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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샨 알라비 거리에 있는 전통가옥 칸 보루제르디.
 카샨 알라비 거리에 있는 전통가옥 칸 보루제르디.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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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보루제르디 전통가옥의 발코니에서 이란 부잣집 딸처럼 폼을 잡은 큰 애.
 칸 보루제르디 전통가옥의 발코니에서 이란 부잣집 딸처럼 폼을 잡은 큰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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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샨에서 구경할 수 있는 전통 가옥은 모두 네 집입니다. 19세기 초에 개인 주거용으로 지어진 칸 보루제르디, 그리고 부유한 카펫 상인에 의해 1834년에 지어진 칸 타바타베이, 카샨 콰자르 시대의 강력한 지배자 아그하아메리의 집인 칸 아메리하, 마지막으로 칸 아바씬이 그것입니다.

이들 가옥은 카샨 시내 남쪽 알라비 거리 주변에 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있어 한꺼번에 구경하기에는 좋은데, 한 번에 다 구경하다보니 어느 게 어느 것인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우린 오늘 이들 가옥 중 칸 타바타베이와 칸 보루제르디를 구경했습니다.

숙소에서 알라비 거리를 향해 걸었습니다. 좀 일찍 서둘러서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숙소를 나왔습니다. 학교로 가는 소년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란 아이들은 정말 귀엽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나 <천국의 아이들> 시리즈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순수하고 착합니다. 그 영화에서 봤던 아이들처럼 도로에서 마주친 아이들도 표정들이 모두 귀엽고 착해 보였습니다.

걷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카샨이라는 작은 도시의 아침을 구경하는 일은 신선했습니다. 햇볕은 따뜻했으며,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웠습니다. 도로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도시의 분주함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고 조용하게 흘러갈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 것도 같았습니다. 아줌마인 나의 삶 또한 크게 분주할 건 없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 만나는 아침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마침내 칸 타바타베이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었습니다. 가격이 매우 저렴했습니다. 이란은 전반적으로 생활물가가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교통비와 음식 값이 특히 쌌습니다. 관광지의 입장료도 우리 돈으로 200원 정도 하는 수준이니 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란은 적은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칸 타바타베이.집이라기 보다는  비싼 돈을 지불한 예술품에 가까웠다.
 칸 타바타베이.집이라기 보다는 비싼 돈을 지불한 예술품에 가까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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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타바타베이는 부유한 카펫 상인이었던 세이예드 자파르 타바타베이에 의해 1834년에 지어졌습니다. 돌 위에 새겨진 정밀하고 뚜렷한 디자인과 정교한 치장벽토세공, 화려한 거울과 색깔 입혀진 유리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성껏 지은 집들, 예를 들면 사찰이라던가 궁궐 등의 옛 건물들은 일반적으로 날렵한 기와와 단청을 하였습니다. 이런 것처럼 이란에서는 좀 잘 지은 건물들은 대체로 유리에 색깔을 입힌 스테인드 글라스를 했고, 벽에는 양각을 했고, 알리카푸 궁전처럼 벽화를 그린 건물도 있고, 추상적인 무늬의 둥근 천장을 특징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칸 타바타베이도 이런 이란 건축의 특징을 반영한 저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돈이 많이 들어간 집이었습니다.

칸 타바타베이는 규모 면에서도 어마어마했습니다. 방은 40개가 넘고 문도 무려 200여 개에 달하는 대저택입니다. 정원도 몇 개나 됐습니다. 정방형의 수영장 스타일의 연못은 겨울이라 그런지 별다른 감흥이 없고, 나무들도 잎을 다 떨어뜨린 다음이라 정원에서는 아름다움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정작 멋진 풍경은 발코니에 있었습니다. 큰 애가 발코니에 서있는 모습을 정원에서 올려다보면서 찍었는데 중세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습니다. 성주의 딸이 백성들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공간, 발코니는 특별한 낭만을 가진 공간이었습니다. 다른 여행자들도 너도나도 모두 발코니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발코니가 가진 매력에 푹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칸 타바타베이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안에 찻집도 있고 선물집도 있고 책방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집에서 파란 구슬을 샀습니다. 이스파한의 바자르에서도 샀던 구슬인데 이곳에서 파는 구슬은 더 정교하고 세련된 모양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격은 더 비쌌습니다. 선물가게서는 엽서도 팔고,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특이하게 인디언 의상 같은 것도 팔고 있었습니다.

칸 타바타베이를 나와서 다음으로 들린 곳은 칸 보루제르디입니다. 19세기 초에 개인 주거용으로 지어진 칸 보루제르디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은 여름과 겨울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집은 수공예품을 팔던 부자 상인의 집이었다는데 화려한 장식과 세밀한 조각이 특징이었습니다.

집 주인은 칸 부루제르디를 짓기 위해 석공, 화가, 유리 세공업자, 조각가 등 150여 명의 각종 건축 기술자를 동원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8년 만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생활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운 집이었습니다. 이 집에서 삶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냥 보여주기 위해 지어진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성 없이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솔직히 큰 감동은 없었습니다. 천하의 절경이라는 풍경도 삶의 흔적이 보여야, 그러니까 집이나 사람의 모습과 어우러져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처럼 이 집에서는 정말 조금도 삶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죽헌과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죽헌은 부잣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집인데, 소박함과 정갈함, 그리고 삶의 흔적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오죽헌에 살았던 사람의 성품이 느껴지는 집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상의 흔적이 느껴졌을 때 집은 생명력과 역사를 갖게 되는데 그냥 무작정 예쁘기만 한 집은 박제된 동물처럼 건조함만이 느껴집니다.

전통가옥을 구경한 후 우리가 들린 곳은 술탄미르 하메르 하맘입니다. 이란식 목욕탕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인데 지금은 그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는 찻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찻집에 들어섰을 때 손님은 아무도 없고 주인 여자 혼자 있었습니다. 낯선 여행자에게 특별한 호기심도 보이지 않았고,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식의 무심한 태도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찻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카샨의 부잣집 전통가옥 구경은 의무감에서 비롯된 여행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여행 스케줄이 관광지를 중심으로 잡히다 보니 의무감에서 해야 했던 여행입니다. 솔직히 부잣집 구경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기가 됐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집의 역할이 무엇일까, 구태여 비싼 집을 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살아야 하나, 식의 생각들을 주절주절 했던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란 여행은 지난 2009년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카샨, #칸 보루제르디, #칸 타바타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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