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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6.25가 그렇고 4.19가 그렇듯이 4.16은 역사가 되어갑니다. 한 맺힌 역사,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역사입니다. 어느 사가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지만 4.16 세월호 참사는 과거가 없는 현재만의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얽힌 것은 푸는 것이 정상인데, 세월호만은 그냥 덮어 두자고 술수를 부립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외친 행사가 척박하기만 한, 지역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우리 김천에서 열렸습니다. 행사의 이름은 '세월호 2주기 김천시민 촛불문화제'입니다. 4월 16일, 제법 굵은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오후 7시에 강변 조각공원에서 열렸습니다. 행사와 비는 상극입니다. 그렇지만 세월호 2주기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2주기 추모 촛불문화제가 2016년 4월 16일(토) 오후 7시 김천 강변 조각공원에서 열렸다.
▲ 세월호 2주기 추모 촛불집회를 알리는 현수막 세월호 2주기 추모 촛불문화제가 2016년 4월 16일(토) 오후 7시 김천 강변 조각공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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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바닷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이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 죽음을 방기한 2년 전의 그 일도 있는데, 이 비쯤이야 하는 마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했지요. 날짜를 연기하자는 사람들도 있었고, 장소를 실내로 변경하면 어떻겠는가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이 있는데, 이것쯤이야 준비하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모든 게 갖추어진 조건에서 열리는 세월호 추모 행사보다 이런 악조건에서 진행되는 행사가 더욱 의미 있겠다는 마음들, 이런 것을 '대동(大同)의 마음'이라고 표현하면 어떨지요. 우중에 우리는 그렇게 모였습니다. 얼굴들은 빛났고, 눈망울은 더욱 반짝였습니다. 진실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사람들!

준비하는 사람들은,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비 오는 행사장을 몇 사람이 찾아줄지 모릅니다. 그래도 배려의 마음이 싹텄습니다. 세월호의 상징색이 된 노란색! 노랑 비옷을 준비하여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네 개의 이동 천막을 붙여 그 안에 앉게 했습니다. 두 시간여를 비 맞고 서 있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바람도 곁들인 비, 장정 여덟 명이 천막 기둥을 잡고 날아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정성이 녹아있는 세월호 행사!

비가 오는 궂은 날임에도 200 여 명의 시민이 참석해서 촛불을 밝혀 들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임에도 200 여 명의 시민이 참석해서 촛불을 밝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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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남녀노소, 각계각층 또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튼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준비한 이들의 얘기로는 순수한 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도착했을 때 200 여 명 될 것 같았는데, 왔다 간 사람들까지 합하면 300 명은 족히 되고도 남을 거라고 했습니다. 비내리는 주말 오후, 세월호의 진실을 찾아온 발걸음들! 김천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참석한 한 여고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가톨릭 재단의 학교입니다. 사회 과목을 담당하시는 신부님이자 선생님이 강변 조각공원 세월호 2주기 행사를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은, 지금이 비록 시험 기간 중이라곤 하지만 점수 몇 점 더 받는 것보다 세월호의 진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면서 참석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여러 명 함께 왔다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진정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요.

프로그램을 소개하기 전에 사회자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그는 우산도 쓰지 않고 그렇다고 우비도 입지 않고 시종 비를 맞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강단 쪽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위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기려고 한 걸까요. 사회자가 저런 자세로 임하는데, 비로 인한 작은 불편함쯤이야, 참석자들은 그런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세월호 2주기 촛불문화제 현수막. 강단 앞 부분에 걸려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 세월호 2주기 촛불집회 무대 세월호 2주기 촛불문화제 현수막. 강단 앞 부분에 걸려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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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은 다양하면서도 알찼습니다. 준비한 이들이 고심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중요한 것만 몇 개 들어 볼까요? 의장 인사말에 이어 촛불 점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이 있었습니다. 이 행사가 '촛불문화제'라고 했잖아요. 추모시 낭송과 노래 공연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관련 영상물 보기도 빼놓을 수 없겠고요, 아직도 기억을 맴도는 프로그램 내용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래공연과 '비행기 날리기' 그리고 '나도 한 마디' 자유발언이 그것입니다.

문화제에 노래공연이 빠지면 무척 허전하겠지요. 하지만 김천과 같은 지방에서, 알려진 민중 가수를 초청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비용도 그렇고요, 가수 물색이 아주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촛불 문화제에 참석해서 행사를 행사답게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로서 비내리는 날, 먼 김천까지 와서 세월호 관련 노래들을 열창했습니다. 그들도 노래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따라 부르는 참석자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픈 눈물입니다.

서울에서 급히 내려와 슬픈 노래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두 가수. 이들은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김천의 촛불문화제를 위해 소리로 재능기부를 한 셈이 되었다.?
▲ 두 명의 아마추어 가수 서울에서 급히 내려와 슬픈 노래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두 가수. 이들은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김천의 촛불문화제를 위해 소리로 재능기부를 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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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에게 A4 용지와 볼펜을 나눠주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10자 이내로 소망을 적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 강단 쪽으로 날리는 것입니다. 그 종이비행기를 주워서 사회자가 참석자들에게 읽어 주는 것입니다. 즉석에서 10자 이내로 소망의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비행기가 앞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사랑한다", "잊지 않겠다", "리멤버 4.16" 등의 내용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렇지요, 세월호 결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도 한 마디' 자유발언 시간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습니다. 그중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발언이 인상적이더군요. 그는 이렇게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개나리가 만발해야 할 2년 전 이날, 노란 리본이 방방곡곡에 나부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 과정을 죽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의 발언이 많았고요, 학부모님들의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침묵하는 것 같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은 분명하게 다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자유발언 시간에 나와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중2 학생. ?"개나리가 만발할 2년 전 이날, 노란 리본이 방방곡곡에 나부꼈습니다…."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 자유발언하는 중2 여학생 자유발언 시간에 나와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중2 학생. ?"개나리가 만발할 2년 전 이날, 노란 리본이 방방곡곡에 나부꼈습니다…."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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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겠지만 경북 김천은 보수를 넘어 극우의 세(勢)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정권과 각 세우는 행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야당 후보를 내지 못할 정도로 균형이 깨진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내지 시민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는 만큼의 결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합니다. 이런 곳에서 세월호 추모 집회를 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김천에서의 세월호 2주기 행사! 그 모험을 기꺼이 감내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민단협 의장 김대성)가 행사 준비와 진행을 도맡아 했다는군요. 김천 지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지역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과격한 계급운동도 지양하며 오직 시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목표를 내 세우고 있어 든든한 마음이 드는군요. 이런 깨어있는 시민의식은 중앙과 지역의 균형발전에 버금가는 의식의 균형발전이 될 것입니다.

비를 맞으며 세월호 2주기 김천시민 촛불문화제를 주관한 단체와 회원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석해서 건강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분들을 축복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넋을 추모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마음에 귀하게 담습니다. 나아가 보다 진보하는 우리 지역을 희망합니다. 작은 힘이 모여 기적을 이루어 낸다는 말은 시대를 뛰어넘어 진리란 믿음을 갖게 됩니다.


태그:#세월호 2주기, #촛불문화제,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 #우중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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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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