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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의 모습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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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가 너무 안 되네요. 추석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경기가 정말 안 좋은가 봐요. 삼성도 반 토막 났다는데…."

동네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저씨의 말이다. 분명 저녁 찬거리를 사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시간인데, 한산하기까지 하다. 지난 봄 개업한 칼국수집은 문 닫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결국 '임대 문의'라는 안내판을 내걸었다. 장사꾼들과 손님들이 나누는 인사는 '경기가 안 좋아 큰일이다'라는 하소연이 대부분이다.

비단 집 근처의 재래시장만 그런 것도 아니다. 최근 KBS 뉴스에는 "기대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야, 장사가 안 되어도 적당이 안 되는 게 아니고, 아예 안 돼요"라고 한탄하는 상인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런 분위기는 수치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최근 제주를 제외한 전국 외식업 경영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곳 가운데 9곳이 1년 전보다 경영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극심한 내수 침체로 영세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소비자인 서민은 서민대로 몹시 혹독한 계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이 왜 삼성 실적을 걱정하고 있는가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다. 재래시장이 문을 닫고 영세업자들이 울상을 짓는 내수시장의 몰락과 서민들이 텅텅 비어버린 주머니 때문에 최소한의 소비 여력마저 잃어버린 것이 오로지 '경기' 탓일까?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9.7% 감소한 것을 영세자영업자나 서민들이 왜 나서서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경기 침체는 세월호 때문'이라는 괴담이 휩쓸고 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런데 그 자리에 '모든 게 경기 탓이고 삼성조차 힘드니, 너희들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자리를 잡으며 다시 서민들에게 고통과 인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강요만 있을 뿐, 어떻게 하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또다시 '수출과 성장만이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구할 것'이라는 억지 논리만이 재래시장의 구석, 서민들의 밥상에 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거시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까닭에 성장과 고용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때 강력한 구조조정을 한 결과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상대적으로 충격을 적게 받았고 빠른 회복세를 보일 수 있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주가 급락·엔저 가속화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지난 두 차례 경제 위기를 예로 들었다고 한다. 또 증시 등 자본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고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기업의 실적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경제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이 같은 인식으로 산적한 경제 현안을 풀어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IMF 환란'으로 대변되는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정경유착, 그리고 정권의 무능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와 기업은 국민만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구조조정이란 미명 하에 수 만 명이 직장에서 밀려났고, 실업자가 15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국민들이 열심히 참여했던 '금 모으기 운동'은 단죄 대상이 되어야 할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었다.

대기업은 돈잔치', 서민들은 '빚잔치'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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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가 불황에 늪에 빠진 상태에서 이명박 정권이 탈출구로 삼은 건 고환율 정책이었다.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은 세계적인 불황속에서도 수출 대기업에게 사상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는 위기의 극복이 아니라 위기의 전가였다. 수출 대기업이 환율 차액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사이,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름하며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기업과 대기업은 '돈잔치', 서민들은 '빚잔치'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은 그래서 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린 1997년과 2008년 닥친 경제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환란의 책임자를 단죄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고환율과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시켜 수출 대기업에게 막대한 부를 몰아주었다. 대신 서민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고물가, 내수 침체로 아파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경제 구조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경기가 안 좋아 장사가 잘 안 된다' 말 또한 틀렸다. 수출 대기업만을 위해 설계한 경제 구조와 저임금→소비부진→내수침체로 이어지는 왜곡된 순환 고리가 상존하는 한, 경기 활성화가 서민들의 살림살이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번 삼성 등 수출 대기업의 실적 하락은 서민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미 수출 대기업들은 그동안 고환율 저임금 덕에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아 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민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경제 위기를 내세워 수출 기업·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한층 강화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움직임이다. 현재 수출 대기업의 부진은 고환율 정책에 기대 경쟁력 강화에 소홀했기 때문임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또 다시 수출을 위해서 엔저를 거론하고, 대통령과 경제장관이 나서 고환율과 저금리, 높은 주가가 경기회복의 주춧돌인양 강변하고 나서는 모양새는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 정책'만큼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들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진단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경환 경제팀은 통화량이 줄어들어 물가가 폭락하고 경기가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돈을 풀고 물가를 올려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임금 구조의 해소 없이는 오히려 경기침체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8일 정부는 '정책자금 5조원 이상을 연내 투입한다'는 긴급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설비투자 펀드 등 기업의 수요가 있는 분야, 디딤돌 대출, 대출 조건 완화 등에 집중되어 있어 여전히 '서민들에게 돈 빌려줘서 경기를 살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부동산의 띄우고, 수출 대기업을 위한 환율 정책을 펴고, 낮은 금리를 유도하는 것은 몸무게를 줄이지 않고 체중계 바늘만 거꾸로 돌리는 어리석은 다이어트나 다름없다. 이제 국민들의 혜안이 필요하다. 수출대기업의 반토막 영업이익을 보고 경제 위기를 점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서민 경제는 1997년 2008년의 경제 위기보다 더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업이 무너지고 국가의 외환 보유고가 줄어드는 것만 경제 위기라고 할 수 없다. 높은 자살률, 삶의 질 저하, 서민들의 빚만 늘리는 경제구조….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에 경제위기가 찾아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99%가 1%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던 2011년 미국 월가 시위를 기억하는가. 또 다시 우리를 위협하는 경제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정부와 경제 당국자만의 몫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태그:#최경환, #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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