천동 장도(長島)는 바다 위에서 고운 자태로 육지를 지켜보는 섬이지만 여느 섬과는 조금 다른 인상이다.

▲ 여수시 소호동 아파트 단지 건너의 장도에도 보리가 익어가고 있다.
ⓒ 임현철
장도는 섬이 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구 수는 똑같다. 5가구. 아이들이 자라 섬을 떠나면서 인구만 줄었을 뿐. 지금은 다섯 부부, 10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와는 다르게 여유롭고 한산한 풍경이다. 휴일, 할머니 집을 찾아 배 주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인해 섬이 활기를 띠고 있다. 마을을 둘러보고 장도의 활기의 근원을 찾아 정재권(62)씨 집 대문을 두드린다. 마침 그의 친구인 김우평씨가 놀러 와 계신다.

▲ 아이들 웃음소리는 활기의 근원이다.
ⓒ 임현철
"묘하게 장도는 활기가 있네요?"
"활기는 무슨 활기. 섬이 다 그렇지. 아이들이 놀러 와서 그러나?"

"여기 수돗물 들어와요?"
"아니, 마을 끝에 있는 우물물 먹어."

"바다가 바로 옆인데 짠물이 비치지 않나요?"
"대개 바다가 옆 우물들은 간기가 비친다고 하는데 저 우물은 안 그래. 물이 많은 섬이라서 그런 것 같애. 물이 많아 바닷물이 자연스레 밀려난 거겠지."


정재권씨, 아내와 딸에게 "어이, 술 한 잔 줘" 하신다. "아뇨, 됐습니다. 차 몰고 가야 되거든요"라고 사양해도, "섬 인심이 그게 아닌데, 사시미 한 점 하고 가야지" 하시며 술을 달라신다. 고구마로 술을 대신한다.

▲ 나무 아래에는 장도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하는 우물이 있다.
ⓒ 임현철
▲ 마을 우물은 맛이 좋아 주변에서도 받아갔다고 한다.
ⓒ 임현철
"물이 그렇게 많나요?"
"이 동네 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았지. 옛날에는 인근 섬이나 육지에서도 물맛이 좋다고 저 우물물을 받아가고 그랬어. 이 동네에서 103세까지 산 사람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물이 부족해. 물을 쓰고 있는 도중 종종 끊겨. 시에 요구했는데 언제 될지 몰라."

"여기는 생계수단이 뭐나요?"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고, 양식도 하고 이것저것 다했는데 지금은 나이 들어 힘들어서 거의 안 해."

"그럼, 뭐해 먹고 사세요?"
"미더덕 양식도 힘들어 임대 줬어. 농사도 짓고 그동안 벌었던 것 쓰고 살아. 아이들도 다 크고 적게 먹고 적게 싸면 돼."

"수입은 어때요?"
"지난해 적게 번 집이 1억이고, 다들 그 이상 벌어. 육지에선 이 돈 벌기가 쉽지 않지, 우리 동네는 부자여."


섬에 온 사람 야박하게 돌려보내기 뭐하다는 핑계 겸 술 한 잔 해야 이야기가 나온다는 채근에 결국 술과 해삼, 굴로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진다.

▲ 정재권 씨.
ⓒ 임현철
▲ 마을 해변에서 잡은 해삼과 굴로 조촐한 주안상을 차렸다.
ⓒ 임현철
"1억 이상 버는 양식 직접 안 하시고 임대를 줬어요?"
"미더덕은 7월에서 9월까지 작업하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여. 인부를 구해 일하지만 너무 힘들어. 바다 사업은 한 해는 잘됐다가도 한 해는 쫄딱 망하기도 하고. 해걸이도 많지만 여기 양식은 꾸준하게 돼. 지금은 해양오염 등의 규제도 많아 양식장을 철수하는 추세고."

"판로는 어때요?"
"판로는 문제없어. 주로 도매상이 그때그때 처리하는데 서울 노량진과 가락동에 올려. 1.5㎏ 박스당 8천원 꼴이다 보면 돼. 하루에 몇백 박스씩 작업하여 넘기니 돈은 되지."


이래서 활기를 띠는 것일까, 싶다. 나은 경제 사정이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려 여유를 준다. 그러나 이 여유는 경제력만은 아닐 것이다. '적게 먹고 적게 싼다'는 마음의 여유가 활기를 띠는 것은 아닌지….

▲ 장도.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와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도, #섬, #여수, #1억, #정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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