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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시대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옛 피사의 사람들, 그들은 가장 높은 탑을 올려 세상에 그들의 영광을 떨치고자 했습니다. 비록 높은 탑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후손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후손들은 조상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나는 피사의 두오모 광장을 빠져 나오면서도 신비스런 피사의 사탑을 몇 번을 보고 또 쳐다봅니다.

깎아지른 언덕 위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친퀘테레

여행 가이드가 해찰하는 나를 비롯한 일행들을 부릅니다.

"자, 어서어서요! 다음 장소로 이동합시다. 열차시간을 놓치면, 일정이 빠듯해요. 모두 수신기를 켜세요!"

혼잡한 여행에서 충실한 길잡이 역할을 한 수신기이다.
 혼잡한 여행에서 충실한 길잡이 역할을 한 수신기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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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수신기를 켭니다. 여행 첫날, 여행사에서 나눠준 수신기가 길눈 역할을 합니다. 수신기는 발신자의 목소리가 반경 100m 안까지 들립니다. 수신기를 잘 듣고 이동하면 대열에서 이탈할 염려가 덜합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메모를 하면서 주의를 기울이니까, 여행의 묘미도 더합니다. 문명사회의 이기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수신기에서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오후엔 이태리의 '숨은 보석 같은 마을', 친퀘테레로 갑니다. 수신기 귀에 꽂고 제 지시 잘 따르세요."

숨은 보석 같은 마을이라? 어떤 마을을 두고 하는 말일까. 우리는 이탈리아 리구리아주에 있는 라스페치아로 출발합니다. 라스페치아에서 숨은 보석을 찾으러 다시 친퀘테레행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친퀘테레', 의미부터 알아보았습니다. 친퀘테레는 숫자 다섯의 친퀘(Cinque)와 마을과 땅을 의미하는 테레(Terre)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다섯 마을이 그것입니다. 친퀘테레는 마을과 마을을 자동차로는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철길이나 뱃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성냥갑을 쌓아놓은 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친퀘테레 마을이다.
 마치 성냥갑을 쌓아놓은 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친퀘테레 마을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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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세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던 친퀘테레는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였습니다. 천혜의 자연에 인간의 힘이 보태어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1000여 년을 지켜 온 친퀘테레의 고색창연한 풍경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샘입니다. 진기한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그 무언가에 이끌린 사람들은 친퀘테레를 '숨겨진 보석 같은 마을'이라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친퀘테레 사람들은 어찌 보면 문명의 손길과는 거리가 먼 요새 같은 땅 위에 삶의 터전을 세웠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땅, 바다와 조화를 이뤄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움을 낳았습니다.

설렘과 기대를 안고 기차가 달립니다. 우리는 다섯 개 마을 중 두 개 마을만 구경하기로 합니다. 다섯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기에는 일정이 빠듯합니다.

절박함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은 사람들

기차는 첫 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를 통과하고, 마나롤라에 정차합니다. 호수 같은 잔잔한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마나롤라 해안가를 따라 좁은 길이 있다. 길을 따라가면 잔잔한 쪽빛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낄할 수 있다.
 마나롤라 해안가를 따라 좁은 길이 있다. 길을 따라가면 잔잔한 쪽빛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낄할 수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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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한 분이 쪽빛 파다를 보자 환호성을 지릅니다.

"와! 가슴이 뻥 뚫린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맞는 것 같네!"

아내는 깎아지른 바닷가 급경사 절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로 시선이 옮겨지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합니다.

마나롤라 마을 모습. 깎아지른 해안 급경사에 붙어있는 마을이 경이롭다.
 마나롤라 마을 모습. 깎아지른 해안 급경사에 붙어있는 마을이 경이롭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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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찌 집을 성냥갑 쌓아놓듯 저렇게 지을 수 있었을까? 달동네 같지만,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네!"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의 바다색과 기암절벽 위에 고풍스런 빨간색과 노랑빛깔로 채색된 마을은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이라 해야겠습니다. 집집마다 뿜어 나온 강렬한 색깔들이 옛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 묘한 신비감을 자아냅니다.

