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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아무개란 분이 진료소를 찾아왔다. 그 분은 대전역 인근 쪽방에서 월세 10만원짜리 취사할 곳도 제대로 없는 방에서 생활하시는 분으로 생계급여를 지원받는 소위 영세민이다.

생계급여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분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면 맞을 정도로 자주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방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가끔은 희망진료센터를 찾아와 신세 한탄을 하며 과거 잘 나가던 때를 회상하시곤 하던 분이다.

이 분이 진료소에 오셔서는 한 종합병원에서 법원에 신청한 진료비 미납금 독촉을 위한 강제 집행 안내문을 내놓으시는 것이다. 자세히 읽어보니 3년 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미납된 금액이 약 150여만으로 수차례 병원비 납부를 독촉하였으나 납부의사가 없어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3년 전에 몸이 아파 119에 전화를 해서 응급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치료를 받는 도중 100여만원의 병원비를 내라는 말에 겁이 덜컥 나서 밤에 몰래 도망 나왔다는 것이다. 법원에 문의해 보니 강제집행이 결정되면 기초생계급여 통장이 압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분에게 생계급여는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그것이 중단되면 당장 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최소한의 생활이 안되어 최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주는데 그것을 압류해 버리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 정부의 공약 중에 공공의료체계를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나 병원의 공공성을 들지 않더라도 간신히 생계급여를 받는 돈을 압류하려는 병원의 처사를 보면서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원에서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때도 분명 인력과 경비가 들 것이고 그 분의 계좌를 찾아내고 강제로 집행하는데도 경비가 소요된다면 실제 병원이 그 분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미납금이 어느 정도일까? 그 분에게 생계급여는 생명과 같은 것인데.

통상적으로 종합병원에 가려면 1~2차 진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가거나 응급실로 가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보호자가 동반하게 된다. 우리나라 병원시스템이 보호자가 없이는 수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분은 보호자도 없이 병원에 입원했고 치료를 받던 중에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강제퇴원(스스로)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병원 담당자가 모르고 있었을까?

종종 희망진료소에서 이 병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데 주로 응급실로 실려 갔던 경우로 48시간 정도 응급실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퇴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진료소를 찾아와 진료를 받아보면 대부분 입원을 요하는 환자들이다. 그런데 응급실에 가서는 왜 입원이 되지 않는 것일까? 이 병원은 중부지역의 광역응급센터이자 공립병원이다.

그렇다면 시립병원이 없는 대전의 경우 이 병원은 다른 사립병원보다는 의료의 공공성을 담보해야 함에도 다른 사립병원보다도 못한 게 현실이다. 백번 양보하여 병원이 경영난이 심각하여 미납된 진료비를 다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분에게 얼마의 병원비를 받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 병원은 대전의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이다. 그렇다면 경영난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공공성은 지킬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공공의료체계를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장밋빛 공약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역특성을 고려한 공공의료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대전시는 시립병원부지에 민간의료기관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병원이 공공의 몫을 포기하고 자신의 배만 불리려고 하는 것을 막고 본래의 공공성을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술 더 떠 대전시가 시립병원 예정지에 민간의료기관을 유치한다는 것은 가난하지 말던지 가난하면 아프지 말라는 말 그대로 공익을 포기한 행위가 아닌가?

공원도 필요하고 지하철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시립병원을 얘기하면 예산타령이나 하고 엄청난 적자를 내는 지하철은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한 섬을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아흔 아홉 섬 가진 사람에게 백 섬을 채워주는 웃기는 정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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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숙인 복지시설 벧엘의집 대표입니다. 이번에 대전시민아카데미와 오마이뉴스가 공동 칼럼단 운영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빈민들의 문제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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