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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느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모교인 '○○초등학교'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학교도 '분명히' 졸업했지만 내 모교인 '○○중학교'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폐교됐기 때문이다. 두 학교가 언제 폐교됐는지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는다(초등학교는 1980년대 후반, 중학교는 1990년대 초반). 초등학교는 풀만 무성하고, 중학교는 중소기업체가 들어섰다. 두 학교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해마다 총동문회를 하지만 '모교 운동장'에서 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중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니 모두 참석해 달라는 안내장을 받는다. 총동문회를 하면 으레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후원을 해달"라고 하지만 나는 지난 20년 동안 후원금을 요청받은 적이 없다. 물론 요청한다고 지원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모교 없는 총동문회 정말 씁쓸하고 아다.

"어차피 다른 대학 가서 천대 받을 바에는 여기서 졸업하고 싶다"

11월 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명신대와 성화대학에 대해 폐쇄 방침을 확정했다. 명신대는 전남 순천에 소재한 학교로 지난 2000년에 설립된 대학이다. 이 대학은 6개 단과대학·14개 학부를 갖고 있는 종합대학으로 학부생 563명과 대학원생 74명이 재학 중이다. 성화대학은 1997년 개교한, 옛날로 치면 2년제 전문대학이다. 이 학교는 5개 계열·39개 학과가 있으며 총 2638명의 학생이 재학 중으로 작은 대학이 아니다.

명신대과 성화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모교가 사라지게 됐다. 폐교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학생들은 폐교 되면서 다른 초등학교 두 군데로 흩어졌다. 후배들은 '어제까지 같은 교실에서 뛰놀던 동무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울었다고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학교가 폐교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배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풀만 무성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볼 때마다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명신대와 성화대학 재학생들은 학교가 폐쇄되면 개개인의 특성·통학거리·인근 대학의 수용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근 대학에 정원 외로 편입된다고 한다. 하지만 편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성화대학 총학생회장 안흥진(24)씨는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어차피 다른 대학 가서 천대 받을 바에는 여기서 졸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씨는 "왜 재단 측의 비리와 잘못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학교 폐쇄 조치로 재학생과 졸업 예정자 모두 혼란스러워한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학생들은 잘못이 없다. 재단이 문제다. 이들 학교는 ▲친인척 중심의 학사 운영 ▲자료 허위제출 ▲교비횡령 ▲입학정원 초과모집 따위를 일삼다가 '퇴출'이라는 비극을 맞은 것이다. 재단과 학교가 모든 잘못을 저질러 놓고,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이들 학생들이 설혹 다른 대학에 편입을 하더라도, '부실대학과 퇴출대학 출신'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듣는다면 상처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명문대생 "대학을 거부합니다"

명신대와 성화대학 퇴출을 보면서 어느 명문대 학생이 스스로 학교를 그만 둔 일들이 기억난다. 지난해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문에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를 쓴 이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였다. 

김씨는 대자보에서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며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며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고 글을 맺었다(관련기사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마이뉴스>).

그리고 1년 반 후인 지난 10월 13일, 서울대 학생회관 게시판에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적은 이는 '공현', 본명은 유윤종씨다. 내용은 이랬다.

"쓰다 보니 거창해졌지만, 그냥 서울대 별로 오고 싶지 않았던, 학교도 잘 나오지도 않았던 웬 놈이,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그만둔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 저 혼자 튀어보겠다고 이러는 건 아닙니다. 올해 수능철에 맞춰서, 고3 또는 19살인 청소년들 중 대학을 안 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스무 살 이상의, 대학을 안 갔었거나 그만둔 사람들이 <대학거부선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도 거기에 같이 하는 활동의 일환이고, 그걸 알리려는 목적입니다." (출처 : "서울대 자퇴 선언은 세상에 질문 던지려는 것" <오마이뉴스>)

유씨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등수 하나, 등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싫었어요. 가장 불행한 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흥미가 있어서, 더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해 성적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앎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을 위해 공부하는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니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은 대학등록금 때문에 절망할 뿐만 아니라 대학 본질마저 상실한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절망하고, 결국 '대학을 거부합니다'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부실대학 퇴출과 명문대생 자퇴, 원인 제공자 책임지지 않아

그래도 김예슬씨와 유윤종씨는 이 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마음에 그리는 이른바 명문대를 다니다 자퇴했다. 그래서 언론 관심을 받았다. 대한민국 학벌 문화가 규정한 '삼류대' 학생들이 저런 대자보를 붙이면서 자퇴할 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할지라도 우리 사회는 별관심이 없이 넘어갈 것이다.

11월 10일은 수학능력시험일이다. 언론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서울대학 ○○학과는 몇 점, 수도권 소재 대학은 몇 점, 그 외 대학은 몇 점은 돼야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하기 바쁠 것이다. 12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내용을 공부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명문대와 비명문대, 그리고 삼류대학이라는 등급으로 구분돼 20대를 열어갈 것이다.

수능을 치르는 우리 젊은이들이 부실대학 퇴출과 대학을 거부하는 비극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이런 현상을 양산한 이들이 학생들을 책임지는 일이다. 하지만 진정 퇴출 당할 자는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다. 또한 자본에 영혼을 팔아 스스로 물러나야 할 이들은 대학을 거부하는 젊은이들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통곡할 일이다. 지난해 김예슬씨가 고려대 자퇴를 선언하자 한 누리꾼 남긴 글이다.

"문제는 있지만 답은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 같다. 바꾸려고 외치고 거기에 동조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힘없는 일개 집단의 작은 목소리일 뿐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암울한 현실. 이것이 지금 우리 한국의 청년들의 미래이자, 미래의 부모가 될 이들이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아픈 현실의 한 모습이다" (야후·<독점생방송 Yahoo Show> 중)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실대학, #명문대 자퇴,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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