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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놀이에서 설장구놀이를 하고 있는 하현조
▲ 하현조 남사당놀이에서 설장구놀이를 하고 있는 하현조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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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얼쑤', '좋다'라는 추임새를 소리치며 자지러진다. 넓은 무대 중앙에 한 여인이 장고를 메고 나와 설장구놀이를 하는데 그 자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고혹적이다. 눈을 가진 남성이라면 넘어가지 않고는 견딜 장사가 없다. 9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남사당로 198에 소재한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의 놀이 현장이다.

안성남사당과의 인연은 30년 전이다. 안성시(당시는 안성군)에서 남사당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고 추운 겨울날부터 근 6개월 정도를 남사당 본거지인 청룡사까지 수십 차례 왕래했다. 아마도 안성남사당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것도 그 당시 고생을 하면서 남사당 현장 조사를 했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 중 판굿
▲ 판굿 안성남사당풍물놀이 중 판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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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안성남사당풍물놀이도보'라는 60P에 달하는 작은 소책자를 발행 한 것이 1987년이다. 그런 일이 인연이 되어 남사당과는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만든 것 같다. 안성을 찾아 남사당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꼭 만나고 오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공연장 가운데서 사람들 애간장을 태우며 설장구놀이를 하고 있는 하현조(여, 40세)이다.

남사당 책자를 쓰기 위해 안성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현조(구명 하영주)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린 꼬마아이였다. 그 작은 것이 양팔을 흔들면서 어른들 뒤를 따라 다니는 것을 보며 "언젠가는 일 한번 낼 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세월이 벌써 30년이 흘러 이젠 완숙한 여인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월이라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현조의 개인놀이 중 설장구놀이
▲ 하현조 하현조의 개인놀이 중 설장구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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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 바우덕이 예능의 혼을 이어가다

남사당패는 구한말까지 이어진 예능집단이다. 이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서민층에서 자연발생으로 생겨난 집단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농악놀이, 접시돌리기, 재주넘기, 줄타기, 탈놀이, 인형극 등 여러 가지 놀이를 제공하던 유랑 예인집단이었다.

조선조 말에는 남사당패 외에도 솟대쟁이패, 사당패, 걸립패, 중매구패, 각설이패 등 수 많은 유랑집단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한 곳에 거처를 정해놓고 전국을 유랑하며 기예를 보여주는 예능집단이었다.

남사당의 예능은 조선후기 바우덕이라는 여인에 의해 꽃을 피웠다.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인 비우덕이는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여자의 몸으로 꼭두쇠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들은 경복궁 중건 시 대원군에게서 천민 신분이면서 정삼품 벼슬을 상징하는 옥관자를 받았던 주인공이었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가네

당시 안성 남사당패는 전국 어디를 가나 최고의 기예집단으로 대접을 받았는데 다른 기예집단과 대중들은 바우덕이를 예로서 맞이하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바우덕이에 대한 노래가 안성지방에 전해지기까지 했을까? 안성남사당은 바우덕이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김복만, 이원보, 김기복 등으로 그 예능이 이어지면서 그 맥을 잇고 있다.

하현조의 개인놀이인 설장구
▲ 설장구 하현조의 개인놀이인 설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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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인 혹 바우덕이가 환생한 것은 아닐까?"

30년 전부터 안성남사당의 마당놀이를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바우덕이는 꼭두쇠라는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로 그 많은 식솔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바우덕이가 남사당패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한(恨)인들 없었을까? 아마 그렇게 서린 한이 다시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남사당 공연 때마다 마주하는 두 명의 아이들이 바우덕이 환생이라는 생각을 늘 지울 수가 없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설장구놀이를 하면서 사람들 애간장을 녹이고 있는 하현조이다. 장고를 둘러매고 무대 중앙에 선 하현조의 설장구놀이는 일반적인 춤에서 보이는 설장구놀이와는 다르다.

판굿 도중 설장구 개인놀이를 하고 있는 하현조
▲ 하현조 판굿 도중 설장구 개인놀이를 하고 있는 하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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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서 보이는 설장구놀이가 춤을 기본으로 한다면 남사당패에서 잔뼈가 굵은 하현조의 설장구놀이는 웃다리농악에서 보이는 개인놀이 중 장구놀이 가락을 기본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광풍이 휘몰아치는가 하면 때로는 관객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뭇 남성들은 아마 그녀의 설장구놀이에서 바우덕이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 어린 것이 언제 저렇게 여인이 되어 관중들과 함께 놀이판을 이끌고 있을까? 어찌보면 그 여린 자태마저 바우덕이를 닮았다. 늘 하현조를 볼 때마다 "넌, 아무리 생각해도 바우덕이가 환생한 것만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던 두 녀석들을 보면서 "이 녀석들 중에 한 명은 바우덕이가 틀림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객석에서 공연을 보던 사람들은 무대에 불이 꺼지자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기대한다. 불이 켜지지 장구를 둘러 맨 단원 한 사람이 너른 무대 중앙에 섰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궁채와 채를 번갈아가면 울려댄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순간 광풍이 몰아치듯 파장을 일궈낸다.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안성남사당공연
▲ 설장구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안성남사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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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그렇게 몰아치던 장단을 순간적으로 멈추어 버린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관객들도 함께 숨소리조차 멈춘다. 한번 두 번 세 번 장단을 점점 빠르게 찍어치던 손놀림이 거세진다. 관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오고 추임새는 점점 고조된다. 아마 바우덕이가 판굿마당에 섰을 때도 이랬을 것이다. 뭇 남성들이 그녀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어린 소녀를 만났을 때 "언젠가는 일 내겠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가 이렇게 너른 무대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모습을 보면서 "현조야, 넌 아무래도 바우덕이가 이루지 못한 꿈이 아쉬워 다시 환생을 한 것만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하현조, #안성남사당, #바우덕이, #설장구, #안성맞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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