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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꼭 해야 될까? 아닐까? 결혼하지 않은 이가 전자 기준으론 미혼(未婚), 후자대로면 비혼(非婚)이 된다. '아직'과 '아니', 그 사이엔 '선택의 여부'라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내가 결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거다.

그 '나'가 여성일 때, 수많은 시선들이 쏟아진다.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 '엄청 똑똑한 척하는 이기적인 여자일 거야' '무진장 외롭겠다' 이런 무수한 통념을 깨고 당당하게 비혼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편견까지도 깨뜨리고 비혼의 삶을 즐겁게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비혼 정도는 나도 안다'고 자만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1인 가족은 어떤가. 더 나아가 1인 가족 네트워크라면? 이 새로운 개념을 이론이 아닌 생활로 실천하고 있는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혼들의 비행(이하 비비)을 소개한다. 이 공동체를 처음 제안했던 김란이(38)씨를 메일과 전화를 통해 만났다.

결혼은 선택! 비혼여성 뭉치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정기모임은 비비가 자기 성장을 위해 꼭 지키는 원칙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정기모임은 비비가 자기 성장을 위해 꼭 지키는 원칙이다.
ⓒ 김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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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여성단체 활동가, 공무원, 어린이 영어강사, 일반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7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다들 대학 졸업 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넘긴 상태였다.

딱히 결혼에 대해 고민해 볼 틈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부르는 '노처녀' '미혼'이란 말에 갇히기도 싫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정체성을 찾는 길을 서로 길동무가 되어 함께 나선 거다.

란이씨는 "처음엔 결혼 계획이 없고 자기 삶에 고민이 있는 직장여성들의 격려와 지지모임으로 시작했어요"라면서 소박했던 모임의 첫 시절을 들려준다. 표현은 '소박'하지만 비비에는 '자기 성장'이란 중요한 화두가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하는 정기모임은 꼭 학습을 했다. 전문적인 학문 연구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에 필요한 책이나 교육자료 등을 봤다. 가령 이런 식이다.

처음엔 비혼이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기에 관련한 여성학책을 봤고, 독립생활엔 경제력도 무시 못할 문제이기에 지침이 될 만한 경제 서적을 훑었다. 최근 한 구성원이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힘들어했을 땐 함께 <행복의 정복>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비비가 공부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중 4회 이상 2박3일간의 여행을 가고 명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기념일을 챙기고 함께 먹고, 자고, 노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렇게 7년을 이어오니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관계로 얽혀, 생활공동체로 묶여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06년경부터 모임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관계는 그렇게 다른 질로 발전해 왔다.

독립한 비혼 여성, 우리는 1인 가족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는 매년 명절을 함께 보내고 봄, 여름, 가을, 겨을 여행을 떠난다. 사진은 2008년 설 명절때 오른 한라산.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는 매년 명절을 함께 보내고 봄, 여름, 가을, 겨을 여행을 떠난다. 사진은 2008년 설 명절때 오른 한라산.
ⓒ 김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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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비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 중 하나다. 란이씨는 "나이 든 여성이 독립할 환경을 만들기가 힘들어요. 결혼에 쓸 돈을 왜 써 버리냐는 시선이 강하죠"라면서 여성의 독립이 어려운 현실을 전했다.

이런 현실을 뚫고 주변의 뜨거운 눈길을 그대로 감내하면서 란이 씨가 비비 중에서 제일 처음 가족으로부터 독립한다. 혼자 뭘 할 수 있을까. 독립 전에 가졌던 두려움도 자기 삶을 스스로 꾸리는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집에 있으면 더부살이가 되잖아요. 자꾸 의지하게 되고…."

란이씨가 독립해서 정착한 곳은 50년 영구임대 아파트였다. 그의 독립 이후 자연스럽게 비비 구성원의 화두로 '독립'이 떠올랐고, 한 명 한 명 란이씨네 아파트단지로 독립해 왔다. 같은 동 다른 층, 바로 옆 동 등에 살면서 비비 성원들은 쌀이나 김치가 많으면 나누고, 식물이 크면 옆집에 분양하고, 살림 노하우가 생기면 서로 공유하는 등 혼자 소화하기에 넘치는 자원은 나누고 모자라는 것은 서로 협조 받으면서 '진한 이웃'이 돼 갔다.

"왜 혼자 사는 사람의 가정은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

독립 후 자기 생활을 꾸리다 보니 비비 성원들에겐 이런 의문이 생겼다. 혼자 살아도 살림살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식물, 동물, 가구 등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들-을 다 운영하고, 또 다른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게 그것들을 책임지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름에서 제외되면서 생기는 고립감과 불안감, 불완전함에 대한 이의제기로 '1인 가족'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1인 가족들이 네트워크를 이뤄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간과 차림에 구애받지 않고 마실을 다녀 좋다는 란이씨의 말에 다른 집에서 자기도 하냐고 물었더니 참 상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 집이 각자 방과 같은 게 되죠. 여러 식구가 살 때도 아빠방, 언니방에서 놀았다고 그 방에서 자지는 않잖아요. 새벽 한두 시까지 수다를 떨더라도 꼭 자기 집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50이 되면 여성노인 공동체 만들것"

비비에겐 세 명의 딸이 있다. 3년여 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말라위와 케냐에 있는 세 소녀를 후원하고 있다. 란이씨는 "비비가 추구하는 게 성장과 나눔인데 처음엔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를 본 후부터는 나누는 것에 대해 얘기하게 되더군요. '먼 이웃을 사랑해보자'는 취지로 결연을 시작했죠. 부모 같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지구적 차원에서 우리 후세대니까 가끔 '우리 딸들'이라고 하죠. 그저 그 소녀들이 자신의 꿈을 꾸고 살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라고 하면서도 "3명만 후원한 건 이들이 독립해 지원이 필요없다고 할 때까지 후원하기 위해서"라는 깊은 뜻도 전한다.

그밖에도 비비는 지역 여성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구성원 중 3명이 사회단체 활동가여서 다들 단체 회원이 되기도 했는데 누군가 가입을 강권해서가 아니라 서로에서 '전염'됐기 때문이란다. 또 누군가를 '전염'시키기 위해 비비 2기도 모집했다. '모든 걸 비비 1기랑 똑같이 하지 않아도 된다. 단,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통해 공부는 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란이씨는 바란다. "우리만 커지는게 아니라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진, 같지만 다른 공동체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점점 살기 좋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비혼공동체들의 허브가 될만한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이런 활동을 영상,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미 이들의 생활은 지역 여성 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오이오감>에 '비혼비행'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7년을 커온 비비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된 것 같아요. 결정과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명확해지고 깊이가 생겼다고 할까. 자신감이 생겼죠. 내가 나답다는 게 자랑스럽죠."

'내가 나인 게 좋다'는 멋진 비혼 여성들은 50이 되면 여성노인 공동체를 고민해보겠단다. 이들처럼 나이 들어도 꽤 멋질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노동세상>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비혼, #비혼여성공동체, #비혼들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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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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