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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에서 학록서당이 먼저 보이고, 더 들어가면 산운마을 전체가 나타나고, 금성산(왼쪽)과 비봉산이 병풍처럼 둘렀다.
▲ 산운마을 입구 도로변에서 학록서당이 먼저 보이고, 더 들어가면 산운마을 전체가 나타나고, 금성산(왼쪽)과 비봉산이 병풍처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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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란 '의식주, 생업, 교통, 운수, 통신, 교역, 사회생활, 신앙, 민간 관습, 예능, 오락, 유희 등으로서 중요한 것'을 말한다. 민속(民俗)은 '민간 생활과 결부된 신앙, 습관, 풍속, 전설, 기술, 전승(傳承) 문화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민(民)이 '백성'이니 민간(民間)은 '백성들 사이'이고, 따라서 민간생활은 임금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의미한다.

풀이를 종합하면, 민속은 곧 의식주(衣食住), 신앙, 오락 등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다. 그러므로 민속자료와 보물은 다르다. 보물은 '건물, 서적, 회화, 조각, 공예품, 무구(巫具)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 것들은 보통사람의 삶과 별로 관계가 없다. 민속자료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보물은 주로 '예술'에 해당되는 것들인 까닭이다.

이런 마을에 살고 싶지 않습니까?
▲ 산운마을 골목 풍경 이런 마을에 살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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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민속자료와 '중요'민속자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민속자료는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가 지정하지만, 중요민속자료는 민속자료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으로 국가가 지정한다. 중요 민속자료는 곧 민속자료 중에서 '보물급'을 가리키는 셈이다.

이렇게 분류하는 방식은 '자연'의 '기념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물, 식물, 광물 등 자연의 사물들 중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을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가 '기념물'로 지정하는데, 그것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가 지정하여 '천연 기념물'이라 따로 이름을 붙인다.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 있는 소우당이란 집이 2007년 10월 1일 국가가 지정하는 중요민속자료로 뽑혔다. 소우당이 나라 안에 남아 있는 오래된 집 중에서도 국가가 나서서 지켜야 할 만큼 특히 가치가 있는 가옥(家屋)이라는 뜻이다. 소우당을 찾아가 집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읽어본다.

의성 소우당
중요민속자료 237호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73-1

이 건물은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고,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 지었다고 전한다.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은 조선 명종 연간에 영천 이씨가 처음 고향에 들어와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ᄀ'형의 안채와 'ᄂ'자 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ᄆ'자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남측 전면에는 'ᅳ'자 형의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는 내측간이 있다. 안채, 사랑채 일곽(一郭)의 서쪽으로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원림(園林)을 조성하였다. 원림 중앙부에는 안사랑채 또는 별당(別堂)으로 불리는 건물을 배치하고, 그 남쪽으로는 연못과 수림(樹林) 및 보도(步道)를 조성하여 정원으로 꾸몄다.

19세기 상류 가옥의 멋과 함께 별서(別墅)건축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그냥 별장이 아니라 농민으로 일도 하면서 거주하는 별서주택 최고의 봉우리인 소우당.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이다.
▲ 소우당 그냥 별장이 아니라 농민으로 일도 하면서 거주하는 별서주택 최고의 봉우리인 소우당.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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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주하는 보통의 집[家屋]은 그냥 '집'이라 부른다. 가족이 살면서 생활을 하는 '집' 아닌, 가끔 쉬기 위해서 따로[別] 집[莊]을 더 지으면 그 집은 별장(別莊)이라 부른다. 별장에서는 그저 쉬기만 할 뿐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거나 힘든 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별서(別墅)건축은 별장과는 다르다. 사람이 실제로 사는 집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정원도 있고 연못도 조성되어 있는 등 마치 별장처럼 여겨지겠지만, 직접 농사도 짓고 다른 노동도 하면서 사는 집이기 때문에 별장은 아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별장처럼 지은 농민의 집' 정도라고나 할까.

이 집은 19세기 초에 건축되었으니 200년 안팎의 역사를 지녔다. 문화재는 100년 이상 된 것을 말하고, 아직 50년에서 100년 사이의 것은 등록문화재라고 하니, 소우당은 일단 시간상으로는 문화재로 뽑힐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이 집은 그냥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가 지정하는 '지방'민속자료도 아닌 '중요'민속자료로 뽑혔다. 이 집은 어째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일까? 안내판은, 소우당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까닭을 잘 설명해준다. 마지막 문장이 그것이다. '19세기 상류 가옥의 멋과 함께 별서(別墅)건축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운곡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운곡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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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은 19세기 상류층 가옥의 '멋'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하고 있다. 답사자가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조목조목 밝혀두었다. 집채들의 배치, 담장의 모습, 연못 조성, 숲과 길 만들기 등 해설만 읽어도 이 집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저절로 헤아려진다. 

소우당은 금성산 아래 '산운 마을'에 있다. 이 마을에는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소우당 말고도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자료인 운곡당과 점우당 등 전통가옥이 30여 채나 더 있다. 우리 민족의 아늑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고운 담장 사이를 걸으면 마치 조선 시대로 들어간 듯한 절묘한 기분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산운마을의 기와지붕들 위로는 의성 제일의 명산인 금성산이 울타리처럼 당당하게 둘러져 있다. 마을 골목길에서 바라보면, 금성산 푸른 봉우리를 지붕 위에 '척' 얹고 있는 멋진 기와집들은 마치, 고운 한복을 맵시 있게 차려입은 여인이 머리에 청자 물동이를 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마을 안을 한 바퀴 둘러본 사람에게는 금성산 바로 남쪽 얕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이 산운(山雲)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은 까닭에 대해 따로 설명을 곁들일 필요도 없다.

점우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산운마을의 집들은 하나같이 금성산과 비봉산을 병풍처럼 배경으로 둘렀다.
 점우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산운마을의 집들은 하나같이 금성산과 비봉산을 병풍처럼 배경으로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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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의성여행, #소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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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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