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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사고 피해자 광부를 살리는 데 커피믹스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커피믹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얼마전 친정 엄마의 부탁으로 커피믹스 대용량을 배달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에게 커피믹스는 지친 육아를 달래고 힘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커피믹스를 빨리 먹어서 대용량으로 살까 봐"라고 말씀하셔서 부모님 댁에 보내드렸습니다. 나이가 들어 소식과 채식 위주로 식사중이신데 오후만 되면 커피믹스가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부모님은 커피믹스를 매일 마셔야 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9년째, 육아를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은 세상에 태어난지 80일 된 저의 아이였습니다. 상견례 때부터 요새 맞벌이 안 하면 어떻게 젊은 사람들이 살겠냐며 손주를 봐주신다 말씀해 온 부모님이셨습니다. 죄송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맡겼습니다.

이제 겨우 옹알이 하는 수준의 아이의 똥, 오줌 갈아주는 게 대수랴, 삼시 세끼 영양분 골고루 먹이느라 신경 쓰시고 아침마다 엄마를 찾는 통에 한 시간씩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시느라 고생하셨지요.

그러다 아이가 차츰 말귀 알아먹는 나이가 될 때쯤, 친정 오빠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3살 터울의 손주가 또 태어났습니다. 겨우 기저귀 가는 것을 그만 하나 했더니 다시 시작이었지요. 3살 터울 남아 둘을 키우다 보니 힘이 드셨을 것입니다.
 
왜 부모님은 커피믹스를 매일 마셔야 할까요?
 왜 부모님은 커피믹스를 매일 마셔야 할까요?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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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모님은 저희에게 "둘 중에 누구라도 둘째 가지면 이민갈 거야!"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그 힘든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자식 힘들지 말라고 시작했지만 길고 긴 육아에 힘이 부치셨겠지요.

아이들을 단 한순간도 놔두지 않고 TV에 길들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직접 몸으로, 입으로 놀아주셨으니 더욱 힘드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6년의 세월 동안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맞춰 발을 동동 구르고 하교 후에 각자의 부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 주시는 게 쉽지 않았겠지요.

친구들을 마음대로 만나실 수가 있나, 모임 일정에 맞춰 여행을 갈 수가 있나... 그러니 절대 둘째는 낳지 말라고 하셨지요. 이제 아이들이 말귀 좀 알아들어 수월하다고 느끼시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회사에 있는데 친정 오빠의 전화가 왔습니다.

"나 어떡하냐... 둘째 생겼다."
"뭘 어떻게... 생긴 것에 감사 하고 우리 이제 각자 육아해야지."


걱정이 되서 부모님께 말씀은 못 드리고 회사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지요. 이미 생긴 아이니 축복하고 우리 각자 아이를 잘 키우자 했습니다. 사실 이제 조부모 육아 때문에 늙어가는 부모님을 뵈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느껴졌을 때기도 하였습니다.

둘째 조카 출산일에 맞춰 저는 육아단축 근로를 시작하였고 오빠네는 외벌이로 전향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친정 부모님의 조부모 육아가 일단락 되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빠가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고 다시 맞벌이로 돌아서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다시 조부모 육아가 시작 되었습니다. 제 둘째 조카 나이는 다시 세 살입니다. 다시 기저귀 갈고 유아용 식사를 다시 만들고 아직 말도 못하고 울음으로 의사표현하고 안아주기를 시작해야 하는 나이, 세 살의 손녀 키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나도 늙었나 봐... 힘에 부쳐서 오후쯤 되서 커피 믹스 한 잔 마셔야 힘이 나더라. 그래서 먹다 보면 금방 동이나."

분명 육아가 주는 기쁨이 있다고 하시지만 몸이 나이를 먹고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 말씀하십니다. 

"너 아이 키울 때는 젋어서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힘이 드네."

자조적인 말씀을 하실 때는 울컥 합니다.

"엄마, 엄마가 힘든 건 당연해! 9년째 3살배기를 키우는데 어느 누가 안 힘들겠어."

태그:#커피믹스, #조부모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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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맞벌이, 지금은 전업주부 하지만 고군분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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