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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로 기억한다. '우리나라 암 확진 환자 중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경우는 2017년 현재 187만 명.  5년 넘게 생존한 사람이 104만 명. 12년 전보다 1.3배 높아졌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암을 이겨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예전보다 훨씬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암은 여전히 한국인들을 가장 많이 죽게 하는, 그래서 막연히 불안하고, 두려운 병이다. 그런 암을 가족 누군가 혹은 가까운 누군가가 걸렸다면?

우선 눈앞이 캄캄해지는 충격에 빠질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하거나, 암에 좋다는 음식이나 보조 치료법을 알아봐 알려주거나 사다주거나 하지 않을까. 물론 환자에 대해 안타까움이나 걱정, 그리고 어떻게든 이겨내길 바라는 응원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 될까. 그렇다면, 환자에게 정말 도움되는 것은 무엇일까.

14년 차 한 종양내과 의사가 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라이킷 펴냄)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암과 그 주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한 책이다.
 
(암에 걸렸을 때)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적극적으로 질병과 관련된 정보를 탐색하는 사람은 환자 본인이다. 그럼에도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한마디 보태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변에 꼭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도 그랬으니 요즘은 오죽할까.

많은 환자들이 "지인들이 이것저것 권해주는 것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다"고 호소한다. "주변에서 이런 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 너무 많아서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고기도 안 되고, 밀가루 음식도 안되고, 소화도 안 되는데 잡곡으로만 먹으라고 하니(원칙은 영양적으로 균형 잡히고 소화가 잘되는 식사다. 고기나 밀가루를 금하는 것은 근거가 없으며, 잡곡은 소화 기능이 떨어져 있을 땐 무리하게 권하지 않는다) 종종 식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일쑤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영양 불균형이나 영양실조 상태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병에 좋다더라, 나쁘다더라 하는 잡다한(그리고 대부분 근거 없는) 지식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인터넷에 차고 넘쳐 오히려 문제이고, 환자를 더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걸 해야 해'보다는 '지금 잘하고 있다'는 격려, '힘내요'라는 재촉보다는 '힘들지요'라는 인정이 환자의 마음에는 더 위안이 될 수 있다.-(60~62쪽)
  
책은 담낭암 말기 환자로 1년 남짓 투병하다 죽은 자신의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1992년 출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소개로 그치지 않고 책의 상당 부분을 인용, 그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책표지.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책표지.
ⓒ 라이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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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으로 암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암 환자 본인과 옆에서 간병한 부인이 함께 쓴 책인만큼 암 환자 본인과 그 가족들이 겪는 것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담을 수 있어서다.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도움 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암을 치료하는 종양 내과의로 수많은 암 환자들과 그로 인한 죽음들을 접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암이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종종 극심한 소진에 빠질 정도로 대해야만 하는 죽음들은 그 무게만큼 힘겹고 슬프다고.

신문이나 TV 등에 나오는 새로운 암 연구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것,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요법에 매달리는 것,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병원과 의료진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더 큰 것, 갑작스러운 증상 악화로 어쩔 줄 모르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것 등, 의료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나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병원도 사회도 아버지가 투병했던 1990년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이런 현실에 환자나 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어떤 방법은 분명히 있으리라는 것. 투병으로 인한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상을 조금 더 평온하게 유지하거나 조금 더 특별하게 장식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 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자신이 어떤 도움이라도 되려면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프거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리할 필요성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대부분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어렴풋이 알고 있는 암의 여러 증상과 그에 따른 항암 차료, 의료 현장 및 의료 현실, 여러 유형의 암 환자, 도움은커녕 경우에 따라 고통을 증가시키거나 죽음을 재촉하기도 하는 각종 대체요법(민간요법)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한 조언, 점점 죽음 가까이로 가는 과정, 연명 의료법이나 사전돌봄계획, 완화적 진정 등과 같은 죽음에 대비하는 다양한 방법들, 종양 내과의로서 들려주는 죽음에 대한 여러 사유, 의료인으로서 본 의료현장 등 병과 병원이 배경인 다양한 측면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어떤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암도 마찬가지. 그런데 대부분 전문가 혹은 의료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편 이 책은 한때 암 환자 가족이었던 한 사람이 종양내과 의사가 되어 돌아보는 아버지를 죽게 한 암 관련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세 아이를 둔 40대 가장으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 본인(저자의 아버지)과 간병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던 만큼 환자 못지않은 고통을 겪은 그의 아내(저자의 어머니)가 함께 쓴 글을 바탕으로 한다. 투병의 고통과 상실감으로 잘 지내는 어린 아이들까지 원망하기도 하고, 간병과 생활의 고통에 남편이 차라리 빨리 떠나기를 바라는 등처럼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들과 심정의 글들을 말이다.

어떤 책보다 암 혹은 불치병 환자들의 마음 고통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나아가 환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자신의 어떤 역할을 판단하는데 적절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보다 바람직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우리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없이 접할 수밖에 없는데도 터부시되는 죽음에 대한 '어떤 생각들'에도 도움 되리라.

태그:#암(담낭암), #잃었지만 앚지 않은 것들, #김선영(종양내과의사), #연명의료법, #대체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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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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