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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6일 이용훈 대법원장은 전국 법원순시 일정의 마지막 방문지인 서울고법ㆍ중앙지법을 방문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6일 대법원은 형사항소심 재판장회의를 통하여 1심선고 형량을 감경해주던 그동안의 온정주의 관행을 탈피함으로써 1심 재판을 존중하고 남항소로 인한 항소심 재판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을 논의하여 발표하였다. 대법원은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제1심과 항소심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하여 이러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생각하기로는 ①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경우 항소심에서 파기율이 높고 형량이 감소된 경우가 많이 있으며, ②교도소 내에서의 면회, 이감 등에 있어서 미결수의 경우 기결수에 비해 우월한 처우를 받기 때문에 미결수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남항소가 이루어지고, ③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남상소의 경향이 두드러지며, ④벌금납입을 유예받거나 행정법규 위반의 경우 영업정지처분의 효력이 지연되는 등의 이유를 남항소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생각하는 남항소의 원인과 일반국민이 생각하는 남항소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의 경우 1심재판에서 심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재판에 불만이 있는 경우가 항소이유의 대부분인 것 같다. 다시 말해 항소심 재판을 통하여 새로운 주장을 하거나 새로운 증거제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가지겠다는 취지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형사재판에서 양형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는 자백의 여부, 피해자와의 사이에 합의를 통한 피해변상을 했는지의 여부, 전과가 있는지의 여부, 구속기간을 통한 반성의 기회가 충분했는지의 여부 등이다.

이 경우 피고인들은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위의 사유들이 항소심에서 변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해서 항소를 하게 된다. 또한 1심의 재판과정에서 재판장이 자신의 이야기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에서 항소심에 의존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법원이 생각하는 것처럼 항소심재판이 온정을 베풀어 주는 관행이 있어서 피고인들이 막연한 기대심리에서 항소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어 있는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상당부분 항소심에서 관대한 처벌을 해왔다는 점을 법원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이러한 논의는 그동안 항소심 재판이 아무런 이유없이 1심의 형량을 감해주는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자인하는 형국이며, 이는 일반국민이 생각할 때에는 재판부와 특별한 관련성이 있는 변호인을 선임한 경우 형량을 감경받은 경우가 많았음을 스스로 자인함으로써 재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도 지적된다.

화이트칼라 범죄... 대부분 항소심 재판에서 관대한 처벌

@BRI@그러나 실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항소심재판부가 아무런 이유 없이 형량을 감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나치게 1심재판을 유지함으로써 도대체 심급제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무의미하다는 원성마저 듣고 있고 이러한 항소심재판부를 항기부(항소기각부)라고까지 비아냥거리는 실정이다.

대법원이 논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재판통계의 경우 항소율과 항소심파기율이 높다는 통계를 가지고 섣부른 결론에 이른 것 같다. 즉 2006년의 경우 합의부 항소율은 52.3%, 단독판사 항소율은 27.5%, 항소심 파기율은 고등법원의 경우 48.5%, 지방법원의 경우 47.6%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합의부와 단독판사 재판부 사이에 항소율이 많은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검토했어야 함은 물론 항소심 파기율의 경우에도 일반범죄와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변호인이 선임되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의 차이는 어떠한지, 또한 소위 전관변호사가 변호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 등을 면밀히 검토했어야 한다.

너무 형식적인 통계만을 가지고 섣부른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더욱이 온정주의 관행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정변경 없이도 항소심에서 형량을 감경해주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지의 통계분석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형사항소가 남용되고 있는 것은 항소심재판부가 형량을 감해주는 온정주의 때문이라고 손쉬운 결론을 내린 다음 이를 위해서는 1심재판을 존중하고, 항소심을 사후심적 요소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며, 항소심에서 미결구금일수 불산입이나 무변론 기각을 하는 방향으로 운영함으로써 항소심재판부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너무 편의주의적인 발상임은 물론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헌법상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게 된다.

1심재판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1심재판이 충실하게 이루어진 다음의 문제이다. 피고인의 충분한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았거나 증거조사가 불충분하게 이루어진 1심재판을 존중하는 것은 오히려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항소심이 사후심적 구조를 갖느냐 아니면 속심적 구조이냐에 대한 논의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고, 우리 판례는 원칙적으로 속심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 본다면 항소심을 사후심적 요소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후심이라는 것이 원심에 나타난 증거자료에 따라 원심판결시를 기준으로 원심의 당부만을 판단하는 것으로 원심판결에서 충분한 재판이 이루어진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원심재판이 부실하게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심적으로 운영될 경우 피고인은 충분한 재판을 받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결구금일수 불산입제도의 경우에도 피고인이 항소기각의 재판을 받을 경우 상당한 이유 없이 항소를 제기한 것으로 인정된 경우 항소심 판결선고전의 구금일수를 본형에 산입하지 아니함으로써 항소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기는 하나 피고인에게는 항소를 제기하는 것을 위축시킬 우려를 제공함으로써 피고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 적용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항소심재판부의 부담 줄이겠다... 편의주의적인 생각

따라서 대법원의 논의처럼 무조건적으로 1심재판을 존중하고 항소기각을 확대할 경우 자칫하면 우리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3심제의 원칙이나,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어서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 심급제라는 것은 같은 사안을 두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같은 주장과 같은 증거하에서라도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유무죄가 달라질 수도 있고 형량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1심을 존중해라는 것은 항소심판사의 재판권을 침해할 수도 있게 된다.

형사항소심 재판에서 1심판결을 존중하라는 대법원의 주문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헌법규정(재판의 독립)에 위반될 소지가 있음은 물론 항소심재판부가 가지고 있는 심증이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심급제도를 형해화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심급제도라는 것은 다양한 법관들의 사상이 심급을 달리하면서 반영되도록 함으로써 항소심재판이 획일적이고도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에서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경우 1심재판에서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졌는지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고, 항소심에서 충분한 재판이 이루어졌더라도 양형이 타당한지의 여부는 다른 시각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또한 1심재판에서 충분한 심리라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항소심재판에서는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새로운 주장과 증거를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1심재판이 존중받을 만한 것인지의 여부는 그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기준이 될 것이며, 무조건 한번 결정을 한 재판의 경우 우선적으로 존중을 해라는 취지의 논의는 심급제를 두고 있는 현행법의 체계하에서라면 부당한 것이다.

대법원으로써는 피고인들이나 변호인들에 대한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하여 보다 심층적인 항소이유를 검토해서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통해서 1심판결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오히려 항소율을 줄이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또한 항소이유서를 제출함에 있어서 명확한 항소심의 쟁점과 1심에서 주장하지 못했던 주장이나 증거조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의 여부 등을 조사하여 쟁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항소심재판의 부담을 줄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대법원은 명확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서 이를 제시하고 1심판결이 충실하게 이루어지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구비하는 것이 판결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음은 물론 항소율을 낮출 수 있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정범 기자는 법무법인 민우에 소속된 변호사이며 현재 한양대 법대 겸임교수으로 재직 중입니다.


태그:#형사항소원, #이용훈, #대법원장, #온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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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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