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거문도에서 한시간 가량을 나가는 침선 낚시배 선상에 낚시대가 거치대에 꽂혀있다.
 거문도에서 한시간 가량을 나가는 침선 낚시배 선상에 낚시대가 거치대에 꽂혀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그 어느해보다 불손한 일기는 바다 날씨도 예외가 아니다.

한겨울에 펼쳐지던 삼한사온은 싱그런 여름을 앞두고 있는 오월의 날씨에도 가끔 이어지고 있다. 나에게 바다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가장 많은 곳이다. 아버지는 지천명의 나이에 7남매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함께 고기잡이의 추억이 묻어 있는 바다 바다 애(愛)바다. 내가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다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7남매를 키우시던 아버지의 일터이자 인생의 무대였다.

25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섬으로 귀향해 8년째다. 섬 생활을 하는 이웃삼촌은 행사철이면 바쁜 형님의 일손을 돕는다. 원활한 행사를 위해 보이지 않게 행사 장소를 세팅해야 하는 이들은 밤낮이 없다. 어느 정도 행사가 잦아들 무렵 형님의 제안으로 선상낚시를 떠나게 되었다. 

5월 어느날 드디어 기다리던 출조날이 돌아왔다. 김밥과 계란말이 등 낚시장비를 챙기고 돌산 군내리에 도착하니 오전 1시 30분이다. 출항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 신이 난 일행들은 연방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먼바다로 떠나는 설렘과 잠시 일상을 탈출해서 오는 해방감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뒤이어 멀리 충청도와 시내에서 예약된 분들이 합류해 출항계를 작성한다. 드디어 출항이다.

프린스호, 침선포인트를 찾아 거문도권으로 출항!

물때는 5물이다. 해상날씨는 일기예보와 맞아 떨어져 바람도 잦고 파고도 잔잔해 모든 기상조건은 최상이다. 일행들이 챙겨온 낚시쿨러가 조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한다. 옛 조사님들 말씀에 낚시바구니가 크면 고기를 잡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다. 준비가 너무 완벽하면 허탕을 친 경우가 많아서 생긴 얘기인데 오늘은 이 불문을 깰 수 있을까?

조사들이 거문도권에서 배가 좌초되어 있는 곳을 찾아 침선 낚시를 펼치고 있다.
 조사들이 거문도권에서 배가 좌초되어 있는 곳을 찾아 침선 낚시를 펼치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오늘 우리가 떠난 먼바다 낚시는 침선 낚시로, 배가 좌초되어 가라앉아 있는 정확한 포인트를 찾아 물고기를 건져내는 테크닉 낚시이다. 우리가 거는 기대감이 큰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다름 아닌 낚시배 선장으로 이곳 바다를 20년 이상 고기잡이를 해왔고 침선포인트를 알고 있는 사촌형님과 출조하기 때문에 고기만 물어 준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출항이 시작되자 우리를 실은 프린스호는 어둠을 뚫고 돌산을 지나 거문도 백도로 향한다. 한 새벽 다도해의 섬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지 고요하기만 하다. 저 멀리 섬에서 비추는 아련한 가로등 불빛이 밤하늘과 어울려 너무도 아름답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슬슬 눈꺼풀이 내려온다. 이제 아침 낚시를 위해서 한숨 자둬야 되겠다.

배는 돌산에서 약 4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최종 목적지는 거문도에서도 남서쪽으로 한 시간 지점이다. 신이 만든 섬 백도를 훨씬 넘어야 한다. 한 달 전 이곳 침선 포인트에서 40~50cm 급 대물열기와 50~60cm급이 우럭이 쏟아진 곳이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보니 광활한 남해 바다에서 여명이 밝아온다. 시간은 벌써 오전 5시 30분을 넘었고 뱃머리 앞에는 거문도가 들어온다. 앞으로도 한 시간 이상은 더 가야 하는데 벌써 조급함이 앞선다. 지금이 오월 중순인데도 아직도 먼바다의 아침은 썰렁하다. 정신을 차리고 일행들을 깨우며 아름다운 남해바다 풍광과 일출에 연방 셔터를 눌러댄다.

조사가 침선낚시중 낚아 올린 열기볼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사가 침선낚시중 낚아 올린 열기볼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목적지인 침선 포인트를 기록을 알고 있는 사촌형님이 낚시배 선장에게 위치를 가르쳐준다. 곧 항해장비와 어탐 전자장비에 북위 ㅇ도 동경 ㅇ도를 입력한 침선 포인트에 도착했다. 이곳의 정확한 포인트를 아는 것이 선장의 노하우다.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어선의 항해기술이 대단하다는 것이 밝혀졌듯이 전자장비에 의한 침선포인트 위치 추적은 한치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 이후 선장의 지시가 내려진다.

