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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아이들.
 피자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아이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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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물이 나오는 핀 가든을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에서 엉뚱한 곳에서 하차했습니다. 카샨 시내를 오랫동안 뱅글뱅글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문이 열린 가게마다 다 들어가 길을 물었지만 길은 여전히 꼬여들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장소를 계속 반복해서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점심을 한참 넘긴 다음이라 식사부터 하고 차근차근 길을 찾아야할 것 같아 가까운 피자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지하로 향한 계단을 내려가자 다소 어두운 조명의 자그마한 피자가게가 나왔습니다. 동네 청년 서너 명이 앉아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면서 우릴 보고 비실비실 웃었습니다. 이란에서 가장 활기차고 호기심 많은 집단입니다. 가장 열심히 멋을 부리는 사람들 또한 청년이고, 이들은 외국 여자들에 대해 호기심과 장난기도 많았습니다. 가끔 그 호기심이 지나쳐 이상한 말을 하는 식의 만용을 부리기도 하지만 사춘기 소년들의 객기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소년들의 강렬한 호기심을 받으며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왔습니다. 음식점 주인 보다는 공무원이 어울릴 정도로 단정하고 빈 틈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게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이란에서 주문할 수 있는 피자에는 버섯피자와 소시지 피자, 그리고 채소 피자와 양고기 피자가 있습니다. 양고기를 못 먹는 우리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야채피자입니다. 소시지도 양고기 소시지라 입맛에 안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영어에서는 거의 문맹수준이라 '비지터블 피자'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 쳐 보았자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못 알아듣는 사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종이에다 버섯을 그리고, 피망과 토마토를 그리고, 양을 그리고는 엑스 표를 해서 주었습니다. 그제야 알아듣는 기색인데 나중에 나온 걸 보니 알아들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야채만 원했는데 소시지 피자가 나왔습니다.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배가 고프니까 먹었습니다.

배를 채울 요량으로 피자를 꾸역꾸역 먹고 있을 때 차도르를 두른 할머니가 기다란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왔습니다. 난 직감적으로 동냥을 나온 할머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차도르를 하고 있었는데 단지 지팡이를 들었다는 것 때문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뇌는 과거의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열심히 분석하더니 '걸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많이 보았던 걸인들과 비슷한 구석을 발견했던 모양입니다. 과거 지하철에서 봤던 걸인의 표정과 그녀의 표정에서 아마도 비슷한 구석을 찾아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제스처에서 비슷한 구석을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의 뇌는 그녀를 걸인으로 결론지었습니다.

피자가게서 두툼한 피자를 맛있게 먹는 작은 애.
 피자가게서 두툼한 피자를 맛있게 먹는 작은 애.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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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할머니를 발견하자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때 가능한 시나리오가, 주인이  할머니를 얼른 밖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구걸하는 할머니 때문에 자신의 영업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또는 걸인을 귀찮아하는 손님들에 대한 막중한 의무감에서 할머니를 밖으로 내보낸다고 상상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금방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이런 유사한 풍경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도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쉼터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할 한 누추한 할머니가 잘못 들어와 사람들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 식당을 책임지던 사람은 소리를 지르면서 그 할머니를 내쫓았습니다. 마치 불결한 떠돌이 개를 밖으로 내몰듯. 거기에는 어떤 예의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자비심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난 이런 풍경에 익숙해 있었던 것입니다.

나 또한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귀찮은 것, 나와 다른 걸 포용할 여유가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피자가게 주인이 보여주는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종교를 가진다는 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꼈습니다. 종교를 가지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종교를 통해 보다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인이라고 하면서 이기심으로 살아왔던 나 자신을 많이 반성했습니다.

피자가게 주인은 할머니를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습니다.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에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우리를 대할 때나 식당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결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불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를 대할 때 보여준 세심함이나 따뜻함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주문한 콜라와 샌드위치를 먹는 걸 보면서 알았습니다. 봉지 하나를 푸는데 콜라병 뚜껑을 열고 빨대를 꽂는데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할머니가 다 먹고 돈을 지불하려고 하자 주인은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불쌍한 사람에 대한 베풂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베풂이 참으로 공손했습니다. 걸인들한텐 돈 천원 던져주는 것하고 차원이 달랐습니다. 마치 귀한 손님에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는 태도로 할머니에게 콜라와 햄버거를 선물했습니다.

할머니와 피자가게 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톨스토이가 쓴 '구두장이 마틴' 이라는 동화를 떠올렸습니다. '구두장이 마틴'에서 신은 청소부와 아이를 안은 불쌍한 여자, 사과를 훔친 사내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마틴은 이들을 정성껏 대했습니다. 물론 신인지 모르고 그리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기다리는 신이었습니다. 만약 마틴이 이 가난한 사람들을 박대했다면 그는 신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을 만나려면 먼저 불쌍한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 수 있는 평등심이 자리 잡아야 함을 보여주는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피자가게 주인은 신을 만날 준비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이란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이란 사회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참 잘 된 나라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자선냄비가 어느 곳이던 배치돼 있습니다. 기차역에도 있고, 은행 앞에도, 우체국에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이던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돈으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에서 걸인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피자가게서 만났던 할머니도 걸인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불쌍한 할머니였던 것 같습니다.


태그:#피자가게, #카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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