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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사회> 표지.
 <독선 사회> 표지.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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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전교조와 한국교총을 '양대 교원단체'로 부르면서 늘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그린다. 그런데 학교 일을 하고 학생들을 만나는 데 전교조 조합원이나 한국교총 회원이라는 사실이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학교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가 10명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소속 교사는 3명이다.

회의에서 이런저런 의견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전교조 조합원이나 한국교총 회원이어서 생긴 차이라고 보기 힘들다. 각자의 교육철학과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전교조 강령과 한국교총 헌장을 일상적으로 의식하면서 교직 생활을 하는 교사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공개된 전교조 강령과 한국교총 헌장조차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전교조와 한국교총 관계 문제의 핵심은 학교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보다 한국교총과 전교조 '지도부' 간의 정치적 헤게모니나 이념 다툼과 같은 정치 영역에 걸쳐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육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과도하게 부각되는 이념과 철학의 차이, 언론에 의해 스테레오타입처럼 그려지는 정치적·사회적 입각점의 대립 구도 등이 두 단체의 거리를 갈수록 벌린다. 교육 생태계의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진지하게 되짚어볼 지점들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독선 사회>는 이분법 프레임에 빠져 '독선'의 지배를 받는 한국 사회를 꼬집는 책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노년층과 청년세대로 양분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 이런 대립 지형도를 비판하기 위해 50가지의 개념을 빌려와 분석했다. 저자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독선에 중독되었는가.'

"우리의 적은 진보·보수 아닌 독선"

저자는 지금과 같은 '독선 사회'를,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만들었다고 본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독선"(13쪽)이라는 것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재능의 우연성을 믿는다. 재능의 우연성을 믿는다면 이념의 우연성도 믿는 게 옳다. 재능의 우연성이란 무엇인가? 성공한 사람들이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특정 이념이나 당파성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독선의 전사'로 반대편의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데 여념이 없지만, 그 사람의 이념이나 당파성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 본문 13쪽 중에서

'수꼴'이나 '좌빨'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념의 우연성'이라는 저자의 논지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 정의와 도덕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우열의 차원에서 서열을 매길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점도 공감이 간다.

저자는 '내가 옳고 정의의 편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둔 독선적 글쓰기를 10여 년간 해오다 2003년 이후부터 "'독선 사회'를 바꾸기 위한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독선'의 때가 묻은 자신이 '소통'과 '화합'을 역설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저자가 채택한 제3의 글쓰기 방식은 '너지(nudge)'였다. '너지'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독선 사회'의 문제를 직접 역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론과 개념을 통해 우리 자신의 '독선'을 돌아보게 하는 방식이다. 그가 이 책을 포함해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를 내는 이유다. 이 책은 시리즈의 4번째 결과물이다.

정치는 격돌하는 주체들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하는 기술이다. 사상이나 이념에 기반한 당파적 선명성 못지않게 현실주의 논리 역시 필요하다. 그런데 정당을 포함한 다수 정치 조직은 '1퍼센트'의 소수(강경)파들에 좌우될 때가 많다. 이른바 '1퍼센트 법칙'이다. 저자는 1퍼센트 법칙을 소개하면서 "정치 담론의 주요 의제와 내용이 강경파들에 의해 초기에 결정되면 정치가 선악 이분법의 도덕으로 변질된다"고 경고한다.

이분법이 횡행하는 한국, 확신을 의심하라

"이는 '참여'를 둘러싼 오랜 논쟁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유권자의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참여는 모두가 다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이상이지만, 전반적으로 정치 혐오가 팽배한 사회에서 '정치화된' 소수 젊은 층이 '초기 효과'를 발휘할 때에 나타나는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게 쟁점이다.

즉, 이른바 '참여 격차(participation gap)'의 문제가 한국에선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모른 척하면서 참여의 중요성과 미덕만 강조하는 일반론은 위선이거나 기만일 수 있다. 참여 격차의 문제를 외면하는 참여 예찬론자들은 서구에서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참여 격차 심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우려에 주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불평등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참여 격차를 오랜 시간 방치한다면 그로 인한 비용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 본문 264쪽 중에서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똑똑하고 확신에 찬'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 역시 그런 범주에 속할지 모른다. 정치적 성향이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면 그를 설득하는 데 공력을 들인다. 그러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싶으면 속으로 비난하거나 냉소한다.

저자는 이 책의 한결같은 메시지가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라고 정리했다. "한국 정치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과 확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16쪽)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고 한다. 증오와 배제에 기반한 이분법의 정치가 횡행하는 한국에서 소통과 타협이 매우 중요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독선 사회 :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4>(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 2015.07 / 1만5000원)


이 기사는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독선 사회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15)


태그:#독선 사회, #강준만, #이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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