입수 5분 후에 온 첫 어신 "우럭 출현"

선장님의 지시에 따라 수심 80m 침선 포인트에 일제히 스탠바이. 100호 봉돌추는 80m의 해저 열기와 우럭을 사냥하기 위해 7마리의 오징어 미끼를 달고 어뢰처럼 수중으로 빨려 들어간다. 14인치 전동트랙소리가 멈추고 어신(고기가 무는 신호)을 기다린다. 오늘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니 제발 몽땅 물어주기만을 간절해 바랄 뿐이다.

첫 어신은 약 5분 정도에 왔다. 역시 둘째 형님이다. 80m 전동릴 트랙소리가 끼릭끼릭 윙윙거린다. 소리로 봐선 대물급임에 틀림없다. 전동릴을 끌어올리는 시간은 1분여 어종을 확인하기 위해 일행들은 낚싯대를 고정대에 꽂아 두고 달려간다. 해저에서 올라온 놈은 열기다. 25cm급 중급 열기를 확인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저마다 입질을 기다린다. 2~3분쯤 흘렸을까 반대쪽에서 함성소리다.

"대물이다."
"쪽지, 쪽지!"

뜰채를 가져 오라 한다. 낚시에 물린 고기는 45cm 정도 되는 대물급 열기인데 터덕거리면 놓치기 때문에 뜰채로 빨리 건져야 한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아이쿠" 하는 된소리가 들린다. 대물열기를 뜰채로 뜨다가 낚시 바늘이 빠져 놓친 것이다. 이후 일행은 제법 재미를 봤다. 특히 가장 하이라이트는 낚시로 걸어 올린 부시리고기이다. 삼촌은 10kg이 넘는 부시리를 걸어 사투끝에 끌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입질이 없다. 조류에 포인트가 벗어난 듯싶다. 선장님 지시에 따라 다시 포인트를 찾아 들어가 보지만 잔 씨알의 우럭 몇 마리와 쏨뱅이 들이 전부다. 그나마 우리 일행들이 낚은 것이다.

침선낚시중 우럭과 열기 볼락을 낚아올린 조사사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침선낚시중 우럭과 열기 볼락을 낚아올린 조사사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선장님은 객지에서 오신 분들한테 미안했던지 우리와 상의하고 거문도 쪽으로 약 40분 정도를 지나 우럭 포인트로 이동한다. 우리 일행은 좀 기다리면 대물 열기가 낚일 것 같다며 반대의견을 내보지만 선장은 손님들을 위해 늦출 수 없단다. 축제행사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일하던 우리 일행은 쌓인 피로가 쫘~아악 풀린다고 말한다. 오늘은 고기만 더 물어준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거문도 근해를 지나는 길에 너무도 아름다운 백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신이 만든 걸작품이다. 백도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신이 내린 작품 감상도 잠시, 이동한 포인트에 옮기자마자 객지에서 온 낚시꾼들이 대물우럭을 두 마리씩 낚아 올린다. 처음포인트에서 우리한테 참패를 여지없이 당하더니 이곳에서는 만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별루다. 그래서 세상은 참 공평한가 보다.

거문도에서 1시간 가량을 나가서 낚시후 백도로 포인트를 이동하는중 한 조사가 열기볼락을 썰고 있다.
 거문도에서 1시간 가량을 나가서 낚시후 백도로 포인트를 이동하는중 한 조사가 열기볼락을 썰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얼마 후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는데 약 1시간이 걸리니 선장님이 다들 식사를 하라고 한다. 일행은 우리가 낚은 최고로 씨알 좋은 열기와 우럭 여섯 마리를 썰었다. 드넓은 남해바다 위를 질주하는 가운데 청정바다에서 자연산회에 쇄주를 곁들이는 맛은 이세상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낚시포인트를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되었다. 오늘 예상보다 조과가 좋지 않았지만 먼바다 남해의 청정해역을 맘껏 질주하며 즐거운 낚시를 보낸 가운데 입항하는 데는 두 시간이간 걸린다. 일행들은 각자가 잡은 고기를 모아 생선회를 썰어 마음껏 먹고 가자고 한다. 모두 다 "브라보"를 외친다. 맛있는 회를 썰어서 함께 낚시했던 객지 분들과 담소도 나누고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해 저무는 줄도 모른다.

거문도 백도에서 낚시를 마친 프린스호가 연도를 거쳐 안도권으로 입항하고 있다.
 거문도 백도에서 낚시를 마친 프린스호가 연도를 거쳐 안도권으로 입항하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살아가면서 우리는 각자 죽을 둥 살 둥 일에 매달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일상에 갇혔다 잠시 자연을 벗삼으니 세상이 풍요로워 보인다. 먼훗날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날까지 자연을 벗삼아 몸소 체험하며 좀 더 폼 나게 살고 싶다. 폼 난 인생은 다름이 아닌 열심히 일하고 아름답게 즐기는 삶이다. 오늘 자연에서 폼 좀 쟀다.

ⓒ 심명남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침선낚시, #백도, #우럭, #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