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도대체 왜 개성공단이 평화를 위한 안전장치란 말인가? 애초에 적지(敵地) 한가운데 협력적 공단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오늘날 개성공단 존폐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개성공단이 기획된 의도가 상당 부분 숨겨져 있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 자체로는 너무나도 설명이 불충분하며, 그 숨겨진 의도를 알고 있어야만 이해가 가능할 듯 하다.

개성공단과 평화 혹은 안정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론적·현실적 구상과 근거들이 숨어있다. 이를테면 전략적 요충지인 개성에서의 북한군 후퇴, 개성공단을 근거로 하는 한반도 국제경제지구의 가능성 확대 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그래서 꼭꼭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개성공단의 성격이 있다. 신자유주의다.

개성공단이 극도의 우파 자본주의적 기획의 결과였음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개성공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이때의 전략은 단순히 군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햇볕정책이라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의 산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파·우파와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좌우와 보혁에 대한 왜곡과 몰이해가 만연한 사회기 때문인 탓도 있다.

좌-우, 보-혁 사이에서 왜곡된 진실

개성공단을 이야기하기 전에 좌우와 보혁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틀은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은 간단하다. 좌파-우파는 결코 민주주의와 관련된 구분이 아니며, 경제적 지향성과 관련된 구분이다.

우파는 보다 심화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를, 좌파는 공동체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여기에서 말하는 공동체주의는 실제 학술이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는 차원의 이념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는 레닌이 기획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소수 경제 기득권의 횡포를 방지하고자 하는 이념이다.).

진보와 보수의 경우, 진보는 보다 개혁적인 사람들, 보수는 보다 현상유지적인 사람들의 집합이다. 진보와 보수가 일률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이란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한다. 카이사르 시절 로마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보수, 왕정주의자들이 진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세계는 영미식 자본주의 체제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좌파와 진보, 우파와 보수가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말 공산권이 붕괴하며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사실에 입각한 채로 개성공단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개성공단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자본으로 북한에 공단을 짓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남북이 나누어 갖는 것이다. 북한은 노동력만 투입하고 인건비를 벌어들이며, 나머지 이익은 한국 기업이 갖는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돈 놓고 돈 먹기 전략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원리다. 따라서 이런 식의 공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커진다.

개성공단, 극도의 자본주의

지난 12일, 개성공단기업협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새누리당(좌)과 정의당(우)
 지난 12일, 개성공단기업협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새누리당(좌)과 정의당(우)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가령 지금까지 개성공단에는 총 123개 기업이 입주해있었는데, 만약 1230개 기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남북이 구상한 대로 해주공단, 신의주공단까지 만들어지고, 나아가 함흥공단, 원산공단 등이 만들어져 몇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았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물론 이것만으로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남북의 평화적 협력 모색이 이루어질 때,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한반도 경제를 악화시키기 쉬울까?

우파가 보수와 교집합이 많고 좌파가 진보와 교집합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 그렇다면 왜 햇볕정책과 개성공단이 자칭 보수세력에게 지탄받는가? 그것은 한국이 안보지상주의가 만연한 분단사회기 때문이다.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우파적 보수성을 지향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 반공적·안보적 보수성을 더욱 크게 지향하는 분단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우파적 논리에 따르지만, 분단국의 왜곡된 정치지형 때문에 '보수적'이기는커녕 '좌파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장에서 시장으로

유럽공동체(EC)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유럽연합)으로 출범했다.
 유럽공동체(EC)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유럽연합)으로 출범했다.
ⓒ APF 캡처

관련사진보기


햇볕정책이 우파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경제적 협력에서 시작해 정치적 협력까지 이끌어낸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이를 '기능주의'라고 한다. 기능주의는 "자유로운 교역은 전쟁을 억지한다"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모태가 되어, 현대 유럽에서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유럽연합의 근거가 되었다.

즉 기능주의란 단순히 일상적·평면적 신뢰가 아니라 기능적 협력을 통한 관계적·전략적 신뢰의 구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럽은 기능주의적 사고에 따라 각종 경제적(기능적) 협력을 펼쳐나가면서 1958년에 유럽경제공동체(ECC)를 만들고, 이를 1967년에 유럽공동체(EC)로 발전시키고, 마침내 1991년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유럽은 경제위기에 고전하고 있지만, 위기에 맞서 더욱 전향적인 통합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대전 후 어수선했던 유럽이 통합되는 과정을 벤치마킹한 정책이 햇볕정책이며, 그 속에서 설계된 결과물이 개성공단이다.

그런데 남북은 유럽과 크게 두 지점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로 유럽의 전반적 경제 격차에 비해 남북 경제 격차가 훨씬 심하다는 점, 둘째로 유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안보협력체가 1949년 먼저 만들어져 있었던 점이었다. 남북 경제 격차는 유럽 통합이 진행되던 때 유럽 내부적 격차보다 훨씬 심하므로 한국 자본이 북한에 투입되면 될수록 북한의 경제적 종속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은 경제협력의 심각한 제약이었으며, 따라서 경협은 군사대립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보다 전향적으로 시도되어야 했다.

시장에서 광장으로

대한민국이 햇볕정책 구상을 처음 내놓았을 때 북한이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고민했던 부분도 이 부분이다. 두 정부가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북한 경제의 한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극도의 자본주의 정책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평화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경제적 팽창주의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최대한 삼가고, 사회적·문화적 협력을 병행하며 정치·군사적으로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역사, 학문, 예술, 종교, 스포츠 등 수많은 분야에서 남북 협력이 이루어졌고,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걷고 있는 최근까지 만월대 공동 발굴 등의 협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북한은 같은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남북경협보다 북중경협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개성공단을 더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이 자리 잡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대남도발은 없었으며, 공교롭게도 햇볕정책이 멈춘 2008년에 금강산 피격 사건, 2009년에는 3차 서해교전이 벌어졌다(핵 문제는 분명히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핵 문제는 단순히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동북아시아 및 세계 전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바탕이 됐을 때 개성공단이 남북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는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햇볕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고, 개성공단이 그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그것이 제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신자유주의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적 남북관계를 일구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식의 사고가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정치지형에 의해 개성공단이 이상한 오해의 온상이 된 현실이다.

오늘날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 역할론을 들먹이는 이유가 북한의 대외교역 중 대중교역이 90%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과 개성공단은 남북 교역량을 지속적으로 늘려가며 한국이 중국에 맞먹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혹은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획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중국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하지만 남북경협이 커졌다면 북한문제에 맞서 우리가 직접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남북이 함께 일구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도 강조하는 '신뢰와 평화'라는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니다.


태그:#개성공단, #북한, #신자유주의, #우파, #평화
댓글4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