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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장들이 새해 사자성어를 너나없이 내놓았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은 '이용후생'과 '선우후락'을 강조했고,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일비충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승풍파랑', 이시종 충북지사는 '사즉생충'을 내놓았다고 한다.

얼마 전 대학교수들도 2014년을 평가하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선정한 데 이어,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정본청원'을 뽑았다. 저마다 평가와 포부, 덕담을 담고 있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다짐하고 결심한다는 게 나쁠 것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이 말들은 도대체 누구를 향한 말인가. 자기 스스로를 향한 말인가, 아니면 시민을 향한 말인가. 뭔가 있어 보이지만 온 국민을 한자 까막눈으로 만들고 만다. '이용후생, 선우후락, 일비충천, 승풍파랑, 사즉생충, 지록위마' 같은 말들은 그 말이 나온 맥락을 알아야 하고, 다시 그 말을 무슨 뜻으로 했는지 알아야 한다.

'일비충천'은 중국책 <사기> '골계열전'에 나오는 말이고, '승풍파랑'은 중국 남북조시대 종각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이야 <논어>, <맹자>, <대학>, <중용> 같은 중국책을 달달 외우고 입말이고 글말이고 중국책에서 따온 말들을 섞어 썼겠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그런데도 이런 말들을 이런저런 중국 옛이야기나 글귀를 끌어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이말 저말 끌어다 없던 말을 만들어내는 속내는 분명하다.

은근히 '나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다' 하고 자랑하고 싶은 거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을 가르고 온 국민을 한자 무지렁이로 내몰겠다는 속셈도 숨었다. 재미삼아 저 말들을 뚝 떼어 주고 무슨 뜻인가 한번 물어 보시라. 한글로 읽어봐야 알 수 없는 말이고 묶음표 속 한자를 읽어야 되는데, 일테면 利用厚生, 先憂後樂, 一飛沖天, 乘風破浪, 四卽生忠, 正本淸源, 指鹿爲馬 같은 사자성어를 술술 소리내어 읽을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 그 말이 품은 뜻까지 풀어낼 사람은 몇이나 될까?

배운 사람끼리 하는 말이야 영어로 지껄이든 일본말로 떠들든 조금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그 말이 공공성을 띠는 공공언어일 때는 달라야 한다. 국어기본법 제4조에는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밝혀놓았다. 법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쉬운 말을 써야 하는 까닭은 아주 분명하다.

그 말을 듣는 사람 가운데는 많이 배운 사람도 있겠지만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수고 시장이고 법관이고 도지사고 말을 어렵게 해야 권위가 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렵고 낯선 말은 사람 사이를 가르는 데 앞장 설 뿐이다. 그런 까닭에 무슨 말이든 쉬워야 한다.

쉬운 말이라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라도 알아먹는다. 대학교수, 도지사, 시장이 하는 말을 농사꾼, 초등학생, 할머니가 다 알아듣는 그런 세상은 얼마나 평등한 세상이고 민주스런 사회이겠는가. 낯선 고사성어나 번드르한 말보다는 쉬운 말로 풀어 말해야 한다. 그게 진정으로 시민을 위하는 길이고 이 나라의 뒷날을 걱정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태그:#새해 , #사자성어, #공공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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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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