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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가 있다.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늘 바쁘다는 그녀.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단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요즘 정말 너무 힘들어. 나는 한답시고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이곳저곳에서 하나같이 나한테 서운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누구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알뜰살뜰 시간을 쪼개가며 사는데."

실컷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고 집에 돌아와 허무함을 느꼈다. 사실은 그 날, 나도 오랫동안 묵혀온 서운한 감정을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갔던 차였다.

그녀는 왜 늘 바빠야만 할까. 나를 포함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왜 모두 서운함을 느낄까. 나는 왜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해주는 책을 만났다. 이미 여러 권의 양서를 집필해 작가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의 <당신과 나 사이>.

<당신과 나 사이> 책표지
 <당신과 나 사이> 책표지
ⓒ 메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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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는 각자의 섬에서 외롭다고 말하는 걸까? 무엇이 당신과 나 사이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고 있는 걸까?" (p5)


책날개에는 모든 문제의 90퍼센트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적혀 있다. 출처가 나오지 않은 이 통계에, 나는 반대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낯선 이로부터 위로받는 일이 허다했고,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일들에 아파야 했던 날들이 많았다.

저자는 한때 너무도 바쁜 나머지 모든 인간관계가 그저 힘들고 피곤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p6)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보니, 자신을 지켜준 많은 이들이 있었다고. 그 덕분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나는 당신 곁에도 그런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란다. 아니, 적어도 내가 마흔 살이 되도록 저질렀던 실수를 당신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면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주는 법과 함께 잘 기대는 법을 배워서 당신이 더 이상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 (p11)


저자의 진심과 진정성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따스하고 편안한 환청(!)과 함께, 책은 나를 휴식으로 이끌었다.

저자는 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혼자라는 것을, 한없이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덕분에 인간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까. 전혀 아니다. 인간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체득하자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중략) 다만 사랑을 하게 되면,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게 되면 사람은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나와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는 상대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면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p36)


저자는 이 책이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만 열중해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터. 다음의 문장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동안,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안해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피곤하고 일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은 나를 찾아 주는 모든 사람이 고맙고 반갑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무척이나 즐겁다." (p10)


이 말에 적극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내 마음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모든 관계가 편안해지곤 했다.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관계만을 좇을 때, 내 뿌리는 흔들리고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곤 했다.

책에 의하면, 가족·연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0에서 46cm,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46cm에서 1.2m, 회사 사람들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1.2에서 3.6m라고 한다. 저자는 이 거리가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 거리를 유지할 때, 관계를 단절할 필요도 없고,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홀가분해질 수 있다고 한다. 곧, 불필요한 적대적 상황과 감정적 소모를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거리두기라는 것이다.

이 거리는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상대가 잘못된 길을 택한다면 조언하되, 선택은 그에게 맡기는 것이다. 다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늘 내가 곁에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거리 두기이다.

책을 읽으며, 친구와 나를 떠올렸다. 그녀가 조금은 삶의 여유를 찾길 바라며 이 책을 권할 생각이다. 그러나 내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으로 괜찮다. 나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면 그만인 것이다. 서운함을 느끼는 것 또한, 사랑을 가장한 나의 이기심이었음을 인정한다. 책의 문장을 옮기며, 리뷰를 마친다.

"이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와 당신이 서 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간격은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행복하고, 함께 있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 (p67)


당신과 나 사이 -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거리를 찾는 법

김혜남 지음, 메이븐(2018)


태그:#당신과 나 사이, #서평, #책동네, #김혜남,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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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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