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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에서 8명의 감리교 신학대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물으며 기습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바로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석방됐습니다. 기습시위에 참가한 감신대 신학과 4학년 이학열씨가 그동안의 소회를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실시'와 '무능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대학생들의 기습시위가 시작되자 인근에 있던 경찰들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 대학생 기습시위, 쏜살같이 달려오는 경찰들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실시'와 '무능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대학생들의 기습시위가 시작되자 인근에 있던 경찰들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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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습니다. 기억을 거슬러 톺아보아도 그날처럼 무거운 어버이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일이 지겨워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습니다. 바로 휴대폰 버튼을 누르고 시간을 확인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5월 8일 오전 7시, 내 인생에 가장 무거웠던 어버이날. 거울 안에 있는 초췌한 얼굴을 쓰다듬고 다시 휴대폰을 들고, 아버지와 어머니께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뭐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나마 저장된 메시지라도 보려 했지만, 경찰이 수사를 목적으로 압수해 볼 수가 없네요. 그래도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억지로 글자들을 입력해서라도 오늘의 불효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전송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일어나 수선을 떨던 친구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형, 일어났어?"
"어, 아 근데 너 부모님한테 뭐라고 할 거냐?"
"…몰라, 나도. 빨리 씻어."

우리 신학생은 대개 부모님들이 목사님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의 자녀들은 교인들의 구설수에 쉽게 오릅니다. 8명 중 대부분의 친구들은 부모님들의 목회에 누라도 될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서로 한마디도 입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담임목사 아들이 운동권이라는 구설수, 목사 아들이 신학교 가서 빨갱이 되었다는 구설수, 저게 무슨 신학생이냐, 목사님, 교회 망신이나 준다는 구설수. 친구들은 그런 구설수를 목으로 꾸역꾸역 삼켰습니다.

8명 중, 부모님이 목사님이 아닌 친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연줄도 없고, 인맥도 없어 앞으로 목사가 되어도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까를 고민합니다. 이런 '빨갱.이' 짓 하면, 전도사로라도 부르지 않겠지. 학비를 지원해줄 수 있는 규모의 교회는 꿈도 꾸지도 못하겠지. 공동체라도 만들까? 공동적금통장이라도 만들어서, 평생 우리끼리 살까?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이런 친구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도 역시, 내일을 걱정하는 대학생 중 하나입니다.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시민들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렇게 아픈데,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 걸까요?"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실시'와 '무능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 사지가 들려 연행되는 신학대생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실시'와 '무능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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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입학하고 2년 차 즈음,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동생 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놀라 계단이 있는 복도로 뛰쳐나갔습니다.

"형,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동생 놈이 붙잡은 수화기에서 벌벌 떨리는 소리가 제 휴대폰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어렸을 적 아버지를 여의고, 편부모 아래에서 신앙을 통해 성장한 친구였습니다. 성경도 기도도 열심히 했죠. 늘 저를 부끄럽게 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친구에게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지병이 있으셨으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으셨다고, 결국 그 병으로 소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새워주던 날 밤, 함께했던 친구로부터 동아리 동생의 소식을 한 가지 더 듣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가난 때문에 동기들의 식권을 빌리기도 하고, 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고.

장례가 정리가 되고 시간이 좀 흘러 선배들과 함께 그 동생을 위로도 할 겸,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돌아가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너 신학 계속 할 수 있겠어?"

동생은 앞에 있던 술잔을 비우고 답했습니다.

"형님, 제가 이렇게 아픈데,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 걸까요?"

이 친구는 대한문으로, 밀양으로, 성소수자들의 모임으로 갔습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마시고 울고 떠들었습니다. 학교보다는 밖에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이 동생을 벗 삼아 함께했습니다. 노숙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쌍용차 희생자들 분향소에서 같이 울고, 용산참사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이 땅의 아픔들을 목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아픔들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명, 한 명 친구들을 만났고 결국 지난 5월 8일에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같이 올라가게 될 동지들을 얻었습니다.

사실, 8명의 인원들 중 지난 대선에서의 국가기관 개입에 분노하면서, 감신국정원사태대책모임을 꾸렸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모임들을 준비하고 활동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민중의 목소리는 결코 중심정치 영역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다른 신학교들과 연대하는 자리도 만들고, 학내에서 교수님들과 신학적으로 이를 규탄할 정당성도 마련하는 자리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성공회성당 앞에서 선언문도 낭독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노무현 NLL 발언',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 '진보당 정당해산청구' 등 불법선거로 존립 자체가 불안한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더군요. 촛불은 정권의 정치 놀음 앞에 하나둘씩 꺼져갔습니다. 우린, 그 광경을 목격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었습니다.

작은 돌멩이가 되어 침묵하는 호수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면

세월호 참사 25일째인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학생,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이 열렸다.
▲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 세월호 참사 25일째인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학생,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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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뉴스 보도들을 지켜봤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언론의 부족함은 굳이 누군가의 설명이 없어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아이들을 두고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에 대하여 누군가의 선동이 없어도 분노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매체를 통해 전달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는 대한민국의 기업, 직업 소명의식도 돈으로 바꿔먹은 세월호 선원들의 윤리의식, 이를 관례적인 감찰로 대충 넘겼던 정부부처들! 그리고 결국 가라앉는 배 앞에서 무능하고 정치공학에 머리들을 굴렸던 정부에게, 그리고 '기레기' 기자들과 언론들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들 몇 명과 중간고사를 마치고, 안산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죄인처럼 서 있는 유가족들의 표정 앞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많은 영정사진들 앞에서 바보처럼,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눈물의 눈물,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몸과 마음이 지쳐 뻗어버렸습니다.

학교 기도회에서도 울고, 촛불집회에서 영상을 보다 또 하염없이 울고, 처량하게 서 있는 서로의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침묵시위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습니다. 촛불들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8명은 이 촛불들이 언젠가는 꺼진다는 사실을 경험해봤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이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아주 조그마한 돌멩이가 되어 저 침묵하는 호수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부모에게 불효를, 우리의 내일에게 상처를 주기로 했습니다. 삶을 위한 계산기들은 이미 다 멈춰버렸고, 예수의 삶만 우리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가 유대 땅에서 외쳤던 그 망상과 헛된 꿈들을 좇아 그렇게 우리는 헛된 꿈과 망상을 등에 짊어지고 세종대왕상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침묵 투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시민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어머니, 죄송합니다.


태그:#세월호, #세종대왕상, #기습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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