마나롤라 마을의 풍경. 건물 밖에 널려있는 빨래가 정감이 있다.
 마나롤라 마을의 풍경. 건물 밖에 널려있는 빨래가 정감이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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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에 좁은 길이 나있습니다. 좁은 길을 따라 걸으니 차갑지 않은 바닷바람이 눈을 씻어주고,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건물 유리창 밖으로 널려있는 빨래도 친밀감을 주며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여기저기가 장관입니다.

고개를 쳐들자 계단식 밭 또한 이색적입니다. 아찔한 경사면에 어떻게 저런 밭을 일구었을까? 척박한 밭을 일궈 팍팍한 삶을 꾸려야했을 이곳사람들의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산길 언덕 위에 세워진 포도아가씨 소녀상이다. 이곳에서는 마을과 지중해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산길 언덕 위에 세워진 포도아가씨 소녀상이다. 이곳에서는 마을과 지중해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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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따라 올라가봅니다. 시야가 딱 트인 곳에 꽤나 오래 되어 보이는 '소녀 청동상'이 보입니다. 소녀상은 손에 포도송이를 들고, 어깨에는 걸치고, 포도송이로 머리에 치장을 하였습니다. 마나롤라 사람들 삶 속에서 포도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가 있는 듯싶습니다.

마나롤라 언덕 위 포도밭이다.
 마나롤라 언덕 위 포도밭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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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야가 없는 마을에 산비탈을 개간하고, 포도를 가꿔 생업을 꾸려갔을 마나롤라 사람들. 그 험한 자연과의 싸움에 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지켜온 그들의 삶에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베르나차에서의 기도

마나롤라에서는 해안을 따라 조성된 길이 있습니다. 이른바 둘레길입니다.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지나쳐온 리오마조레까지 2km 남짓 산책길이 나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베르나차로 이동합니다.

베르나차는 마나롤라에서 기차로 5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난 마나롤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전형적인 어촌마을 냄새가 풍깁니다. 작은 포구에는 어구들과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베르나차 마을 풍경.
 베르나차 마을 풍경.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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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세계문화유산 지정 간판 옆에는 2011년 수해복구 현장사진이 있다.
 마을 입구 세계문화유산 지정 간판 옆에는 2011년 수해복구 현장사진이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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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중심지는 포구인 것 같습니다. 낮은 포구에서부터 마을이 차근차근 언덕위로 올라 지어진 느낌이 듭니다. 포구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형형색색의 건물들로 그야말로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핑크색과 노란색 파스텔 톤의 집들은 중세풍의 이국적인 멋을 풍깁니다.

칠이 벗겨진 벽도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베르나차는 2011년 10월에 있었던 홍수와 산사태로 마을이 침수되고,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마을입구에 그때 상처를 복구하는 현장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건물 벽에 칠이 벗겨지고, 허물어진 것은 그때 난 생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힘을 합쳐 옛 모습을 되살리려는 마을사람들의 노력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꼭대기에 전망대와 같은 둥근 성이 보입니다. 큰 기둥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여보, 우리 저 성에 올라가볼까요? 저기 오르면 마을이 전부 보일 것 같은데..."

우리는 꼬불꼬불 미로처럼 꼬인 언덕길에 오릅니다. 골목이 만들어진 후에 집을 짓고, 그 위에 집이 또 들어서자 또 다른 골목이 생기고... 그렇게 만들어진 골목은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가파른 곳에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돌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막다른 골목이 나옵니다. 다른 곳으로 찾아도 또 막힙니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우리는 성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맙니다.

베르나차에 있는 성당.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베르나차에 있는 성당.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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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시계탑이 보이는 성당으로 내 손을 잡아끕니다. 중세에 세워진 산타마르게리타 성당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단아해보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작고 소박해서 더 아름답습니다. 성당 안 천장이 나무가 그대로 드러난 게 특이합니다. 우리 한옥 서까래를 보는 것 같아 정이 갑니다.

아내는 두 손 모아 촛불 앞에 서서 기도합니다. 무슨 간절함이 있는지 기도가 길어집니다.

베르나차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에서 아내는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베르나차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에서 아내는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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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옛 친퀘테레 사람들이 벼랑 끝 낭떠러지지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그들만의 아름다운 삶을 지켜낸 것처럼, 저희에게 어떤 어려움에도 초연히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오늘이 2015년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 동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이탈리아, #친퀘테레, #마나롤라, #베르나차, #라스페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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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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