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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27일 오후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2차 명단을 공개한 뒤 취재 영상을 내보냈다.
 <뉴스타파>가 27일 오후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2차 명단을 공개한 뒤 취재 영상을 내보냈다.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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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장님과는 무관합니다."
"회사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만든 겁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재벌대기업 전·현직 임원들의 해명은 한결 같았다. '편법'은 인정하면서도 재벌총수나 회사와 연결고리를 끊는 데 급급한 것이다.

재벌총수 일가와 대기업들의 역외 탈세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뉴스타파>와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는 지난 22일에 이어 27일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2차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재벌총수인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을 비롯해 한화, SK, 대우그룹 등 대기업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개인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페이퍼컴퍼니 설립 당시엔 별다른자산이 없는 봉급쟁이 임직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세운 회사가 총수일가 비자금 관리나 기업 탈세에 이용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 이번 명단에 오른 SK, 한화그룹 등은 재벌총수 비자금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진해운 최대주주 포함 눈길... 지주회사 전환 앞두고 설립

그나마 한진해운처럼 총수 실체가 드러난 건 예외적인 경우다. 앞서 1차 명단에도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동생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부인인 이영학씨가 포함됐지만 회사와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확인하진 못했다.

연 매출 규모가 10조 원인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이면서도 2006년 조수호 전 회장(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동생)이 숨진 뒤 부인 최은영 회장이 실질적 경영을 해왔다. 회사 재무통인 조용민 전 한진해운 대표가 최 회장과 공동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시점은 2008년 12월 회장 취임 직전으로, 1년 뒤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한진해운 쪽은 "최 회장이 회사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만들었고 2011년 11월 조용민 대표가 사임할 때 주주에서 빠졌다"고 해명했지만 <뉴스타파>는 기업 분할 시 조세 회피 목적으로 유령회사를 세웠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대표는 "(회사를 분할할 때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면서 "기업 구조조정이든 인수 합병이든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굉장히 많이 왔다 갔다 한다"고 지적했다.

봉급쟁이가 유령회사 만들고 호화주택 구입까지?

지난주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을 폭로했던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2차 명단을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사무실 앞에서 최경영 기자(전 KBS)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조세피난처 2차 명단 공개에 분주한 뉴스타파 지난주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을 폭로했던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2차 명단을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사무실 앞에서 최경영 기자(전 KBS)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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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대기업 전·현직 임원들이 소유한 나머지 페이퍼컴퍼니들 역시 실질적으로 기업총수나 회사 비자금 관리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뉴스타파> 취재 과정에서도 처음엔 대부분 회사 설립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하다 뒤늦게 설립 사실을 인정하곤 회사와 재벌총수 관련성을 부인하는 데 급급했다.

한화그룹이 대표적인 경우다.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은 한화그룹 일본법인인 한화재팬 직원으로 근무하던 지난 1996년 2월 19일 조세피난처인 쿡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그 뒤 96년과 97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고급 아파트 두 채를 사들인 뒤 2002년 한화재팬에 '235만 달러(약 26억 원)'에 판 것으로 나타났다.(<뉴스타파>는 235만 달러가 차익이라고 밝혔지만 한화 쪽은 판매대금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당시 월급쟁이가 수십억 원짜리 주택을 살만한 돈이 있었느냐는 얘기다. 한화그룹도 애초 황 사장이 개인적으로 만든 회사라고 부인하다 뒤늦게 "한화재팬에서 만든 페이퍼컴퍼니"라고 인정했다. 다만 "실제 소유주가 김승연 회장은 아니다"라며 총수와 관련성을 극구 부인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는 절세 혹은 탈세, 이혼 소송에 따른 위자료 부담의 회피, 기업 파산의 채무 부담 회피를 위해 자산을 숨기고 보호하는 상품"이라면서 "탈세, 정당한 채무 부담 회피 동기를 가지고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호 전 SK증권 부회장이 지난 96년 1월 만든 페이퍼컴퍼니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되다. 당사자와 SK그룹 모두 조 전 부회장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만들었고 회사와 무관하다가 밝혔지만 96년 당시 SK케미칼 부사장 수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만들 만한 수준인지는 의문이다. 

대우그룹 이덕규 전 대우인터내셔널 이사와 유춘식 전 대우폴란드차 사장 등 역시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뉴스타파> 첫 취재 때 "전세 집과 원룸 하나가 전부"라던 유충식 전 사장은 "벤처캐피털 투자를 위해 6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말을 바꾸면서도 "김우중 회장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고, 이덕규 전 이사는 "회사 차원에서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대우인터내셔널을 이를 부인하는 등 말이 계속 엇갈렸다. 
    
'합법적 절세' 가장한 탈세 의혹... 명단 포함 기업 세무조사 촉구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대기업과 부유층들은 '합법적 절세'를 내세워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탈세나 '돈세탁', 자산 은닉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글로벌 시민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는 197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한국에서 외국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7790억 달러(약 800조 원)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재벌닷컴>은 지난 26일 자산 1조 원 이상 국내 주요 그룹이 버진아일랜드 등 9개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법인은 125개이고 자산 총액이 5조6903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법인 숫자는 SK그룹 63개, 롯데그룹 12개 순이었고 한화그룹을 비롯해 삼성그룹, CJ그룹, 한진그룹 등 재벌기업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자산 규모로는 한화가 총 1조682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SK그룹이 1조3267억 원, 대우조선해양이 7849억 원, 포스코그룹이 4660억 원, 삼성그룹 3536억 원 순이었다.

참여연대는 이날 발표 직후 "이번 2차 명단에 오른 재계 인사들에 대해 국세청은 이들이 탈세탈루 혐의와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기필코 밝혀내 국민에게 그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촉구하는 한편, 역외 탈세 방지와 관련 제도 개선 등 정부의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태그:#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뉴스타파, #조세회피처, #조세도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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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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