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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다. 코로나19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족 중에 확진자가 있었고, 공동생활을 했지만 나만은 피해 갔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같이 급식 먹는 제자들이 무수히 확진되었지만 나는 예외였다. 사람마다 면역력이 다르다는데 나는 어렸을 때 무엇을 앓았나... 용케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가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그간 잘 버텼다.

코로나19로 분위기가 삼엄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확진되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던 때도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확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묻지 않으며, 회사에서도 확진자의 공백을 메울 매뉴얼이 정비되어 있다. 격리기간을 준수하고 방역 수칙만 지킨다면 비난의 화살을 받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교사로 일하는 나는 지난주 우리 반 아이들을 인솔해 경주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오고 그 외에 일이 몰리면서 몇 가지 신경 쓸 일이 있었다. 몸이 안 좋길래 일 때문에 몸살, 감기가 오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열이 나서 학교 보건실에도 들렀다. 몸살이 단단히 오려나 각오를 했었다. 한편 코로나19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었기에 자가진단키트를 수시로 확인했다.

"엄마... 희미한 줄이 보이는데... 나도 이랬잖아..."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선명한 두 줄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몸이 안 좋다고 느낀 이유, 근육통이 있었고, 목이 따가웠던 이유, 희미한 한 줄이 더 보였던 이유까지... 그렇게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7일간 집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나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 일과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 원격 업무 지원 시스템에 접속해 공문을 훑어보고 간단한 일은 처리했다. 나를 대신해 우리 반을 맡아주신 선생님께 학교 알림 메시지를 좀 전송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오전 8시 반이면 카톡으로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받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전달할 내용이나 안내장이 있으면 알림장을 통해 학부모님께 알렸다. 이 모든 게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 이외에는 별달리 정해진 게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병가이기에 책을 봐도 되고, 인터넷을 하든, 유튜브를 보든, 드라마를 정주행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사실 걱정할 게 별로 없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의 시간 아닌가? 무한히 읽고 쓸 수 있는 시간 아닌가?

그런데 되돌아보면 읽히는 글을 단 한 줄도 쓰지 못했고, 답답하고 심란한 마음에 해소용 글쓰기만 한가득했다. 게다가 책 한 권 다 읽지 못했다. 시간을 쪼개가며 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 결과물이 형편없다. 어째서 이럴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 몇 시까지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는 외적 강제 없이는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리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일상의 리듬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다.

주말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고, 일요일 저녁이면 우울해지는 직장인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다. 직장생활의 폐해는 넘쳐난다. 내 주위에서 잘 볼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 직장에는 꼭 있다. 하지만 불합리하다 느껴지고 온갖 부조리가 넘치는 곳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직장생활의 다른 측면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만든 미니 갤러리
▲ 나의 일터 아이들과 함께 만든 미니 갤러리
ⓒ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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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회사는 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곳이자 자아를 지킬 수 있는 곳이다.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여러 페르소나가 있다. 교사이자, 아내이고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업과 관련한 정체성이 다른 것을 압도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가운데 내가 무언가 생산하거나 만들어 내는 유무형의 것이 분명히 있다. 

주도성과 창조적 활동에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활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나 같은 경우 나로 인해 우리 반이 운영되고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돋보이지는 않지만 맡은 역할이 있다. 내가 없으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직장생활은 자기 효능감과도 이어진다.

둘째, 회사에서 내 일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경제적 반대급부가 있다. 공무원 월급에 대한 자조 섞인 한탄이나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해진 고정 수입은 생활의 안정성을 높이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준다. 위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면 소확행을 하기에 부족한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셋째,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준다. 사실 이 부분이 내게 주는 의의가 크다. 나라는 사람은 아직 강제하는 무엇이 없으면 한없이 늘어져 버린다.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십수 년씩 살아오면서 이것 하나는 잘 단련이 된 것 같다. 규칙 준수, 시간 엄수. 또한 킬링타임 후에 오는 자기 비하를 피할 길이 없는데 직장생활은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는 큰 축이 된다.

넷째, 직장생활을 할 때 오히려 시간을 더 아껴 쓰게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질수록 자투리 시간이 더 아쉽고, 바쁜 중에 찾아오는 잠시의 여유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7일간의 격리 동안 시간이 그렇게 많음에도 일의 효율은 더 떨어지고, 결과물은 형편없으며 그에 더해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을 것이다.

7일간의 격리기간을 끝내고 이제 월요일이면 학교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해도 난 내 일터가 좋다. 날 필요로 하는 곳이며,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 없이 내 실력으로 그럭저럭 우리 반을 이끌어 나갈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어내며 느린 속도지만 성장한다는 느낌도 있다. 

능력 있는 선후배를 통해 건강한 자극을 받으며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마지못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도 그랬고,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듣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부정적으로 여기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나아가 기록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자신이 머물러야 할 한 가지 이유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직장생활, #격리,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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